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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민 Oct 29. 2022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려면


브런치 브랜더 마케터이자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의 저자 김키미 님을 처음 만난 건 책방 일을 시작한 지 겨우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매일 저녁 신경을 곤두세우고 행사 상황을 살피기 바쁜 햇병아리 매니저인 데다 첫 온라인 북토크를 진행하는 날이었다.


청중보다는 관계자에, 경청보다는 귀동냥에 가까웠던 그 시절에도 자꾸만 귀가 쫑긋 세워졌다. 뒤로 갈수록 결국 손에서 일을 놓고 집중하게 되었다. '민들레 홀씨를 불어라' 나의 이야기를 꺼내어 공개하라는 맥락이었다. 일에서 '전문성'이 아닌 '정체성'을 찾는다는 말과 하나의 단어 '공개'를 두고도 심도 깊은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면서도 자극적이기까지 했다.


그 주 주말, 작가 승인이 떨어진 지 반년이 지나도록 올리지 않던 브런치에 첫 글을 개시했다. 작가님의 행동력 부르는 힘은 이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는 북토크가 끝난 지 꽤 지나서야 책을 펼쳤는데 흠뻑 빠져 삼일을 꼬박 읽고도 다시 꺼내 펼쳐보곤 했다. 그러던 와중 작가님이 리추얼 메이트로 나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미나 작가님과 함께했던 소규모 세션이 내 인생에 미친 파급력을 생각하면 고민의 여지없었다. 바로 meet me에서 진행되는 '셀프칭찬일기' 리추얼.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이것은 또다시 깨닫고 얻기의 연속이었다. 활동 기간 4주가 지나고 첫 회고 미팅을 하기 전, 지난 나의 일기를 훑어보는데 오늘 책방에서 해낸 일들의 나열이었다. 책방 일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었지만 동시에 내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부분이 굉장히 크다는 걸 인정하는 계기였다. 동시에 바쁜 일상 속 친구의 생일을 준비하고 제주로 애정을 담아 책을 보내고 주위 사람들을 챙기는 나의 모습을 내가 아주 애정 한다는 것. 지난 4주간 매일 삶의 무게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십 장의 데이터를 쌓아온 것이다.

 

수개월이 지나고 칭찬일기 1기의 단체 채팅방을 깨우는 알람이 울렸다. 오프라인 번개 모임이 제안되었는데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나누던 중 키미님이 대뜸 ‘정민님, 책 내신다고요? 여기서 선언해요! 선언의 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혼자서만 생각하던 일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한 번도 언급한 적은 없는 일이라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만 굴러다니다 입 밖으로 꺼내고 나면 아주 다른 전개가 펼쳐진다. ‘올해 안에 책을 낼 거예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것이 안되면 최인아책방 북메이킹 클래스에 참여할 테니 2022년 안에 무언가는 나오겠죠!’라고 내뱉었다. 선언한다, 기대한다, 기다려진다처럼 상대의 응원을 받게 되면 의욕이 솟는다. 이제 혼자만의 일이 아닌 약속이 된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 해 보지 못한 일에는 집단 지성이나 앞선 경험자의 조언이 진행 속도를 올린다. 어떤 주제로 무얼 써야 할지 개업식 풍선인형 마냥 정처 없이 나부끼는 와중에 다시 한번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리추얼 모임 속 키미님이 주관하는 일회성 번개 모임 <초안 클럽 칭찬 번개점>이었다. 누구나 사업 초안, 글쓰기 초안, 프로젝트 초안처럼 무엇이든 본인이 구상하고 있는 날 것 그대로를 발표하고 주변의 피드백을 받는 자리이다. 단, 유일한 규칙은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 


소소한 일상을 공유해 오던 사람들의 생각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을 알아갈수록 더 강하게 응원하게 되는 것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수록 칭찬과 응원의 힘은 배로 강해졌다. 혼자 끄적인 책 목차를 내밀며 '도대체 사람들이 이걸 궁금해할까요?'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내놓았다. 멤버들은 나는 일을 하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브런치나 블로그 글을 읽어본다거나 책방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거나 다양한 의견을 스스럼없이 건네주었다. 초안이 발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될까? 물음표에서 될 거야! 느낌표로 바꾼 것이 큰 수확이었다.


다음은 쓸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문제인데 회사를 다닐 때는 저녁 6시면 서둘러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9시쯤 책상에 앉아 새벽 2-3시까지 블로그를 하곤 했다. 그런데 책방은 온종일 무언가를 쓰고 저녁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0-11시였다. 낮 12시 출근이지만 새벽에야 잠에 드니 올빼미 생활을 했으니 눈만 뜨면 씻고 출근길에 오르기 바빴다. 24시간이 이미 가득한데 언제 쓰지? 다시 물음표의 등장이었다.  


이 문제의 해결사는 은나였다. 대부분 밤 시간대를 선호하기에 오전 시간을 맞추기란 쉽지 않은데 마침 리추얼 모임 멤버였던 은나와 마음이 맞았다. 매일 아침 9시 줌에서 만나 간단한 인사를 건넨 후 한 시간씩 쓰기로 했다. 혼자라면 이불에서 나오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너무도 많다. 어젠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밤늦게까지 행사가 있으니까,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니까. 그런데 지금은 늦어도 아침 8:55에는 이불에서 나와 노트북을 켠다. 약속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변명을 떠올릴 겨를 따위는 없다. 이 단순한 반복이 놀랍게도 올빼미에게 아침을 만들어냈다.


무언가를 지속하는 일은 의문의 연속이다. 이게 될까? 이 방향이 맞을까? 별론데? 해서 뭐하나? 뭐가 달라지긴 하려나? 올해를 보내며 느낀 점 하나는 혼자서는 목적지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불쑥불쑥 의문만 생길 뿐 좀처럼 명쾌한 해답이 나오거나 느낌표를 찍을 일이 드물다. 왜냐하면 정답이 있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럴 땐 혼자보단 둘이, 둘보단 셋이, 셋보단 넷이 낫다. 누구 한 명이라도 된다! 를 외치거나 나를 제외한 셋이 된다! 를 외치면 의심은 잦아들고 그건 가능한 일로 단숨에 변신한다. 될까? 가 해볼 만한다? 되겠다! 가 되는 순간이다. 앞서 회사 밖으로 나서라는 이유도, 당신과 내가 연결되고 싶다는 이유도 전부 이 때문이다.


우리는 된다! 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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