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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Aug 07. 2017

인테리어 디자인 주체성

우리 집 디자인의 주인 찾기

의뢰인은 주체적인 디자이너다.


‘디자인’의 개념이 들어간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때, 많은 이들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일임하곤 한다. 디자인을 일임하는 배경에는 디자인은 ‘디자이너’라는 일반인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즉, 디자이너를 일반인인 ‘나’보다 높은 지위에 올려두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거주할 집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때는 디자이너를 존중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라고 해도 나의 철학, 나의 취향,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나만큼 잘 알지는 못한다는 나의 ‘나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집의 인테리어 디자인 구상에 있어서 의뢰인과 디자이너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 심지어 둘 중 누가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의뢰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 경험상 모든 상업적 디자인의 구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의뢰인: 디자이너=8:2’ 정도의 비율로 의뢰인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한 곳의 포트폴리오를 보다가 두드러지게 멋진 디자인의 집을 발견하면 “의뢰인이 훌륭했구나”라고 생각한다.


의뢰인이 자신의 집 디자인에 대해 ‘디자인 주인의식’을 갖는 것만큼 디자인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뢰인들이 디자인에 손을 놓는다. 이렇듯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숨은 이유는 ‘비전공자인 내가 디자인에 대해 아는 게 있겠어? 혹은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와 같은 자신감의 부재가 깔려있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 나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큰돈을 들이고도 불편하고 어색한 디자인의 집에 살게 되기도 하고, 결국 참다못해 시간과 돈을 들여 인테리어 디자인을 또 한 번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디자인 실패는 누구의 책임일까?


“나는 꼭 필요한 대립을 피함으로써 형편없는 선택을 여러 번 내렸다.” - 영국 배우 존 클리즈(John Cleese)

                                                                                                               

나는 디자인 실패의 책임이 80% 이상 의뢰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전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이야기해야만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음에도 단지 ‘두렵다’는 이유로 이러한 권리를 피하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왜 디자인 주체가 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질까?


의뢰인들은 왜 디자인 구상의 주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까? 내가 생각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의 교육에 있다.


한국인은 사지선다 안에서 하나의 정답을 찾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충분한 존재로 태어난 자기 자신 안에 내재된 능력을 발견하고 키우라고 가르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부족한 존재로 태어났으니 외부의 것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워나가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는 ‘나보다 나은 남’이 제시한 것들 중에서 ‘남이 옳다고 정해놓은 답’을 선택하며 자랐고, 제시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백지 위에 자신의 주관을 펼쳐 보이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내면을 관찰하고 믿어보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계획할 때도 마음에 든다고 생각되는 몇 곳의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찾아가 “(대다수가 한) 이 집처럼 해주세요. (이것은 정답일 것 같아 보여 안심이 돼요)”라는 문의를 하게 된다.


또한 정답을 뺀 나머지는 오답이라는 교육을 받아왔기에 대안과 다양성을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오답은 ‘돌이킬 수 없는 실패’라는 인식은 정답을 찾는 것만이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길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러한 정답 찾기의 대표적인 예가 (진짜 북유럽 인테리어 디자인도 아닌) '북유럽 인테리어 디자인 열풍'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열풍에 동참한 많은 집들에서 주체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더라도 집의 디자인 A부터 Z까지의 디자인 주체는 ‘의뢰인 자신’ 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뢰인이 큰 비용을 들여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집을 만들기 위함이지, 디자이너가 원하는 집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의뢰인은 자신의 안에 있는 내면의 디자이너를 믿어야 한다.



내면의 디자이너를 키우는 쉬운 방법


내면의 디자이너를 믿기 시작하면 의외로 곳곳에서 믿음직한 조력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각종 마감재나 가구 판매처의 매니저, 현장소장, 각 분야의 시공자 등과 디자인 구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수정할 부분을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발견하고 고쳐나갈 수 있다. 구상은 말 그대로 ‘구상’이므로 시공과 달리 수정이 어렵지 않다.


