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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붙이를 벼리듯 삶을 써내며

나를 깎으며 새기는 언어라는 조각

by 바란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시기를 겪듯이, 나 역시 어렸을 적엔 내가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해서 발표도 곧잘 도맡아 했고, 무대 위에 서는 일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 확신은 결국 반 아이들의 시기와 따돌림으로 돌아왔다. 세상과의 소통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나는 말로 항변하는 대신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을 일기에 꾹꾹 눌러 적어나갔다.


시간이 흐르며 내가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은 하나둘씩 나를 배신했다. 나는 원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이를 잘 다듬기만 하면 반짝반짝 빛을 발할 거라고 믿었지만, 그 확신은 점점 먼지가 쌓여 빛을 잃는 돌처럼 혼탁해졌다. 한 살씩 나이를 더할수록 내 손에 쥔 것들을 다시 내려다볼 때마다 그것들이 그렇게 볼품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달랐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았고, 발표나 노래처럼 즉각적인 평가가 따르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글쓰기에 점점 더 애정이 갔다.

그렇다고 글쓰기를 ‘유일한 희망’으로 여겼던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는 내게 놀이와도 같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워드를 켜고 짧은 동화들을 써왔기에 대단한 작업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내주는 글짓기 숙제도 어렵지 않았다.


아마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건 숱하게 읽었던 책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책 속의 세계와 만나는 것은 현실과 맞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고 재미있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책 읽기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독서든 글쓰기든 내게는 너무 일상적이라서 마치 매일 밥 세끼를 먹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그저 ‘일상적인 것’으로 남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글쓰기는 내 일상에서 나를 유일하게 살아나게 하는 특별한 일이 되었다.


그 깨달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두고 생각을 거듭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결국 내게 가장 익숙하고, 오래 좋아하고, 또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만한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동안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많은 직업들을 적어봤지만 늘 뜬구름을 잡는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하고 싶은 일’은 매번 달라졌기에 구체적인 상상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는 순간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 이후로 꾸준히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살아왔다. 글로 거창한 성공을 하고 싶다는 원대한 목표를 지니게 되었다기보다는, 왠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도 글을 쓰고 있을 것 같다는 예감으로 이어져온 확신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을까. 그리고 그 마음이 어째서 2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을까. 명리학에서는 사주에 식상(食傷)이 많으면 나를 표현하려는 힘이 강하다고 말한다. 즉 식상은 자기표현 욕구이자 창조의 에너지인 것이다.


내 사주를 보면, 여덟 글자 중에 세 글자가 식상이니 나는 식상이 많은 편에 속한다. 다시 말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향을 타고난 셈이다. 글쓰기는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익숙했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놀이처럼 다가왔던 유일한 표현 수단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창작하는 이야기, 내가 만들어내는 문장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내가 빚어낸 문장들만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어떻게든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나는 그런 기질을 타고난 게 아닐까. 사춘기 시절 나를 지배했던 감정의 과잉들, 나를 끊임없이 몰아세웠던 감정의 격랑들을 모조리 내가 쓰는 문장들로 흘려보낸 덕분에 나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나온 말, 이미 존재하는 문장으로는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내 방식으로 다시 조합해 만들어낸 나만의 언어 위에서만 숨 쉴 수 있었다.


글과 달리 말은 흩어지고 허공에 떠다닌다. 나는 내게서 흩어져나가는 말들을 붙잡아 물성화시키고 내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말을 하기보다는 글을 쓰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나를 뒤흔드는 혼란과 방황이 올 때마다 나는 그걸 문장으로 써내야만 했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라기보다 나를 벼리는 힘이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아직 글쓰기로 생계를 꾸려갈 정도조차 되지 못했지만, 내 삶을 글쓰기가 지탱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게 세 개 있는 식상은 금(金)이다. 명리로 보면 나는 기토(己土) 일간, 흙의 속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물상적으로는 흙 안에 금을 셋이나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이 세상에 드러나려면, 흙은 파헤쳐져야 한다.


명리에서 금(金)은 날붙이, 금속, 혹은 큰 돌덩이 같은 것이므로 흙의 기운을 상하게 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내 표현력은 나를 깎아내는 과정 속에서만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金이 셋이나 있으니, 흙은 金을 내보이는 과정에서 더욱 소모된다. 그러나 이 거칠고 투박하거나 혹은 날카롭고 뾰족한 金들을 잘 다듬어 제련해야만 세상은 비로소 ‘나’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쓴 글들을 알아봐 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며 위안도 받았으나 고통도 받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언어로 변환되지 않는 감정들은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는 문장의 파편으로 남아 나를 사정없이 찔렀다. 가장 날카로운 단어들을 골라 겨우 다듬어봐도 해소가 되지 않는 글쓰기의 한계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이 결국에는 나를 자라게 했음을 이제는 안다.


글과 나는 서로를 깎아가며 상처를 주고받고, 흉터 위에 다시 새로운 칼자국을 내며 역설적으로 조금씩 단단해진다. 아마도 평생 동안 이어질 이 과정을 끝없는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며 나는 오늘도 쓴다. 어떻게든 쓰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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