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 Here Live Here Jul 24. 2017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관심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을까

디자인 가치를 존중하는 나라 ‘네덜란드’에서 살다.


내게 ‘네덜란드라는 나라를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디자인이 흘러넘치는 나라’라고 답할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그에 대한 비용도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네덜란드는 디자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서가 공고히 형성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디자이너의 수가 많다 보니 이들의 손길이 사회 전반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에 가면 우유팩, 식초병 등 평범한 일상 용품 하나에서조차 아름다운 디자인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슈퍼마켓을 다녀올 때마다 ‘필요한 물건을 잘 샀군’하는 생각보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물건들이 넘쳐나지’라는 생각에 기분이 절로 좋아지곤 했다.


길가의 푸드트럭 하나에도 디자인이 넘쳐흐른다. 둥근 글자체와 동글동글 메뉴판, 원목 테이블과 벤치, 샛노란 컬러가 예쁘다.



네덜란드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몬드리안을 포함한 네덜란드의 젊은 화가들이 수평선과 수직선, 흰색, 검은색, 원색으로만 그림을 그린 신조형주의(De Stijl)가 지향한 스타일이 미니멀리즘이다. 올해 신조형주의(De Stijl) 탄생 100주년을 맞아 <Mondrian to Dutch Design(몬드리안에서 네덜란드 디자인까지)> 행사와 전시회가 네덜란드 전역에서 열리고 있으니, 올해 네덜란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좋은 디자인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아머스포트(Amersfoort)에 있는 Mondrian House를 방문을 추천한다.


신조형주의(De Stijl) 탄생 100주년을 맞아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Mondrian to Dutch Design> 행사들



네덜란드는 공간 디자인으로도 명성이 높은 나라다.


암스테르담(Amsterdam)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건축물들이 무척 오래되었다는 것, 가끔 새 건물이 보이기는 하나 옛 건물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건물의 오래된 외부와 달리 내부는 젊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리모델링되어있다는 것, 이렇게 세 가지였다. 외적으로는 유구한 역사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은 영생의 샘물을 마신 듯 젊은 공간은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것으로서 나는 이러한 야누스와 같은 디자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한편 유트레흐트(Utrecht)에서는 리트펠트 슈뢰더 하위스(Rietveld Schröderhuis)는 암스테르담에서 본 것과는 다른 공간 디자인을 보여준다. 신조형주의(De Stijl)가 추구하던 바를 담은 이 작은 집은 근대 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1920년대에 지어진 일반 가정집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모던한 내외부 디자인과 내부 공간 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혁신적인 내부 구조를 지니고 있다. 리트펠트 슈뢰더 하위스(Rietveld Schröderhuis)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페이지 중간에 위치한 유튜브를 클릭하면 젊은 네덜란드 남자가 내부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네덜란드에 공부하고 일하며 거주한 5년간 기숙사, 단독주택, 공동주택 구옥, 신축, 사무실, 창고, 강의실, 전시관, 공장, 호텔, 클럽, 공연장에 이르는 다양한 공간들을 직접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공간 디자인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서서히 눈을 뜨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의 집에서 콩나무를 탄 재크가 되다.  


내가 네덜란드에서 살며 경험한 여러 공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을 단 한 곳만 꼽으라고 한다면, ‘토마스네 집’이다.  


큰 키에  발그레한 뺨. 금갈색 곱슬머리, 약간은 통통한 체격을 가진 귀여운 인상의 토마스. 암스테르담 대학(Universiteit van Amsterdam)의 동기인 토마스는 정통 네덜란드인으로 부드럽고 유순한 성격에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내가 연 파티에 초대받은 그는 어느 여름날 자신도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며 나를 초대했다.


그가 미리 알려준 주소로 찾아간 그의 집은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에 해당하는 Kalverstraat 지역에 위치한 5층의 흰색 건물이었다. 이 지역의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몇 백 년의 세월을 드러내는 외관이었고, 골목을 향해 나있는 커다란 1층 창문을 통해 흰색 주방과 대형 원목 식탁이 놓여 있는 다이닝룸이 보였다.


토마스네 집은 암스테르담 운하 옆에 위치해 있지는 않았지만, 사진에서 가장 우측에 위치한 흰색 건물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토마스는 식사를 하기에 앞서 이 집에 대해 그리고 같이 사는 친구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했고, 이 날 나는 내 생애 가장 놀랍고도 재미있는 구조의 건축물을 경험하게 되었다. 토마스가 사는 건물은 일자 계단 비슷한 큼직한 원목 사다리가 층과 층 사이에  걸쳐져 있어 이것을 타고 한층 한층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는데, 올라가면 층별로 (방문이 없는) 하나의 뻥 뚫린 공간(방)이 펼쳐졌다. 구조로 보건대 애초 주거용도가 아닌 무역을 통해 암스테르담 항구로 들어온 물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지은 건물 같았다.


