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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Jul 31. 2017

인테리어 디자인 마음 처방전

미움이 애정으로

인테리어 디자인, 기쁘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하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사람들의 일상을 보다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으니 언젠가 이를 실행해보자’라고 마음먹은 뒤, 나는 회사일로 바빠 이 꿈을 잠시 잊었다. 그러나 진심이 담긴 꿈은 무의식 어딘가에서 실현될 때를 기다리고 있는 법.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로부터 약 3년여 뒤 우연한 기회에 인테리어 디자인 공부를 하게 되었다.  


나는 당초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생각하며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꿈을 꾼 것이었지만, 신은 내게 ‘다른 사람을 위해 하기 전에 우선 스스로에게 적용해봐’라는 계시(?)를 주었다. 나는 이사 갈 새집을 운명처럼 만났고, 그 운명은 ‘새집’하면 떠올리는 기쁨의 감정과는 먼 미움과 증오를 동반하며 다가왔다.


그해 봄, 나의 마음은 처방전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였다. 새로 이사 갈 집을 가벼운 마음으로 물색하던 중, 그날 신문 기사에 난 서울의 아파트를 별생각 없이 보러 갔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문제가 있던 집을 무지했기에 얼결에 계약했고, 그 후 두어 달 간 양심을 등진 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던 세 명 -집주인, 양심불량 동네 중개업소, 또 다른 가짜 공인중개사(일반인이나 자신을 공인중개사라고 하며 가짜 명함을 가지고 다님)-으로부터 온갖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경험하게 되었다.


기존의 법적 문제에 더불어 설상가상으로 관공서에서는 지방세 미납건이 있어 조만간 압류가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알려주었고, 구청 담당자는 해당 동네 부동산이 여러 건의 민원이 접수된 일처리가 매우 불량한 중개업소라는 답변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계약일에 거액의 돈을 납입한 상태였고(심지어 당시 최고가로 매수했다), 며칠 후 나는 수년간 땀 흘려 모은 돈이 하늘로 증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끼니도 거르고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고민이 컸지만,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경제적&정신적 희생을 치르며 일을 종결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주인이 마치 우리에게 은혜라도 베푼다는 듯한 태도로 거드름을 피우며 집을 비우고 난 다음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나 그 집에 들어가서 살고 싶지 않아. 그간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너무 치가 떨려. 바로 다시 팔았으면 좋겠어.”


그러나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 모든 문제를 해결했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집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어. 지금부터는 네가 이 집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어야 하는 때인데 너는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구나. 이런 너한테 무척 실망했고 화가 나.”

 

당시 매수한 새 집에 대한 내 마음은 ‘미움’을 넘어서 ‘증오’에 가까운 상태였고 이런 내 마음 상태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성적으로는 그 또다른 목소리가 수긍이 되었다. 결국 나는 내키지 않았으나 억지로 마음을 돌려 인테리어 디자인 준비를 시작했다.



나과 집, 상처부터 치유까지 서로 똑 닮았다.


계약을 체결한 날, 한밤중에 집을 잠깐 본 것이 다였다. 이 집에 들어가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기에 그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인 공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집 상태를 보고 사진을 찍어놓는 기본적인 준비를 해야 했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새집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한낮에 본 집의 기본적인 상태는 다행히 훌륭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전주인이 집을 함부로 대한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현관문의 한쪽 가장자리가 파도치는 듯한 형태로 우그러져 있었다. 관리사무소와 이웃들에게 문의하니 전주인이 술에 취해 새벽에 들어오면 자동 키를 누르지 않고 연장으로 현관문을 헤집어 놓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가니 집안은 음식물 쓰레기를 포함 여러 점의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최고가에 매수한 데다 문제가 더 커지지 않기 하기 위해 우리가 내지 않아도 되는 여러 비용을 물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와 이 집에 대해 보여준 태도는 마지막까지 엉망이었다. 하지만, 인내심과 의지를 갖고 현 상황을 되도록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마음 한 구석에는 과연 내가 이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여전히 들었지만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갔다.


