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 잦았다. 동남아 스콜처럼 잠깐 쏟아지고 그치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억수같이 퍼붓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씨가 이어지던 여름날 오후, 책방 식구들은 둘러앉아 걱정을 했더랬다. 저녁 7시 30분부터 무려 미국에서 바다를 건너온 로버트 파우저 선생님을 모시고 '외국어 학습담' 북토크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세차게 내리는 폭우가 그칠 기미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시곗바늘이 7시 정각에 가까워지자 걱정이 무색하게 한 분 두 분 도착해 연신 젖은 치맛자락과 바지자락을 털어냈다. 행사 오프닝을 할 때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 장면을 보니 책방으로 걸음 하는 수고에 괜스레 울컥했다. 나라면 폭우를 뚫고 왔을까?
그날의 북토크는 90분이면 끝날 것이 무려 130분이나 이어졌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질문하는 분들과 성심을 다해 대답하는 로버트 파우저 선생님의 모습에 차마 시간이 지났다고 싹둑 끊을 수가 없어 한 발 물러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간혹 한 두 분은 먼 귀갓길로 인해 허리를 숙이며 책방을 나서기도 하는데, 이 날은 한 분도 자리를 뜨지 않고 집중하고 있었다.
객석의 독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이전 답변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들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고 연사는 그에 부응하려는 듯 지친 기색 없이 독자와 눈을 맞추고 자신의 지난 경험담과 인사이트를 건넸다. 행사에 참여한 독자도, 초대받은 연사도, 자리를 만든 책방도 신나는 이 순간. 이렇게 삼박자가 딱 맞아 빛나는 날이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 시작할 땐 느슨했던 연대가 점점 엮여가는 것이 보인다. 막막한 마음에 책방으로 걸음 했는데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먼저 경험한 이의 지혜를 나누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고, 찾아 헤매던 해답과 가까워지는 시간.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130분이 지나고서야 클로징 멘트를 하려는데, 외국어 공부를 하다 막막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마지막 질문이 떠올랐다. 대뜸 막막해질 때, 오늘 저녁 여러분의 모습을 떠올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긴 일과에 지쳤을 텐데 잘하고 싶은 마음에 쏟아지는 비를 뚫고 최인아책방에 걸음 하신 오늘의 열의를 기억하시라고, 그 마음에 오늘의 강연을 더하면 무슨 언어든 분명 해내실 거라고. 진심이었다. 빛나는 순간은 정작 자신은 알지 못한다, 그걸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오늘 이곳을 가득 채운 여러분이 빛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궂은 날씨에도 걸음해 주신 독자 분들과 유창한 한국어는 물론 넘치는 위트로 그날 밤을 그득 채워주신 로버트 파우저 선생님의 정성에 하루가 지나고도 감동이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이런 밤, 책방의 존재 이유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날이면 일이 몰려 지쳐있다가도 신기하게 다시금 힘이 난다.
아무리 책방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훌륭한 연사를 모셔도 결국 그 행사를 완성하는 것은 참여자들의 몫이다. 참여자가 적으면 결국 연기되거나 폐지 수순을 밟아야 한다. 클릭 한 번이면 현관문 앞으로 모든 것이 배달되고 터치 몇 번이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오프라인 책방이라니. 그것도 회사, 집, 학교에서 기나긴 일과를 보내고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복잡한 강남 한복판이라니. 게다가 마치고 집까지 돌아가는 길은 어쩌란 말인가. 그 수고로움은 감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책방의 6주년 기념행사에서 최인아책방에 오시는 분들도 각자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날을 만나도록 힘쓰겠다던 순간이 떠오른다. 기쁜 날이 아니라도, 지치고 힘들어 마음의 여유가 쪼그라드는 날에도 잊고 싶지 않은, 유난히 빛나는 날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