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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Dec 13. 2023

권력의 맛, 혹은 봉사의 맛

픽미픽미 픽미업!

요즘 동네에 은은하게 활기가 돈다. 문구점에서, 사진관에서.

아직 한 해를 시작하려면 한 달이나 남았고, 그렇다고 새 학기가 시작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

그렇다. 각 학교별로 전교학생임원 선거 시즌이다. 얼마 전까지 내가 이 시즌을 관심 있게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딸이 종이 한 장을 펄럭이며 하교하기 전까지는.


“엄마!! 나 전교부회장선거 나가려고!.”     


펄럭거리는 종이는 다름 아닌 추천서였다. 친구 15인의 추천 사인을 받아야 출마할 수 있다. 아직 3칸 정도가 남았으나 추천서 제출 전까지 이틀 남았으므로 여유 있게 받을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다.      

붙든, 떨어지든 꾸준히 반장선거에 나갔다. 붙으면 붙은 대로, 떨어지면 수고했다며 아이를 위로하고, 칭찬했다. 그것까지는 응원했는데 전교부회장이라니.      


학생회장선거 출마가 갑자기 이뤄진 건 아니었다. 3학년이 되어 투표권이 생기자마자 아이는 투표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설레했고, 선배들의 선거 유세를 보고 오자 나중에 꼭 4학년 2학기때 자격이 주어지면 출마하겠다고 얘기했다. 나와 남편은 한참 남았기에 설마 그때까지 그 의지가 남아있겠어... 하고는 아이에게 하고 싶으면 하라고 지지했었다.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고 출마자격이 생기자마자 추천서를 휘날리며 하교를 한 것이다.      

by pixabay

5학년 부회장 후보는 모두 11명. 내년 5학년이 될 현 4학년 아이들은 약 120명 정도 된다. 4학년의 10퍼센트나 출마를 한다니. 예전처럼 부모가 떠밀고, 친구들이 떠밀어서 나온 게 아니라 스스로 손을 든 아이가 11명이나 되는 것이다. 역시 알파세대답다.      


학생 임원은 모든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에 개인 생활 태도가 부족할 시 절대 출마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툴툴거리던 아이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어머니! 숙제하러 가겠습니다.” 

낯선 효녀가 나타났다.      

며칠이나 갈지 의심이 가지만, 어쨌든 선거 끝날 때까지는 효녀 모드를 잘 구슬려 봐야겠다. 이번에 떨어지면 기회는 또 있으니 다음에 또 출마하고 싶으면 계속 모범생으로 빙의해야 한다고.     


과연 아이는 학생임원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는 있을까.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다른 이들을 위해 소진하겠다는 투철한 봉사 정신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시작은 권력의 맛이었을지 몰라도 끝은 봉사의 맛을 알았으면 좋겠다. 앞에서 이끌기만 하는 리더가 아닌 속도가 느린, 혹은 방향이 다른 친구들도 돌아보고 서로 밀어줄 수 있는 리더의 경험을 해 보았으면. 자신의 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이가 혹여 당선이 되어 오히려 누를 끼칠까 어미는 벌써부터 김칫국부터 들이키며 걱정이 한가득이다.           

포스터 만드는데 열일 중

연설문, 포스터, 홍보물까지 준비 끝. 이제 이틀 후면 결전의 날이다. 물론 당선되면 좋겠지만 낙선한들 어떠리. 아직 기회는 3번이나 남았고, 이번을 경험 삼아 다음에 더 열심히 준비하면 되니까. 다음번엔 반짝이도 좀 넣고, 사진도 멋들어진 걸로 준비해야지.


오늘도 엄마와 딸은 함께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브런치 에디터들을 향해  

아이는 투표권을 가진 학우들을 향해

   

“픽미픽미 픽미업! 픽미픽미 픽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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