이렇듯 내면의 디자이너를 존중하는 동시에 실패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는 태도를 가질 때, 의뢰인은 디자이너와 일을 하건 스스로 디자이너 역할을 하건 간에 디자인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첫발을 디디게 된다. 그리고 이 주체성의 디딤돌 위에서 ‘독창성’을 발휘할 때, 의뢰인은 비로소 인테리어 디자인의 진정한 주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렇다면 디자인 전공자도 아닌 의뢰인이 독창성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까?  쉬운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들키지 않는 표절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들키지 않는’이다. “이 집처럼 해주세요.”와 같은 것은 들키는 표절을 하겠다는 뜻이다. ‘들키지 않은 표절’에 대해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시가 정확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어설픈 시인은 흉내 내고, 노련한 시인은 훔친다.

형편없는 시인은 훔쳐온 것들을 훼손하지만,

훌륭한 시인은 그것들로 훨씬 더 멋진 작품을,

적어도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낸다.

훌륭한 시인은 훔쳐온 것들을 결합해서

완전히 독창적인 느낌을 창조해내고

애초에 그가 어떤 것들을 훔쳐왔는지도 모르게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나 역시 우리 집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구상할 때 들키지 않은 표절을 했다. 예를 들면 수백 장의 이미지들을 국내외 잡지와 인터넷에서 살펴보았고 이것들을 우리 집의 특성과 우리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조합하고 비트는 상상을 수없이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집 고유의 특성을 가진 인테리어 디자인을 완성했다.


둘째, 일정 분량 이상의 디자인 경험을 쌓는 것이다.


경험하는 디자인은 꼭 인테리어 디자인이 아니어도 좋다.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디자인을 꾸준히 접하면 된다.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그림 전시회를 간다든지, 백화점이나 고급 호텔에 들어가 로비와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찬찬히 살펴본다든지, 외국 영화 속에 나오는 집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살펴본다든지 하는 것들을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유난히 끌리거나 궁금해지는 부분이 생기면 관련된 주제의 책을 찾아 읽으며 심도 있는 지식을 쌓는다.


이러한 디자인 경험이 어느 순간 일정 분량 이상에 다다르게 되면 의뢰인은 “왜 이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지에 이르면 인테리어 디자인 구상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 전개된다.

                                

TV에서 하는 프랑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며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인을 관찰하고,


추상화 전시회를 방문해 그림을 감상한다. 작가가 있다면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백화점에 쇼핑을 하러 갈 때도 조명과 볃과 바닥의 타일 등을 유심히 관찰한다.



사실 이러한 디자인 경험 쌓기의 가장 큰 혜택은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넘어서 삶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다는 점이다. 아는 만큼 보이기에 삶을 더 풍부하게 누릴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카페에 놓인 토넷 체어(Thonet chair)를 알아보고 그 위에 앉아보며 의자를 온몸으로 직접 느낄 때,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즐거움은 보다 정교해지고 강렬해진다.


내가 살 집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구상할 때,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포함한 외부의 조언에 눈과 귀를 열어놓되 집의 디자인 주체는 스스로임을 명심하자. ‘내가 과연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놓아버리고, 디자이너의 의견과 맞지 않더라도 당당히 내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디자인 구상의 부족한 부분은 시공이 아닌 ‘구상’이기에 보완할 수 있으므로 구상의 실패에 대해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그러므로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사느라 헛되이 쓰지 말아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불과한 독단적인 견해에 갇혀서는 안 된다. " - 스티브 잡스(Steve Jobs)                                                                                                                


집의 디자인은 사지선다 안에 있는 하나의 정답과는 다르다. 나의 집에는 나만의 답이 있을 뿐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좋으니 자기 확신을 갖고 내면의 디자이너를 믿으며 과감히 독창성을 발휘해보기를 바란다. 백지 위에 그린 우리 집의 디자인 구상이 ‘정답’이 아니라며 힐난하는 타인의 비난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자. 장담컨대 그들은 자신만의 정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멋진 집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일은 그저 초연히 내 안의 디자이너에게 집중하고, 그가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믿어보는 것뿐이다. 우리 집의 디자인 주인은 그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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