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반포동 출근길 스케치
7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은 마음이 바쁘다. 여유가 없는 아침이 되기 십상이다.
자차로 출근할 때와 다르게 뚜벅이로 출근하는 아침은 나름의 여유가 있다. 적어도 그걸 즐기려 한다.
촘촘히 시간을 재면서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뀔 때를 기다리는 여유는 덤이다.
오래간만에 지하철로 출근하는 날이라 구반포역에서 내린 후 걸어가야 한다. 그러는 동안 눈앞의 풍경은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들 같았다.
현장 가장 가까운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마주한 풍경은 12미터 높이의 하얀색 펜스와 위로 펼쳐진 비 오는 하늘은 이날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을 거다.
흰 도화지에 그려놓은 노란색 직선의 서로 다른 각도의 타워크레인은 여백사이로 안정적인 구도를 담당하고 있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는 녹색 횡단보도 조명이 비쳐서 더욱 촉촉해 보였다. 횡단보도 좌우에 서있는 동그란 나무도 예쁘고, 공사장 펜스의 그림도 예쁘고, 횡단보도 빨간 신호등도 예쁘고 우산 쓰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도 모두 모두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의 하모니를 이룬다.
이 모든 게 나의 눈에 비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이룬 팀워크 덕분이다.
자차로 출근할 때와 달리 뚜벅이로 출근하는 길은 좀 더 자유롭다. 여유로우며 걷다가도 잠시 서서 관찰하고 싶은 것을 더 바라볼 수 있다. 그게 바로 나의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순간포착을 즐기는 나. 순간의 장면과 순간의 감정이 만나는 조화를 즐긴다.
이날의 스카이라인은 이날이 마지막 뷰다. 아파트 신축현장이라 지금의 스카이라인은 매일 조금씩 사라진다. 2년 뒤 준공할 즈음엔 저 스케치북은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된다.
그래서 하루하루 변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 진다. 기억하고 싶어서다.
Epilogue
구반포역에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비구경 중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역사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난 우선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