나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여 내가 디자인 설계를 하고, 현장소장을 섭외해 인테리어 디자인 공사를 시작했다. 악연으로 시작된 집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인테리어 공사를 하며 만난 분들은 모두 좋은 인연들이었다. 현장소장님도, 각 시공 전문가들 모두 순한 성격에 실력과 경험을 갖추고 책임감도 있는 분들이어서 모든 공정이 순탄하게 흘러갔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함에 있어 그 진행과정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자그마하고 연약한 체구의 아저씨가 철거를 하고(다 요령이 있는 거라고 하시 내 도움을 한사코 거절하셨다), 목수 아저씨들이 며칠에 걸쳐  완성도 높은 목공 작업을 하고, 페인트팀이 페인트 작업을 공들여하고, 도배사들이 벽면에 실크벽지를 입히고, 타일 설치 전문가들이 짙은 회색의 이탈리아산 타일을 깔고, 베테랑 가구 설치 전문가가 붙박이 가구를 설치하고 등등…이런 나날들이 바쁘고 평온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고 빈 마음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동안 내 마음이 서서히 순화되어 간 것이다. 30년간 일하면서 손이 거칠대로 거친 현장소장님,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고 너무나 열심히 페인트 밑 작업을 하시는 아주머니들, 자상하게 내가 고른 오크나무의 특성에 대해 설명해주신 페인트 반장님, 조용히 그러나 정확한 손놀림으로 필름지 작업을 하는 아저씨들, 잡념 없이 오로지 작업에만 집중하는 목수 아저씨들 등 이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함께 일하는 시간이 쌓여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이들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었다.


더워지는 날씨와 먼지투성이 환경 속에서 불평 한마디 없이 맡은 바 일에만 집중하는 목수 아저씨의 모습.


다리를 다친 현장소장님. 그러나 이도 내가 물어봤기에 다쳤다고 답을 하셨을 뿐 묵묵히 맡은 바 일을 마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속에 툭~하고 집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차오름을 느꼈다. 내가 힘들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사실- ‘집 자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해하면서까지 지나친 욕심을 챙기려 한 사람들, 그리고 나의 무지가 잘못이었을 뿐, 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무고한 존재였음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깨닫기 시작했다.

 

전주인이 함부로 대해 여기저기 상처를 받은 집의 모습, 그 모습은 매수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집과 나는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인테리어 디자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둘은 동시에 치유되고 있었다. 처음에 집은 미움의 대상이었고 도저히 들어가서 살고 싶지 않은 곳이었으나, 어느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집에 대한 애정이 싹트고 있었다.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치유제가 준 가장 큰 선물


인테리어 디자인을 통해 집이 변화한 모습은 시각적으로 가장 강한 자극을 준다. 그러나 나는 집에 대한 애착은 시각에서 생겨나지 않는다고 본다.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공간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을 본다고 해서 내가 그 공간에 대해 애착이 형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애착을 결정짓는 감각은 ‘촉각’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소통의 기술 - 애무, 만지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의 저자인 심리학자 야마구치 하지메는 ‘누군가를 만지며 동시에 내 손이 상대방의 몸에 의해 만져지는 촉각의 경험은 의사소통의 근본적인 형태’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촉각이 다른 감각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만지는 것을 통해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 몸의 내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동안 사람과 집은 서로를 만지는 ‘촉각의 경험’을 집중적으로 한다. 인테리어 공사가 완료된 뒤에는 마감재로 덮인 겉 부분만 볼 수 있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동안에는 집의 민낯-콘크리트면, 배관, 배선 등-까지 들여다보고 만질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집과 사람은 서로를 시간적으로 질적으로 서로를 깊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나와 새집도 마찬가지였다. '촉각의 경험'을 통해 전주인이 함부로 대해 상처투성이였던 집은 밝은 에너지를 가진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화해갔고, 역시 같은 이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나는 다시는 꺾이지 않을 만큼의 강한 긍정 마인드를 키워나갔다.


무수한 촉각의 경험을 쌓아가며 새집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마무리할 때 즈음, 집을 매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내 안의 폭풍은 고요히 가라앉았다. 인테리어 디자인의 과정에서 가장 큰 수확은 매수에 얽힌 악연에 대한 용서도, 집에 대한 애착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값진 '스스로 대한 사랑과 관용이 더욱 깊어진 내면의 성장'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필요 이상으로 겁을 주거나 친절하게 굴며 자신의 뜻에 억지로 따르게 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자신이 취할 이득이 있어서 그런다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는 삶의 지혜였다.


어쩌면 신은 나에게 성장의 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악연도 인연이라고 하며 이 집을 만나게 해 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긍정의 눈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돌이켜보니 일련의 일들이 내적 성장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인테리어 디자인은 내면의 성장을 돕는 아주 훌륭한 마음의 처방전이었다. 대체재가 없을 만큼 훌륭한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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