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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Aug 28. 2017

파트너가 필요한 이유

가치에 투자하는 지혜

타인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


내가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리고 그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 때이다. 혼자 잘난 덕에 지금껏 살아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류의 철듦은 나이 먹는 것과 비례하지는 않는 듯하다. 나이가 들었어도 상호의존성의 가치를 못 깨닫는 사람들을 본다. 나이를 제대로 먹는 것이 중요하다.)


“사소한 예외를 하나 제외하면, 우주만물이 자기 이외의 다른 무언가에 의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전 미국 상하원 의원 존 앤드류 홈스(John Andrew Homes)


50대의 지인은 자녀들에게 “모든 일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좋은 인연을 만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려준다고 한다. 스펙 쌓고 능력 쌓는 것에 열을 올리는 한국 사회에서 그분이 자녀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신선하게 들렸다. 문득 내 삶을 돌아보니 그분의 말이 맞다. 내 삶에 일어난 일 모두 인연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목표는 내가 정했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 그것을 이루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때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자원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만 일이 수월하게 진척된다. 반면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하려고 하면 과정도 힘들고 성공의 가능성도 낮아진다.


타인의 도움이 주는 가치를 인식하고 그 도움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려고 하는 태도. 이 태도가 많은 일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점이 된다. 당장은 지출에 불과한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스스로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 것이 ‘타인이 도움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혼자 하려는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 보면 결국에는 난제에 얽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상호의존성이 빚어내는 가치


인테리어 디자인은 아무리 잘난 개인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단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 ‘인테리어 디자인’하면 멋지게 변신한 집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무대 뒤에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땀을 흘린 많은 사람들이 서있다. 좋은 자재에는 과감히 돈을 쓰려고 하면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아까워한다면 이것은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인 예산을 짤 때 파트너(=사람)에 대한 투자만큼 집주인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 타인의 도움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한 사람이 겪은 고생담이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의 저서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에서 실린 그에 대한 일화는 꽤 흥미롭다. 건축가로서 일을 시작하고 25년간 활발한 활동을 해온 그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인 인물이었다. 혼자 잘나서 성공했다고 믿었기에 견습생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했고, 그들이로부터 받는 도움이 없다고 여겨 보수도 지급하지 않았었다. 한 번은 자신의 아들에게 일을 부탁하며 보수를 약속했는데 이마저도 약속을 어기고 지급하지 않았다. 아들이 약속한 보수를 요청하자 오히려 키워낸 비용을 물어내라며 큰소리를 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독야청청(?)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그는 기존 사무실이 위치한 지역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사무실 이사를 결정한다. 철저히 본인의 능력에 의해 성공을 이루었다고 믿고 있었던 그는 새로운 지역에서 능력 있는 견습생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보기 좋게 새로운 지역에서 사무실을 연 이후 무려 9년간이나 실업자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내게 된다. 일이 들어와도 능력 있는 견습생들이 없다 보니 일이 진척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의뢰 건수가 점점 줄어들어갔다. 빚더미에 오른 그는 나중에는 식료품을 살 돈조차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는데, 보다 못한 부인의 설득으로 다시 견습생들과 함께 일한다. 그리고 이러한 파트너십을 통해 그는 낙수장(falling house)과 같은 대표작들을 탄생시키게 된다.


전문가였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조차도 파트너 없이는 성공을 향해 거의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반인은? 파트너에 대한 상호의존성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보다 크면 컸지 더 적지는 않을 것이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과 일생을 정리해둔 사이트의 메인페이지(http://franklloydwright.org)



현장소장,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소중한 파트너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 지출을 아까워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건 서비스입니다.’라는 말은 ‘이건 무료입니다.’라는 말로 통용될 정도다. 집주인들이 인테리어 디자인 견적서를 확인할 때 유독 사람에게 지출되는 비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집주인들은 자재비는 깎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인건비에 대해서는 협상을 시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과감한 협상이 들어오는 인건비가 ‘현장소장’에 대한 비용이다.


현장소장은 시공과정을 A부터 Z까지 총괄 감독하고, 시공 결과에 대해 총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각 공정별 시공자에 대해서는 그 비용 지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현장소장에 대한 비용 지출은 무척 아까워한다. 구체적인 역할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는 경기에 선수들만 뛰니까 감독은 하는 역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함에 있어 집주인 혹은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현장소장’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구상이 제아무리 훌륭한들 그것을 현실세계에 구현해줄 사람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Key person- 그가 바로 현장소장이다. 그러나 직간접적인 경험이 없다 보니 현장소장이 가치 있는 파트너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인가?


현장에서 별다른 역할이 없는 듯 보이지만 실은 가장 바쁘고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사람 - 현장소장.


첫째, 현장소장은 틈새와 변수를 볼 줄 알고 여기에 대처하고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인테리어 디자인 시공은 설계도 몇 장 가지고 뚝딱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계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수많은 틈새와 변수를 미리 볼 줄 알고, 이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며, 문제 발생 시 해결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제대로 된 시공이 가능하다. 현장은 10개의 틈새와 변수를 예상하고 일을 시작하면, 100개 이상의 틈새와 변수가 튀어나오는 곳이다.   


이런 현장의 속성을 모른 채, 오로지 가격에만 기준을 두어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일념으로 집주인이 직접 시공을 하거나 현장소장 없이 각 공정별 전문가를 섭외해 일을 진행한다면, 문제 발생 시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집주인이 온전히 안고 가야 한다. 게다가 공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틈새와 변수는 비례해서 커지므로 집주인이 지고 갈 리스크도 커진다.


지혜로운 선택은 예산을 절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리스크를 안고 안고 가느니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에 있다. 예산 조금 더 아끼려다가 돈은 돈대로 나가게 되고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짊어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현장소장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길을 가도록 해준다.  


