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때때로 따끔하다
그 해 겨울에서 봄에 이르던 기억은 어두운 방 안에서 점멸하는 형광등처럼 간격을 두고 드문드문 남아 있다.
나는 암막커튼으로 완전히 창문을 가리고, 단 한 줄기의 빛도 들이지 않은 채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대단한 좌절도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은 거칠 법한 통과의례 같은 일이었다.
나는 취업에 실패했고 4년 만난 남자친구에게 차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나를 쓸모 있게 여기는 곳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를 수렁에 빠지게 했다.
모로 누워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울분이 치밀어 오르면 벌떡 일어나서 컴퓨터를 켰다. 그 어디에도 말할 곳이 없는 어지러운 감정들을 쏟아내느라 눈물을 끅끅 참아내며 키보드만 두드렸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나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블로그 카테고리에 자물쇠를 걸어두고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마구 써댔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문장들이 터지는 폭죽처럼 화면을 가득 메워 눈이 따끔해질 때에야 잠에 들었다.
자고 일어나서는 밥도 먹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다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내 쓸모를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저 죽은 듯이 지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겨우 정신을 추슬렀을 땐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으니 여전히 겨울 외투들이 옷걸이에 줄줄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그 옷들을 입고 외출하기엔 이미 계절이 한참 앞서가 버린 뒤였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자 코끝에 닿은 공기가 훈훈했다.
누워 있다가, 혹은 글을 쓰다 말고 문득문득 떠올랐던 생각들이 있었다. 날이 따뜻해지면 밖으로 나가야지. 마라톤도 뛰어 보고, 페스티벌에도 가고, 사람답게 살아야지. 하지만 그보다도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아름다운 것들을 실컷, 넘칠 정도로, 잔뜩 보고 싶었다.
마침 4월이었다. 4월은 꽃이 피는 계절.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본 모든 벚꽃을 뛰어넘는 가장 예쁜 벚꽃을 보러 가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나는 여행, 특히 혼자 하는 여행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꼭 떠나고 싶었다. 아니,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객관적으로 실패한 상태가 맞았다. 사랑도, 일도.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누워만 있다가도, 나를 꽉꽉 메우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내다 버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일기인지 배설인지 모를 문장들을 써냈다. 그런 기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때 나를 지배했던 감정은 상실도, 무기력도 아니었다. 어쩌면 분노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떻게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냥 시간이 흘러가야 낫는 열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두문불출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거의 의식처럼, 주문처럼 그렇게 매일 중얼거렸다.
‘바란아 사랑해. 네 잘못이 아니야. 곧 괜찮아질 거야.’
그런 와중에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짧은 여행으로 무언가가 달라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건, 나는 그렇게 흐드러져 만개한 벚꽃을 가득 눈에 담으며 울었다는 것이다.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눈물이 나온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내가 흘린 건 슬퍼서도, 기뻐서도 아닌, 그냥 내 안의 무언가가 녹아내리며 같이 흘러나온 눈물이었다.
나는 암막커튼을 완전히 걷어버리고 똑바로 바라보게 된 바깥 풍경이 그렇게도 눈이 부시다는 것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가 다가와 나를 토닥이며 “잘 될 거야.” 같은 달콤한 말을 해주기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위로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내가 방구석에서 기어 나온 건 스스로 의지를 다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어느 순간 갑자기 냅다 걷어차여 얼떨결에 밖으로 굴러 나온 느낌에 가까웠다.
“아직도 이러고 있어?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건데?”
누군가가 그렇게 호통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둠을 한꺼번에 증발시켜 버릴 만큼 강한 빛과 온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니, 그것만이 내게 절실히 필요했다. 내가 간절히 바란 만큼 그 빛은 결국 내게 도달했지만 결코 다정하지 않았다. 그건 찰싹, 내 등짝을 때리며 일단 밖으로 나가라고, 뭐라고 하라고 나를 떠미는 에너지였다. 때때로 회복은 고통을 동반하며 오곤 한다. 그때 나를 일으켜 세운 힘은 그런 매서운 손맛이었다.
나를 움직이게 했던 그 기운은 나를 끝없는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대신, 아주 작은 움직임부터 시작하는 동기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이 어떤 성취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뭐라도 하는, 뭐라고 하려는 나 자신만으로도 다행스러웠다. 그땐 그런 시기였다.
여행 중에 혼자 찍은 내 사진이 너무 못생겨 보여서 또 눈물이 났다. 자존감을 회복해 줄 거라 기대한 여행의 기억이 또 한 번 와르르 무너지려는 순간, 나는 자기혐오에 빠지는 대신 진지하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아직도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비련의 주인공처럼 방바닥만 긁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그제야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등짝을 얻어맞고 나는 끊임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 경험이 결코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오히려 나는 이걸 내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고 증명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고 나는 이제 겨우 햇빛을 따라가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했다’. 하기 전에 이미 ‘안 될’ 거라고 단정 짓는 대신 ‘뭐라도 해보자’고 마음먹게 되는 힘. 나는 이걸 진정한 용신(用神)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주를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용신’이라는 단어와 만나게 된다. 용신은 쓸 용(用), 즉 내게 도움이 되게끔 쓸 수 있는 기운이라는 뜻이다. 누군가는 용신운에 대박이 났다고 하고, 누군가는 승승장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용신은 무얼까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사주를 좀 본다 싶은 사람들은 모두 ‘용신 찾기’에 열을 올린다.
나의 용신은 화(火)이다. 그리고 이때는 병신(丙申)년으로 병화(丙火), 즉 화의 기운이 들어왔으므로 병신년은 내게 용신의 해가 맞다. 하지만 그 해에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과연 화(火)가 내 용신이 맞는지 솔직히 알쏭달쏭하다. 용신운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방 안으로 깊숙이 숨어들었고 꽤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어두운 방에 누워 있던 그때의 나는 내 인생이 이보다 더 바닥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떻게든 발버둥을 쳤던 것 같다. 암막커튼을 쳤는데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이 보였으니까. 당장은 손에 잡히지 않았어도, 그 빛은 분명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 빛 덕분에 아주 조금씩, 갓 발아한 식물이 햇볕을 받으며 매일 자라나듯 나도 그렇게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 해를 용신운의 해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금 거칠지언정, 그러나 단단히 내 손을 잡아준 힘이었다. 내가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때까지 묵묵히 나를 기다려준 기운이었다.
그때 나를 나아가게 했던 따끔한 빛 덕분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왔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어수룩한 채였지만, 바닥을 짚었으니 이제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나를 떠밀어주었던 그 동력이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아주 작고 투박했지만 분명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사진: Unsplash의 Artem Kni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