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미픽미 픽미업!
요즘 동네에 은은하게 활기가 돈다. 문구점에서, 사진관에서.
아직 한 해를 시작하려면 한 달이나 남았고, 그렇다고 새 학기가 시작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
그렇다. 각 학교별로 전교학생임원 선거 시즌이다. 얼마 전까지 내가 이 시즌을 관심 있게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딸이 종이 한 장을 펄럭이며 하교하기 전까지는.
“엄마!! 나 전교부회장선거 나가려고!.”
펄럭거리는 종이는 다름 아닌 추천서였다. 친구 15인의 추천 사인을 받아야 출마할 수 있다. 아직 3칸 정도가 남았으나 추천서 제출 전까지 이틀 남았으므로 여유 있게 받을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다.
붙든, 떨어지든 꾸준히 반장선거에 나갔다. 붙으면 붙은 대로, 떨어지면 수고했다며 아이를 위로하고, 칭찬했다. 그것까지는 응원했는데 전교부회장이라니.
학생회장선거 출마가 갑자기 이뤄진 건 아니었다. 3학년이 되어 투표권이 생기자마자 아이는 투표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설레했고, 선배들의 선거 유세를 보고 오자 나중에 꼭 4학년 2학기때 자격이 주어지면 출마하겠다고 얘기했다. 나와 남편은 한참 남았기에 설마 그때까지 그 의지가 남아있겠어... 하고는 아이에게 하고 싶으면 하라고 지지했었다.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고 출마자격이 생기자마자 추천서를 휘날리며 하교를 한 것이다.
5학년 부회장 후보는 모두 11명. 내년 5학년이 될 현 4학년 아이들은 약 120명 정도 된다. 4학년의 10퍼센트나 출마를 한다니. 예전처럼 부모가 떠밀고, 친구들이 떠밀어서 나온 게 아니라 스스로 손을 든 아이가 11명이나 되는 것이다. 역시 알파세대답다.
학생 임원은 모든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에 개인 생활 태도가 부족할 시 절대 출마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툴툴거리던 아이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어머니! 숙제하러 가겠습니다.”
낯선 효녀가 나타났다.
며칠이나 갈지 의심이 가지만, 어쨌든 선거 끝날 때까지는 효녀 모드를 잘 구슬려 봐야겠다. 이번에 떨어지면 기회는 또 있으니 다음에 또 출마하고 싶으면 계속 모범생으로 빙의해야 한다고.
과연 아이는 학생임원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는 있을까.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다른 이들을 위해 소진하겠다는 투철한 봉사 정신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시작은 권력의 맛이었을지 몰라도 끝은 봉사의 맛을 알았으면 좋겠다. 앞에서 이끌기만 하는 리더가 아닌 속도가 느린, 혹은 방향이 다른 친구들도 돌아보고 서로 밀어줄 수 있는 리더의 경험을 해 보았으면. 자신의 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이가 혹여 당선이 되어 오히려 누를 끼칠까 어미는 벌써부터 김칫국부터 들이키며 걱정이 한가득이다.
연설문, 포스터, 홍보물까지 준비 끝. 이제 이틀 후면 결전의 날이다. 물론 당선되면 좋겠지만 낙선한들 어떠리. 아직 기회는 3번이나 남았고, 이번을 경험 삼아 다음에 더 열심히 준비하면 되니까. 다음번엔 반짝이도 좀 넣고, 사진도 멋들어진 걸로 준비해야지.
오늘도 엄마와 딸은 함께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브런치 에디터들을 향해
아이는 투표권을 가진 학우들을 향해
“픽미픽미 픽미업! 픽미픽미 픽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