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테리어 사업에 실패한(?) 이유
고백의 이유
잘 나가는 사람이라고 포장을 해도 모자랄 이 세상에 실패한(?) 이유를 스스로 사람들 앞에 드러내다니.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내가 이 주제로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나는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에 실패했다기보다는 적정시점에 나의 커리어를 위한 과정으로 이 분야를 충분히 경험했다고 느껴 자의로 ‘접었다'. 둘째, 그렇다고 해도 부족했던 부분들을 성찰함으로써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셋째, 성공담만 늘어놓은 이야기에는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칭송받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성공담의 정체에 대해 성공을 거둔 뒤 자신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성공담 속의 성공 방정식이 진정한 원인으로 작용하여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나 역시 성공담으로 가득 채워진 자서전이나 강연을 안 좋아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적정 수준의 자아도취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자서전이나 강연을 통해 스스로의 성공 포인트를 열심히 홍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적정 수준을 넘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나는 자기 자랑보다는 담담한 시각과 어조로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진 콘텐츠를 사랑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 나의 경험에 대한 성찰을 이런 방식으로 다루기로 했다.
실패의 이유들
첫째, 고객을 선별하는 안목이 부족했다.
적어도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있어서는 사업 초기라고 해서 의뢰가 들어오면 일을 덜컥 맡는 것이 좋은 전략이 아니다. 디자인 수준을 고려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은 프로젝트당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며, 그 시간과 노력 속에 인테리어 사업자와 고객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므로 좋은 고객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단시간에 많은 포트폴리오를 만들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일이 없어 쉬는 한이 있더라도 느긋한 마음으로 나에게 맞는 고객을 기다리는 인내가 미덕이다. 좋은 고객이란 서로의 성장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인드가 바탕이 되어 있고 서로의 디자인 코드가 맞는 사람이다. 이런 큰 부분이 일치되어 있으면 취향이 유난히 까다롭다거나 하는 것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포트폴리오의 질적인 완성도 면에 있어서도 나에게 맞는 고객을 만나는 것이 유리하다. 좋은 고객을 일 년에 한 명 만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고객을 일 년에 열 명 만나는 것보다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포트폴리오는 내가 원하는 성격의 고객들을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더 강한 힘으로 끌어올 수 있도록 한다. 좋은 고객을 만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 이것이 인테리어 사업에 있어서의 성공의 초석이다.
미국의 Amazon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비즈니스에 대한 조언을 주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다. 흥미로운 책들이 많은데 이 중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남성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낸 책을 읽다 보니 그가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 만난 한 중년 여성 고객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이 여성 고객의 일을 한 것에 대해 아니함만 못한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같은 분야의 경험자로서 나는 그의 고백이 뼛속 깊이 와 닿았다.
아주 강한 정신력과 뛰어난 능력으로 동일한 문제를 극복하는 인테리어 사업자도 있겠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애초부터 피하는 것이 상책인 잠재 고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세상에는 주고받는 것이 근본적으로 안 되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무리한 부탁을 계속하며, 이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거절하면 그간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돌아온다(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애초에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는다). 평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주변인들에 대한 험담을 자주 한다 (당신이 베푼 선의와 호의에 대해서도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다). 상대방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대가를 요청한 것에 대해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때로 자신의 손해를 막겠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극단적인 행동방식을 취하기도 한다(이들의 내면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착한 사람일수록 사람을 간파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낌새가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면 조용히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주는 것이 부족해서 그런가,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거야’이라는 희망은 고이 접기 바란다. 이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내면의 문제이다. 이런 사람들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어도 칭찬과 고마움이 아닌,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상식선을 넘는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근사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에 홀려 섣불리 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 이들에게 허비할 시간에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쓸 가치가 있는 고객을 찾는데 집중해야 하는 것이 현명하다.
둘째, 자신감이 부족했다.
전문가도 첫 시작을 하는 순간이 있다. 이때 속으로는 떨릴 지라도 고객을 위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일을 해야 한다. 고객은 전문가를 믿고 일을 의뢰하는데 그가 자신감 없고 불안해하는 태도를 보이면 고객도 따라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생각이 많고 완벽주의자적 성향이 있어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한 시점에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너무 많은 고민을 했었다. 자신의 가게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나를 알아본 자재 샵의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부끄럽게도 스스로를 ‘인테리어 디자인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소개를 우물거리며 한 적도 있었다.