둘째, 현장소장은 각 공정간 유기적 관계를 파악하고 조정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대개 철거, 목공, 도장, 도배 등의 여러 공정이 각각 독립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모든 공정은 매우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유기적인 관계를 위에서 볼 줄 알고, 그 관계를 조정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 현장소장이다. (이는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볼 줄 모른다. 디자인 구상과 시공은 천지차이다.)


각 공정별 시공자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볼 줄 모른다. 설사 조금 볼 줄 안다고 해도 자기가 맡은 분야만 하고 가면 그만이므로 타인의 영역에 발을 디디지는 않는다. 자기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 입을 열었다가 괜한 책임을 지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 구상의 수정과 달리 시공의 수정에는 시간과 돈이 든다. 그 책임을 누가 지려고 할까?)


유기적 관계를 예를 들어보겠다. 계단 제작 시 목공과 바닥 마감재 작업은 긴밀하게 연결된다. 바닥 마감재의 종류에 따라 그 두께와 모서리 마감 방법이 다르므로 목수가 이를 고려해 계단의 세부적인 부분을 만들어두도록 누군가 지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감재를 얹어 마감을 했을 때, 아름답고 정확한 라인이 나온다.


또 다른 예는 간접조명 설치다. 간접조명 설치를 위해서는 목공, 전기, 도배가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위에서 아래를 비추는 직접 조명과 달리 간접조명은 옆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빛이기에 도배지 면의 마감 정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렇기에 간접조명 설치는 목수뿐만 아니라 전기공과 도배사에게도 세심하게 지시를 해야 한다. 별도의 지시 없이도 각 시공자가 알아서 잘 해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경험이 없는 초짜라면 몰라서 못하고,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라면 책임지고 싶지 않기에 지시받지 않은 일을 굳이 하지 않는다.  


책과 SNS를 열심히 뒤져도 틈새와 변수를 보고 대처하는 능력, 유기적 관계를 보고 조정하는 능력은 얻을 수 없다. 이러한 능력은 오로지 무수한 경험의 축적에 의해서만 체득할 수 있는 것이므로 어설픈 흉내조차 불가능하다.


셋째, 현장소장은 검증된 인력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제대로 된 현장소장은 검증된 인력풀 또는 인력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시공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현장소장 본인이 최종 책임을 지므로 지속된 검증의 과정을 거쳐 능력과 책임감 면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선별해둔다. 집주인이 각 공정별 시공자를 별도로 섭외해두었다면, 집주인은 그들의 능력과 책임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므로 검증되지 않은 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한다.   


간접조명의 백미는 끊김없는 빛줄기에 있다. 좋은 파트너를 만난 덕에  완성도 높게  만들어진 우리집의 간접조명의 모습.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인테리어 디자인 책을 스르륵 넘겨보다 저자의 집 간접조명 사진이 실린 페이지에 시선이 멈추었다. 간접조명의 백미는 흐름이 끊기지 않고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빛줄기에 있건만, 그 집의 간접조명은 빛줄기를 형성하지 못한 채 뚝뚝 끊어진 빛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해당 집주인은 현장소장 없이 각 공정별 시공자를 따로 섭외해 일을 진행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좋지 않은 결과물임을 모르는 집주인은 해당 목수를 자신의 블로그와 책에서 적극 소개해주고 있었는데, 본인은 선한 의도로 소개를 해주는 것이더라도 어떤 의뢰인에게 가서는 좋지 않은 것을 넘어서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증’은 여러 번에 걸쳐 균등하게 좋은 결과물을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좋은 결과물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 ‘단 한 번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주는 것은 위험하다.


집주인이 공정별 전문가를 섭외하는 데 수반되는 리스크는 결과물의 품질이 떨어지는 단순한 사안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시공자가 누가 봐도 확연히 잘못된 결과물을 만들어놓고 ‘나 몰라라’하고 연락이 두절된다면? 또는 책임지고 수정한다고 했지만 일정이 잡혀있어 집주인이 세운 공사 일정에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또는 시공자가 공사 중 큰 부상을 입어 입원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벌어졌을 때 집주인은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현장소장은 자신의 지식, 네트워크, 경험을 통해 원만한 해결을 한다.



대학 재학 시절, 한 교수님의 강의가 좋아 전공과 무관한 그분의 강의를 참 많이 들었다. 그중 하나가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의 영화를 감상한 후 리포트를 써내고 강의 중 함께 토론을 나누는 것이었다. 낯선 풍경과 줄거리를 가진 영화들 속에서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대사가 딱 하나 있다.


전쟁에 나가 돌아온 10대 후반의 청년이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그녀를 괴롭히자, 청년을 키운 친할머니가 그를 엄하게 꾸짖으며 이런 말을 한다.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실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혹시 파트너와 함께 일하는 것이 두려운가? 내 돈을 파트너에게 들이는 것이 투자가 아니라 낭비로 생각되어 돈이 많이 아까운가?


그럼 다른 각도에서 물어보겠다.


나는 과연 이 일을 혼자 해낼 수 있는가? 나는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즉 내가 그만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고 여기는가?


나는 영화 속 청년의 할머니의 대사에 100% 공감한다.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믿지 못한다. 좋은 파트너의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은 자기 자신의 가치에 투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글을 통해 당신은 좋은 파트너의 가치에 대해 머리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의 몫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좋은 파트너의 가치를 인식하며 파트너에게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나와 파트너의 가치보다 ‘돈’을 더 높은 곳에 두어 결과적으로 나의 가치를 깎아내릴 것인가?


당신이 바른 선택을 하면 그 뒤의 일은 애쓰지 않아도 잘 풀리게 되어있다. 그것이 순리이다. 그러니 편한 마음으로 타인이 주는 도움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치를 높이는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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