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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바꿈 Jun 20. 2022

BMW는 오늘도 달린다.

BMW(Bus, Metro, Working)

 코로나 시대 ‘확 찐자’로 내 몸이 10kg 더 생겼다. 뱃살을 줄여보겠다며, 여기저기 떠벌리고 약속한 배바꿈 계획은 먹구름만 가득하다. 작년 초 만 보 걷기, 5km 러닝, 스쿼트를 시작하면서, 줄어드는 낌새를 보이더니 3/4분기를 지나면서, 다시 전 고점을 돌파했다. 코로나로 기획했던 많은 일이 취소되거나 미뤄지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각종 음식에 기대 마음속 허기까지 채워버린 탓이 크다. “오빠! 인생의 절반은 세상이 정해준 표준으로 살아볼 마음 없어?” 배바꿈 실패 원인이 ‘다 그놈에 코로나 때문’이라고 변명해봐도 내 몸무게 변화를 뚜렷이 알고 있는 동거인은 절대로 믿지 않았다.     

 

 또다시 뱃살 극복 프로젝트! 제일 먼저 BMW(Bus, Metro, Working) 출퇴근을 다짐했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뚜벅이, 열차에서는 착석 금지, 다시 직장까지 걸어서 출근하면, 저절로 1일  1만 보가 완성되는 근사한 프로젝트다. 가지고 있는 BMW 중 버스도 자주 이용하는데 유독 버스만 타면 생기는 차멀미 때문에 나는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 전동차는 크게 흔들리지 않아 서서 책을 봐도 문제가 없고, 선로를 달릴 때 나는 ‘덜커덩덜커덩’ 규칙적인 소음은 멍 때리기에도 좋다.   

  

 다만, 출근길 전동차에는 일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그다지 밝은 모습은 아니다. 등산복을 챙겨 입고 어디론가 떠나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한쪽 팔을 약 90°로 접어 스마트폰을 받치고, 고개를 15°쯤 숙인 채 엄지만 움직이는 픽토그램(누가 보더라도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림)들의 쓸쓸한 침묵이 이어진다. 종종 적막을 깨고, 전동차 한 칸을 소음공해로 바꿔놓는 대장부도 있다. 아무도 알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목적지와 동선을 전화에 대고 큰 소리로 떠드는, 중년 남성이 많은 사람들의 두 눈썹 사이에 '내 천자'를 만들어 준다.     

  

 지하철은 어느 노선이나 나가는 곳 계단과 가까운 출입문 앞에서 오픈런(문이 열리자마자 뛰어가는)이 벌어진다. 전광석화같이 첫 번째로 계단을 차지하고도 두 칸씩 뛰어오르는 체력 남도 여럿 봤다. 회색빛 출근길과 딱 어울리는 눈 같은 비가 쏟아진 날이었다. 편치 않은 힐(구두)에 미끄러운 플랫폼, 여기에 오픈런은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출입문이 열리고 재빨리 계단을 향해 뛰어가던 한 여성이 크게 미끄러지면서 ‘꽈당’ 넘어졌다. 그녀는 놀랍게도 순식간에 일어났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는데, 그녀의 더러워진 옷을 보고 많은 여성들이 자기일 처럼 안타까워했다. ‘이른 아침 어디를 가려고 그렇게 뛰었을까?’ ‘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 조금이라고 빨리 즐기고 싶어 서둘렀을까?’ 나 또한 그곳으로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갔다.     


 반면 퇴근길 전철에는 아침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우선 열차 문을 닫을 때 함부로 달려드는 사람이 많지 않아 좋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성큼성큼 뛰는 사람도 드물다. 그저 다음 열차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심지어 어떤 연인은 뒤에 오는 열차가 영원히 안 오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들 뒤에 줄 서 있던 나는 닭살 돋는 대화와 민망한 스킨십에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으이그 아름다운 것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하는 순간 전철이 도착했다. 분명 빈자리가 있는데 여자 친구만 앉고, 남자는 서 있었다. ‘무슨 일이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자고 비벼대던 친구들이?’ 순간 빈 좌석에 붙어있는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 마크가 보였다. ‘지킬 건 지키는구나!’ 나는 조금 전 꼰대 같은 생각을 얼른 주워 담았다. 


 퇴근길 지하철은 아무리 파김치라도 흐뭇한 냄새로 가득하다. 삶의 무게가 아무리 발목을 잡아도 우리 집 귀갓길은 뿌듯하다. 하루를 또 살아냈다는 뿌듯함 때문일까. 내일이면 다시 출근길 오픈런이 날 기다리고 있지만 또다시 뱃살극복 프로젝트 BMW에 내 몸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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