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던 시간 위에 글을 쌓아가는 지금
올해 3월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한 글자도 못 쓰고 있었다. 해가 바뀌고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늘 ‘올해는 뭐라도 써보자’고 마음먹었지만, 그 다짐은 실현되지 못하고 무색해진 채 그대로였다. 이제는 ‘쓰고 있다’고 둘러댈 여력조차 남지 않아서 글쓰기를 빛바랜 열망으로만 남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뜻밖의 주제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명리학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된 것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런데 내 삶을 명리와 엮은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걸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에 연재하면서 ‘보일 글’로 다듬어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낯설다. 이게 과연 효용성 있는 행동인지조차도 잘 모르겠다.
이 글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쓰는, 내 회복을 위한 기록에 가깝다. 묻어두고 도망쳤던 나의 부끄러운 과거들을 사정없이 파헤치며, 내 삶에 켜켜이 쌓여 있던 무수한 조각들을 건져내 문장으로 꿰고 있다.
그러면서도 명리학에 내 삶을 그저 끼워 맞추고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문득 고개를 든다. 하지만 쓰는 매 순간마다 깨닫는다. 이걸 잘 끼워 맞춰서 얼개를 갖추면, 그건 곧 글이 된다는 것을. 단지 경험했던 일들을 쓰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이 글이 명리라는 렌즈를 통과해서 단순한 자기 고백과 독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중이다.
스스로 구조를 잡고 브런치북의 연재일에 맞춰 글을 완성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확인시켜 줬다. 어설픈 문장으로라도, 정돈되지 않은 감정으로라도 계속 써나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브런치 연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이다.
이 글쓰기가 이후의 나를 어디로 데려가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훗날 지금을 돌아봤을 때, 그때 브런치에 글을 쓰길 잘했다고 여길 수 있길 바라며 지금 이 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처음엔 도무지 창작이 되지 않으면, 이미 쓸 수 있는 글감, 즉 ‘나의 이야기’라도 써먹어 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혹 그것에 산문이나 에세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못하더라도, 뭐라도 써보고 싶었다. 나만 아는,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결국 글이라는 건 삶의 궤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명리와 결부시켜 어느 정도 글을 써나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나는 쓰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잘 다듬어서 끝을 맺고 내 인생의 다음 장으로 나아가고 싶다. 이 글쓰기는 아주 천천히 나를 글 앞으로, 삶의 앞으로 다시 세워주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누군가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올해는 을사(乙巳)년이다. 명리에서는 올해부터 화(火)의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해 내년에 절정을 이루고 내후년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불의 기운이 도래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을사년인 지금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어쩌면 내가 다시 ‘쓰고 있다’는 건 운의 흐름이 내게 가져다준 선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선물일지라도 아직은 활활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그저 조그마한 불씨를 지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리도 절실했던 불의 기운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잘 써먹기 위해 기초공사를 하는 중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중이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불의 기운이 도래한다. 그리고 불의 기운이 오는 그때에 내 대운도 바뀐다. 나는 내 인생의 다음 큰 흐름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는 문턱에 서 있다.
병자(丙子) 대운. 내게 필요한 불(丙)의 기운과, 내가 꺼리는 물(子)의 기운이 함께 온다. 아마 이 운의 흐름은 아마도 꽤 격렬하게 내게 다가올 것이다. 많은 변화와 충돌을 안고서 나를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일인지 두렵지 않다. 내겐 온기 없이 눅눅했던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설령 내게 이중으로 들이닥칠 불의 기운이 나를 활활 태워 내 모두를 소진시킬지라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타오르고 싶다. 그 불길 속에서 나는 나를 써 내려가며 더 단단해질 나와 똑바로 마주하고 싶다.
스스로를 불태우는 시간 끝에 무엇이 남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불길 속에서 나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기꺼이 그 불 앞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