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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Nov 11. 2020

프리랜서 3년 차,
유난히 길었던 겨울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3년 차의 겨울, 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그리고 새해와 시작이라는 분위기에 물들어 로맨스가 가득했고,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겨울의 추위를 사람과 사람과의 온기로 녹이는 듯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내년에는 조금 즐기고 싶네”


추운 겨울 한숨처럼 나온 작은 입김을 내었다.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매년 겨울의 연휴 기간에는 거리의 화려한 조명이나 은은하게 분위기를 지어내던 달빛 대신 모니터의 불빛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것 같다. 겨울을 보내는 하루하루의 밀도는 다른 계절에 비해서 매우 높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일 년의 성과를 만들어가는 막바지 과정이자, 내년을 준비하는 시간이기 때문일까? 일상에서 일 외의 다른 것이 끼어들지 못할 만큼 틈새 없이 단단하게 일정을 만들고 나는 나 그대로를 모니터 앞 작은 책상과 의자에 고립을 시켰던 계절이었던 것 같다.


가장 빠듯했던 18년도의 크리스마스 연휴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얼마 전 일본에서 디자인 제작 의뢰가 왔었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춘 디자인,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에는 새해를 준비하고 축하하는 신년 디자인이었다. 연휴 기간에 일을 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도 없어 단가도 높았고, 해외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였기에 포트폴리오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큰 열정을 가지고 작업했다. 새벽, 그리고 밤에도 클라이언트와 논의를 하면서 제작을 진행해서 그런지 결과도 꽤 좋게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활기차고, 로맨틱한, 즐거운 콘셉트의 디자인을 잡고 있으면서도 내게 다가온 겨울의 빨간 날들은 그 색깔만큼 따듯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과거 직장생활에서의 겨울, 빨간 날을 앞둔 이틀 같은 하루의 검은 날을 보내며 낯빛조차 흑색으로 물들었던 주변 동료들이 문득 생각이 났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주 이상하게 일을 많이 하면서 높은 업무 강도를 버틸 수밖에 없는 문화였지만, 과거의 그리고 더 과거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던 문화와 습관들이 우리 업계는 원래 이렇다는 생각을 만들 만큼 견고해서 그 시간을 모두가 당연한 듯이 감내했었다.      


그리고 그때 익혔던 작고 작은 습관들이 몸에 익어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 내내 내 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에 내가 잡아먹히는 것을 내가 모르게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들뜬 분위기로 만들어진 거리에서 따로 할 것 없는 날, 오히려 외롭고 적막했던 시간을 채워주었던 일에 위안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해 맞이하는 겨울은 기존 운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충분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일을 함께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재정비와 휴식을 나에게 강요해보고 틀을 만들고 있는 지금 많이 하루하루가 많이 어색하지만 그래도 꽤 그럴듯한 계획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새로운 발 디딤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고 있다. 과거의 일이라는 습관에 잡아먹혀 일상을 보낼 줄 몰랐던 나에게, 그리고 일에 잡아먹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다른 프리랜서들에게 지금의 내가 말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추억이 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멈췄어야 했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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