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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바꿈 Dec 22. 2022

내 뱃속 쓰나미(물설사)를 이겨내고 얻은 깨달음

물설사 상륙작전

 토요일 오후 꽉 막힌 도로에서 운전조차 어려울 만큼 쓰나미(설사조짐)가 시작됐다. 당장 시작할 것 같은 강렬한 분출예감,  나는 급하고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34년 지기 친구들 중 첫 번째로 희망퇴직을 신청한녀석이 '남들 다 골프 칠 때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만 했던 게 후회된다'며 연습장에 살고 있는 사진을 잇따라 올려댔다.  2022년이 가기 전에 친구들끼리 첫 라운딩을 맛보자며 수 차례 시도 끝에 만들어진 약속, 이 것이 내 삶에 큰 깨달음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약속 장소는 차로 1시간 20분 거리 새벽 4시부터 준비해도, 매일 아침 꼭 해야 하는 루틴(대장님 비우기)은쉽지 않았다. 힘을 바짝 줘보고 비데에 엉덩이를 맡겨도 소식이 없는 대장을 대충 괴롭힌 뒤 운전대를 잡았다.  '야~! 어릴 때 맨날 노래방에서 만나던 우리가 골프장 이라니 이렇게 살아도 되는거냐 우리?' 말은 안 하지만 반백년 34년 지기 친구들이 견뎌낸 지난 삶과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고 있는 복잡한 마음은 '척 보면입니다'처럼 공감됐다. 운동을 마치고 행주산성 맛집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을 때까지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집으로 가는 길,  내비게이션은 집 도착 시간을 1시간 50분 뒤로 안내했다. 20분쯤 지났을까?  뱃속에서 대장님 기지개 켜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기어코 새벽에 내보내지 못한 오물을 지금 당장 뿜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방금 전까지 차 안에서 친구들과의 흐뭇한 시간을 회상하며 '돈 많이 벌어 전국의 멋진 골프장을 친구들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는데 그 소망은 단번에 사라졌다.  오직 차속에서 예상되는 불상사만 막아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큰 소리로 외쳤다. '제발! 제발!'


 나는 얼른 네비를 터치해 봤다. 지나는 길에서 가장 가까운 휴게소는 약 22km, 40분 후 도착이다. 다행히 뱃속 쓰나미는 조금 전 보다 잠잠해졌다. '이대로 40분만 버텨다오' 식은땀이 범벅된 상태로 내 모든 힘을 괄약근으로 집중했다. 그러나 주말오후답게 노란색이던 도로상황은 점점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고, 스마트한 네비는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라며 길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도 휴게소 안내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뜨악!  이게 웬일' 자동으로 재탐색된 경로는 휴게소가 없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설상가상 진통까지 10분 간격으로 몰려오더니 급기야 모든 걸 내뱉어야 해결된다는 최종 신호에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 됐다. 1분 1초라도 서둘러 집으로 가야 할 텐데 고속도로에서 엑셀에 발을 올려놓는 것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집도착예정 시각은 무려 40분 후  '오! 신이시어 내 괄약근을 슈퍼맨 괄약근으로 교체해 주소서...' 기도가 먹혔는지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 이때부터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없다. 엑셀에 발을 띠지 않고 줄기차게 달렸다.


 집 근처에 도착할 무렵 이제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는 듯 내 몸속 쓰나미는 모든 걸 밀어붙였다.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고 지하주차장 입구로 진입하려는 순간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해 방지턱을 거세게 통과했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대장님께 전달됐고 찌릿한 느낌이 머리를 감쌌다.  지하 주민공동센터 앞 공간에 차를 주차하고(아니 버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공동 화장실까지 남아있는 온 힘을 괄약근으로 모아 쭈뼛쭈뼛 걸었다.  


 결과는 대성공!

마침내 울분을 토해내는 대장님을 깨끗하고 완벽하게 뒷바라지했다.  내 몸속 쓰나미를 이겨내고 친구들과 함께한 멋진 추억을 주말오후 내내 이어갈 수 있었다. 종교는 없지만 내 기도를 먼저 들어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다만, 이대로 죽어도 원한이 없을 만큼 소중한 내 소원 하나를 순식간에 도둑맞은 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또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면 두 번째 소원도 내줘야 하지 않을까?  


 내 뱃속 쓰나미를 이겨낸 후 나는 크게 깨달았다. 아무리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꽉 막힌 도로 한 복판 차 안에서 물설사를 뿜어야 하는 상황보다 더 하겠는가? 앞으로 직장에서, 사람관계에서 벌어질 작은 쓰나미 같은 일에는 분노조절장치 따위가 필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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