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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May 24. 2024

끈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사주에 끈기가 없다고 했다. 


진짜 사주 때문인지, 아니면 그 말을 듣고 나서 거기에 내 성격을 끼워 맞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난 끈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의욕 넘치게 무언가를 시작했지만 끝은 흐지부지. 공부도, 취미도,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처음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가 아니고 처음은 창대 했으나 끝은 항상 미약하기 마련이었다.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6개월 남짓. 글쓰기 초보다. 브런치에서는 고맙게도 작가님이라고 불러주기는 하지만 작가는커녕, 아직 햇병아리일 뿐. 시작은 그럴싸했다. 브런치 글 쓰기 수업을 시작하고 우여곡절 끝에 작가로 통과되었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역시 우물 안 개구리였나. 바닷가까지도 아니었다. 잠시 냇가로 나갔을 뿐인데 필력이 엄청난 은둔 고수들이 여기 다 있던 것만 같았다. 아.. 또 이대로 난 쭈구리가 되는 것인가.

커피 한잔의 여유... 가 아니라 머리를 쥐어짜는 중. 써도 써도 어렵습니다만.

의욕이 넘쳤다. 딸과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었고, 나의 진솔한 이야기도 꺼내놓고 싶었다. 누구 하나 기다리는 이 없고, 빨리 나에게 글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이도 없었지만 열심히 썼다. 글쓰기 병아리에게 대단한 필력이 어디 있으랴. 그저 라이킷 하나에 웃고, 댓글 하나에 설레었다. 그리고 함께 시작한 다른 작가님들과 글쓰기의 고통을 토로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으쌰으쌰 한참 힘을 냈다.

하지만 역시 6개월 차에 접어드니 이제 시시해지는 건가. 쓸 거리가 없다. 티브이 속 연예인들이 예능에 나와 소재거리를 찾아 헤맨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유명 연예인도 아닌 한 낱 범인(凡人)인 내 이야기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매일 보는 딸과의 사이를 돌아보니 아이는 여전히 춤을 추고, 여전히 속이 터진다. 아이의 입맛도 변함이 없었으며 내 일상은 그럭저럭 다행히 큰 사건사고는 없었지만, 동시에 쓸 이야기도 없다는 뜻이었다.


나를 돌아보자니 삶이 재미가 없었다. ‘내 인생을 책으로 쓰자면 100권도 더 나오겠다.’라는 우리 엄마들의 인생처럼 스펙터클 하지 않아서 그런가 매일 잔잔했다. 고요하고 큰 물결이 일어나지 않았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또 인간인지라 감사함은 금세 잊어버리고 소재가 없음을 한탄하고 있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핫한 글들을 읽어본다. 망했던 집에서 꿋꿋하게 살아 냈던 이야기. 자의로, 혹은 타의로 남편과 이별한 이야기, 해외여행이 아닌 외국 생활로 인해 힘들었던 이야기들. 그럼 나도 핫한 글들을 한 번 써볼까 했다. 내 삶을 돌아보니 집이 부유한 것은 아니었으나 알뜰했던 부모님 덕에 밥을 굶었던 일은 없었다. 그럼 그다음. 인기 있는 글을 쓰자고 가정에 성실하게 일조하고 있는 남편과 불화를 만들 수는 없다. (뭐.. 불화를 만들어 글을 쓰면 인기 있는 글이 되긴 하겠다. 온통 내 욕으로 도배는 되겠지만 ㅎㅎㅎ). 음.. 그리고 해외살이는… 시간적, 경제적, 체력적 여유가 모두 안 돼서 탈락. 아.. 그렇다면 나에게 핫 한 글쓰기 소재는 없단 말인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글 쓰기를 나 혼자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매일 브런치스토리에 알람이 울린다. 다른 작가님의 글이 등록되었음을 친절한 브런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알려주었다. 너 쓰고 있지 않으려면 읽기라도 해..라고 말하는 듯 새 글이 다양하게 올라온다. 슬픈 일, 기쁜 일, 직장이야기, 가족이야기, 감동적인 글, 재미있는 글, 소재도 주제도 다양하다. 세상에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왜 난 그동안 소재가 없다며 내 밋밋한 삶을 타박했을까. 참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글을 읽다 보니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한다. 6개월쯤 되면 술술 써지고, 글이 멋드러 질 줄 알았는데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자다가 이불킥을 한 100번쯤 할 것만 같다. 

금손 작가님들의 선물. 으쌰으쌰 또 열심히 써 봐야겠다.

오늘도 기다리는 이 하나 없는 약속된 연재 일이기에 꾸역꾸역 키보드를 눌러본다. 어랏. 누르다 보니 어느새 한 페이지가 얼추 채워졌다. 이런 놀라운 일이. 끈기가 없는 내가 6개월이나 하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앞으로 6개월을 넘어 6년, 16년을 더 쓰면 다들 읽으면서 감탄을 할 수 있는 글이 나올까 싶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같은 이 엉망진창인 글보다는 훨씬 나아지겠지.



오늘도 일단 끄적여 본다. 무슨 말인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끄적여 오늘의 흔적을 남긴다. 남기고 또 남기다 보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지고, 무슨 일이든 생기겠지.


웃길지 모르겠지만... 사주에 끈기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 또 쓸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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