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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자리에 자라나는 것

상처이면서 성장이었던 시간

by 바란

어렸을 때의 나는 뭐든지 잘하고 싶었고, 어떤 일에든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줄곧 반장을 맡아 왔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또다시 반장이 되었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어렵지 않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해는 모든 게 버겁게만 느껴졌다. 끊임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과 반 아이들의 목소리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나를 옥죄는 틀처럼 느껴졌다.


예고도 없이 매번 주어지는 책임을 꾸역꾸역 감당하다 보면 진이 빠졌고 매일 ‘중학교도 자퇴가 가능한가’, ‘중학교만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볼까’ 같은 생각에 깊이 빠졌다. 그렇다고 정말로 학교를 그만둘 용기도 없었다. 내게 부여된 역할을 뒤로하고 도망치는 것도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게 주어진 일들에 어떻게든 최선을 다했고, 결국 좋은 평가가 돌아왔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내게 더 많은 일들이 주어졌다는 것이었다. 겹으로 쌓이는 압박감을 견뎌내며 나는 또다시 잘 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외부 대회 수상자 명단에 계속 올라갔으니 몇몇 아이들 사이에서는 “쟤 또 상 받냐”는 곱지 않은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외부 대회를 준비하고, 그걸 치르는 과정에서 나는 매일 시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룬 성과에 진심으로 기뻐하거나 뿌듯해할 사이도 없이 기진맥진한 채 학교에 다녔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왜 나는 그 모든 걸 해내면서도 그걸 스스로의 성장이나 발전으로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선생님들과 동급생들이 나를 다재다능한 학생으로 여기는 사이 나는 인생 처음으로 찾아온 우울감과 맞서 싸우는 중이었다. 나는 그 해를 살아내며 티 나지 않게, 그러나 아주 깊게 무너지고 있었다.


사주명리를 알게 된 지금에서야 내가 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 해는 갑신(甲申)년. 내가 본래 가지고 있지 않은 목(木)의 기운과 처음으로 만나게 된 해였다. 내게 그 기운은 나를 틀에 맞추고, 외부의 책임을 부여하고, 사회적인 존재로 만들려는 힘이었다.


목은 생장하는 힘이라고 하지만, 내게 없던 목이 들어오는 순간 목은 내게 ‘너는 이렇게 살아야만 해’라고 말하는 프레임이 되었다. 나는 억지로 그 프레임에 끼워 맞춰지기 위해 용을 쓰다가 탈진해 버렸고, 그것이 결국 나를 둘러싼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이듬해인 을유(乙酉)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목(木)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을유년의 을목(乙木)은 갑목(甲木)과 같은 거대한 나무 기둥으로 나를 찍어 누르는 대신 잔뿌리처럼 가늘고 집요하게, 쉴 새 없이 나를 파고들었다. 이제는 바깥에서 나를 밀어 넣으려는 틀보다 내 안쪽으로부터 서서히 무너져가는 균열이 더 나를 아프게 했다. 충분히 다져지지 못한 나 자신이, 스스로 무언가를 피워내 보려고 하기도 전에 다시 부서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와 아무리 노력해도 수직 추락하는 성적이 나 자신을 감당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연이어 이어지던 목 기운의 폭력 속에서 나는 이보다 더한 고통의 시간은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 이십 대 중반을 지나는 나이가 되었어도 목의 해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위계질서와 부당업무로 가득했던 대학원 생활은 감당하기 어려웠고, 논문을 쓰는 중에는 실시간으로 멘탈이 무너졌다. 그래도 십 대 때와는 달랐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자해도 없이 내 몫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목(木)의 해를 지나고 있다. 이제 나는 목(木)이 내게 근원적인 결핍임을 알게 되었다. 내게 익숙하지 못한 목(木)이 내게 들어올 때의 나는 여느 해와는 다른 정신적 압박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목(木)을 잘 다루려 하고 있다. 올해 초, 방의 인테리어를 녹색 톤으로 바꾸고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매일 작업하는 책상 위에 초록색 패드를 깔고, 초록색 키보드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개운법이라고 하기엔 미약하지만 이제는 목이라는 기운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목의 기운이 지날 때마다 나는 흔들렸지만, 돌이켜보면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무너진 끝에 작은 성장의 흔적들이 보였고, 결과도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목의 기운이 나를 해하는 기신(忌神)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원래 내 안에 없던 기운이기에 제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조금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하지만 목이 들어올 때 어떻게 숨을 고르면 되는지 이제는 안다. 목은 나를 파고들며 상처를 냈지만 나는 그 상처 위에 다시 뿌리를 내리며 자라날 것이다. 목이 없음을 타고난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이제 나는 그 결핍 위에서 자라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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