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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바꿈 Dec 26. 2022

오히려 잘 내려와야 편안함에 이를 수 있다.

하산의 맛!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살면서 한 번쯤 읊어봤을 양사언의 '태산가'는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는데 핑계만 대는 사람에게 주로 소환된다. 반대로 어떤 성공을 목표로 정상에 서고 싶은 사람이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설 때  되뇌기도 하는데 정상에 오르는 길이 어디 호라호락한 길인가? 숨이 턱 막히고, 심박수가 귀청에 맴돌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마련이다.  


허벅지에 힘 딱, 주먹 불끈, 이 악물고

 오르고 또 모르면 못 오를 산이 없다는 가사처럼 허벅지에 힘 딱, 주먹 불끈, 이 악물고 깔딱 고개를 너머 서면 치열했던 세상이 소꿉놀이 장난감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마다 자연이 뿜어내는 기막힌 자태에 '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등산의 맛'은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산을 자주 찾게 되면서 자연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는데 '등산의 맛'도 끝내주지만, 잘 내려와야 편안함에 이를 수 있는 '하산의 맛'도 강력추천한다 


'하산의 맛'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새벽산행을 권장한다.

'하산의 맛' 체험 전 칠흑같이 어두운 숲에서 별을 올려다보는 맛도 일품인 데다가 시간 맞춰 정상에 도착하면 웅장한 해돋이까지 서비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쏟아지는 별과 그림 같은 해돋이는 이른에 시작해 쉴 틈 없이 정상까지 올라가도, 때(날씨)가 맞아야 제공되는데 이 서비스는 꼭 '아등바등' 사는 인생과 닮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아쉬움은 딱 여기까지다. 추가 서비스를 봤든 못 봤든 '하산의 맛'은 누구나 맛볼 수 있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하는 공평한 길  

 하산할 때는 번거로와도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스틱을 이용해 조심조심 내려오는게 좋다. 특히 정상에 오르기 위해 있는 체력을 다 써버린 상태라면 반드시 지켜야 뒤탈이 없다.  내려갈 때 넘어지면 올라갈 때 넘어지는 것과 차원이 다른 까닭이다.  하산 길이 등산길 보다 빠르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내려가는 길도 올라온 만큼 가야 하는 공평한 길이다.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새벽 렌턴 불빛을 밟고 허겁지겁 올라왔던 길 주변이 보인다. 앞만 보고 오르던 길이 제법 험하고 긴 여정이었음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이 길을 기어코 올랐구나!'  스스로 감탄하는 것도 '하산의 맛'이다.  오를 때 보지 못한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들어오면 '까짓 뭘 보겠다고 앞만 보고 올라왔나' 싶다.


바닥까지 내려갈수록 더 커지는 마음의 여유

무엇보다 '하산의 맛'은 내 주변 정상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전혀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속 여유가 더 커지는 매력에 있다.  이제 막 들머리 지나 오르막길로 접어든 등산객이 "어머! 벌써 내려오세요? 아니 몇 시에 올라가셨길래?" 부러운 듯 말을 건넨다. 정상에 섰을 때 보다 바닥으로 내려갈 때 더 큰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건 산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신비한 경험이다.  숨소리 거칠게 땀 뻘뻘 흘리며 꼭대기로 올라가는 분들에게 "안녕하세요" 여유 있게 인사하고 주차장 까지 잘 내려온 다음  등산화, 양말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으면 내 발등이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그래 고생했다 무거운 놈 짊어지고 내려오느라..."


조급했던 때가 있었다.

 좋은 직장에 취업한 친구들이 사는 술자리가 좋았고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미래를 걱정했다. 늘 지름길로만 다니는 누군가에게 험담을 퍼부으면서도 사실은 부러웠다. 오르고 또 오르면 정상이 나오고 그곳에서 나를 세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운은 따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천근만근 다리가 무거워도 누군가를 앞질러 가고 싶은 욕심에 정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내 주변의 아름다움을 지나쳐 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내 반백년 삶도 그랬다. 태어난 지 600개월 만에 철들기 시작한 내가 산에서 얻는 교훈은 아무리 높은 꼭대기에 올랐다 해도 누구나 내려와야 하고, 정상에 오르기 위해 갖은 힘을 다 쓰면 내려올 때 몹시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에누리 없이 꽉 찬 50! 

산에서 처럼 잘 내려와야 할 나이,  길어지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에서 스스로 내려오기란 쉽지 않지만, 천덕꾸러기가 될걸 뻔히 알면서 찌질한 월급루팡으로 버티는 건 고통이다.  지금까지 당신의 배에서 마치 내배인 것처럼 항해 한 '직장함'에서 잘 내려와 내가 좋아하는 것에 '꾸준함'으로 배바꿈을 준비한다. 내려올 때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하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내가 올랐던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안내하면서 내려와야 한다. 산에서 잘 내려와야 비로소 편안함에 이르러 다시 산에 오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하산의 맛'처럼 반백년을 잘 내려와야 앞으로 삶에 편안함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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