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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던 삶을 문장으로 앉히는 일

글쓰기로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by 바란


명리학이 말하는 나는 기토의 사람이라고 한다. 기토는 손이 닿는 만큼만 품을 수 있는, 논밭처럼 작은 땅이다. 끝없이 넓고 단단한 대지와는 다르다. 싹을 틔울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부드러운 흙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기토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비가 많이 오면 흙이 무너지고, 햇볕이 강하면 금세 마르고 갈라져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기토는 스스로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세심하게 돌보고, 적절하게 가꾸기만 하면 무엇이든 자라게 할 수 있는 생명의 땅이기도 하다. 이게 나라는 사람이라고, 명리는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늘 안정된 환경 안에서, 일정한 리듬으로 살아가는 게 편했다. 크고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고,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살펴보느라 시간이 걸렸다. 대신 내 곁에 오래 머무른 사람들과는 좁고 깊게, 천천히 다정한 관계를 맺었다. 활동 범위가 넓진 못해도, 나는 내 손이 닿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고 내 주변의 작은 풍경에 애착을 갖는 편이었다. 기토로 태어난 나는 여태껏 이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기토는 제 몫을 다하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다. 물이 넘쳐 들어와 흙이 쓸려 내려가고,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아 차갑게 굳고, 날카로운 칼날에 베이기가 부지기수였다. 내가 타고난 기토가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내 기토가 지닌 힘이 크지 않기에 흙 위에 무언가가 자라날 힘이 부족하다고 했다. 누군가의 기토는 애초부터 비옥한 땅일 수도 있었겠지만, 내 기토는 내내 이리저리 무언가에 치이고 있다. 어쨌든 나는 그런 땅을 품고 이 세상에 나왔다.

이제 내가 이렇게 약한 기토라는 걸 알게 됐으니, 내 땅을 잘 돌봐 줄 일만 남은 것이다. 여기저기 쓸려 흐트러진 흙을 다시 잘 보살펴주는 일. 발에 치이는 돌무더기를 골라내고 고인 물을 퍼내는 일. 내가 타고난 내 땅의 연약함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이런 일들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내 땅을 돌보는 일-나를 돌보는 일을 해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한동안 ‘글 쓰는 사람이었다’고 말해야 할 만큼 글과 멀어져 있기도 했지만, 지금의 나는 다시 이 문장을 현재형으로 적기로 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거라고 마음먹었으니까.

한동안 내가 짜낸 이야기는 어딘가 붕 뜬 것 같고, 내가 빚은 인물들은 내 언어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 같아서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 내게 명리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 깨닫게 해 줬다. 글쓰기는 늘 내게 회복이었고, 성장이었고, 치유였다. 내가 내 삶을 제대로 껴안을 수 있을 때, 내 감정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만의 문장이 나온다는 걸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쓰지 못하는 작가라는 현실에서 도피하면서 나 자신과도 서먹해지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명리와 만나게 되면서 다시 쓰고 싶어졌다. 누구도 대신 쓸 수 없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내 진짜 이야기를.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약한 사주를 타고났지만 역경을 극복해 낸 대단한 성공담이 아니다. 명리 전문가로서 명리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글도 아니다. 나는 명리를 공부하며 비로소 내 해묵은 과오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제야 지난날의 나를 토닥여줄 수 있었다. 이건 나의 이런 작은 경험을 나누는 글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내 땅에 물이 차올라 결국 나라는 흙을 무너뜨렸던 어느 해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진: Unsplash의 Hannah Murr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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