토마스를 포함해 네덜란드인 대학생 4명이 살고 있었고, 나는 토마스를 따라 층층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각 층의 주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집 구경을 하며 가장 신기했던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네덜란드인들이 문이 없는 개방된 구조에서 산다는 것(아마도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집을 구하기 힘든 것도 요인이었을 것이다. 나야 국제 학생이라는 이유로 기숙사를 배정받아 편하게 살았지만), 그리고 층과 층 사이에는 사다리가 걸쳐진 좁은 틈새밖에 없는데 침대와 옷장 같은 큰 가구들을 어떻게 안으로 들였을까에 대한 것이었다(지금 생각하면 창문이 크니 여기를 통해 들인 것 같다). 나는 각 층 주인들의 개성과 활력이 느껴지는 층별 인테리어 디자인을 슬쩍 감상하며, 마치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하늘 위에서 새로운 세상을 본 재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 건물의 주인이 토마스의 부모님이고, 그의 집안이 의도적으로 원래의 구조와 특색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네 같으면 조금만 불편해도 구식이라고 치부하여 내부를 뜯어고칠 생각을 했을 텐데, 구옥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토마스 집안의 철학이 멋지게 느껴졌다. 아울러 이 구옥의 독특한 구조에서 서로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20대의 네덜란드 젊은이들도 멋지게 느껴지면서 동경심마저 들었다. 건물주의 철학과 사는 사람들의 밝은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아서였을까?! 나 역시 기회가 된다면 이 매력적인 구조의 집에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테리어 디자인이 삶의 행복을 높일 수 있다는 꿈을 갖다.


네덜란드에서 다채로운 디자인 경험을 했던 내게 한국 사람들의 비슷한 옷차림과 그들이 한결같이 짓고 있는 지치고 굳은 표정은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나는 이런 도대체 어떤 이유로 네덜란드와 한국 간에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 것인지 궁금해졌고, 한국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손에 들어온 잡지에서 이탈리아의 한 공동주택이 각각의 집을 각 거주자의 요구를 반영해 지어졌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고민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았다는 느낌이 찾아왔다. 이 주택은 중산층 1~2인 가구를 위한 작은 평형대의 집으로 기사에는 침실과 거실의 창 사이에 네모난 실내 수영장을 만든 젊은 부부, 집 안 내부를 미로처럼 만든 남자 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현한 집에서 사는 집주인들의 미소에는 사진 촬영용 이상의 진짜 행복이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획일화된 구조의 집에서 비슷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집에서만이라도 온전히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공간에서는 그렇지 못했을 것 같았다. 토마스의 집을 포함해 내가 경험한 네덜란드의 다양한 주거공간들이 떠올랐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더 유연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에는 집이 주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다짐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사람들의 일상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으니, 언젠가 이를 실천에 옮겨보자.’라고.


사실 인테리어 디자인은 단순히 집의 겉모습을 꾸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Interior’라는 단어의 역사를 살펴보면, ‘내부, 내면’을 가리키는 라틴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것이 ‘건축물 내부의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내면을 디자인하는 것’이라는 상상을 자주 하곤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고유성에 대해 파악할 권리와 의무가 갖고 태어났다. 스스로를 파악하면, 자신이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기준이 생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안다고 해도 그것을 공간에 구현할 용기를 과감하게 발휘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는 내가 사는 공간임에도 자신이 원하는 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너 좋자고 이렇게 만들면 나중에 집이 안 팔릴 거야.”, “인테리어 디자인은 돈 버리는 거야. 제값 받고 팔 수 없다니까.” 와 같은 주변인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한국인은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껴안은 채 현재의 행복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반면 내가 경험한 네덜란드의 집들은 집의 외부는 비슷할지라도 집 내부는 거주자의 개성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한 껍데기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목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주인의 문화이자 생활양식이었다.


 친구의 이웃집. 네덜란드인 60대 부부의 주방. 이 부부는 몇 년 전 리모델링을 하며 '자신들이 사랑하는'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를 선택했다.


“당신의 집은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의 컬렉션이 되어야 한다.” - 미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네이트 버커스(Nate Berkus)


그의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인테리어 디자인은 공간에 나를 표현하는 행위’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 누가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해도 나의 가치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본 후에야 답이 도출되는 행위.


나는 한국사람들이 당당하고 밝은 표정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삶과 공간에 대해 타인이 답을 내려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선택을 내리는 자기 자신을 믿어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바람이 내가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출발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