집이나 차를 구입하는 것 외에 일반인이 자신을 위해 가장 큰돈을 쓰는 일 중의 하나가 ‘인테리어 디자인’이다. 그만큼 의뢰인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선택이 좋은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에 대해 민감하고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게 된다. 그래서 공사가 시작된 후에도 의뢰인은 수시로 하고 싶은 것이 바뀌기도 하고, 공사 과정 중에 드러난 모습이 자신이 꿈꾸던 결과와는 조금이라도 달라 보이면 불안해하기도 한다. 철거 후 드러난 내부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어 예산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한다든지의 일이 생길 경우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상태의 의뢰인을 껴안고 공사 완료라는 최종 목표까지 무사히 프로젝트를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을 하는 사람은 (속으로는 백만 번 흔들리지라도) 확실한 자기중심을 유지하며 자신감을 내비쳐야 한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집 리모델링 중인 친구의 현장소장 피터가 이런 사람이다. 친구의 표현에 따르면 이렇다. “집에 앉아있음 늦어지는 공사에 울화가 치미는데... 또 막상 앉아서 진행상황이라도 이야기하면 집에 대한 이해나 공사하는 방법 등 거기다가 아주 잘생긴 얼굴에 남편이나 나나 '아 그런가요'하면서 다 수긍한다.” 울화가 치밀어 있는 의뢰인도 순순히 수긍할 수 있게 만들 정도의 편안하고 안정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한편, 일의 경험이 쌓여 자신감이 형성되는 것도 맞지만, 자신감 있게 일을 함으로써 일의 경험이 쌓이기도 한다. 스스로의 자격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내가 다른 인테리어 디자이너에 비교해 가지지 못한 능력에 대해 괴로워할 시간에 내가 자신감을 갖고 나만의 길을 차분히 갔었다면 더 좋은 과정과 결과를 나와 의뢰인에게 선사했을 것 같다.
“네가 가진 것을 줘라.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대단할 수 있다.”
-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완벽한 상태가 되어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남보다 해당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이론적&경험적으로 아는 것이 많고 이에 대해 서비스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일을 시작해 경험의 스펙트럼을 천천히 넓혀가면 된다. 암흑에서 빛으로 순식간에 넘어갈 것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에 있을 암흑도 빛도 아닌 회색지대를 받아들이는 인내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 회색지대에서는 일이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자기 이행적 예언이 필요하다(피그말리온 효과). 혼자서 가는 것이 힘들다면 먼저 이 길을 가본 선배가 멘토로서의 역할을 해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셋째, 형식에 소홀했다.
일을 할 때 일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이 일의 형식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서로 차이가 있기에 함께 일을 할 때 일에 대한 기준을 명문화시켜두는 것, 즉 ‘형식을 갖추어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이 정도 해주었으니 의뢰인도 으레 그에 대한 대가가 있겠지’, ‘집의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공사 기간이 지연되었으니 의뢰인도 으레 이것을 이해하고 있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인테리어 사업자에게는 어리석고 위험한 기대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 서로의 기준을 하나로 조율해두는 것은 문제 발생 시 일의 해결을 순조롭게 해준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지 의뢰인은 잘 모를 수 있으므로 인테리어 사업자가 먼저 이 부분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인테리어 사업자는 이것을 문서로 옮겨 계약 체결 전 의뢰인에게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홍수가 난 뒤에 댐을 짓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 일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 웃는 낯일 때 댐을 미리 지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형식을 갖출 때는 저작물의 범위를 어디로 할 것인지, 공사 과정과 공사 완성 시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것을 인테리어 사업자가 자신의 홍보용 포트폴리오로 사용해도 되는지, 예상하지 못한 집의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공사 범위가 늘어났을 때 추가되는 비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의뢰인이 입주하며 살면서 문제 발견 시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얼마만큼의 범위에서 해결을 해줄 것인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로 짚어둔다. 이는 마치 부동산 계약서의 특약과 같은 것으로 의뢰인도 모호하거나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인테리어 사업자에게 물어보고 그 답변에 대해 협의가 되면 이를 계약서에 추가해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이런 형식은 인테리어 사업자뿐만 아니라 의뢰인도 동시에 보호해준다. 좋은 파트너를 선별해야 하는데 안목이 없어 그렇지 못한 의뢰인, 좋은 고객을 선별해야 하는데 안목이 없어 맞지 말아야 할 사람을 고객으로 맞은 인테리어 사업자 -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들은 이 둘 각각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해줄 방패막이 되어준다. 특히 인테리어 사업자와 서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면 형식을 갖추어두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아는 사이에서 얼굴 붉혀지는 일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 방패막이되어줄 이 형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사업자나 의뢰인 모두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제공하는 ‘인테리어 공사표준계약서 요약본(2017년 버전)’을 참고하면 계약서 작성 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팠지만 괜찮아
위의 세 가지 이유가 복합된 일로 인해 나는 꽤나 아픈 경험을 했었다. 또한 나의 부족한 부분들로 인해 나름 힘들었을 의뢰인이나 잠재 의뢰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괜찮다는 위로를, 그분들에게는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자존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히 유지하는 것. 그 지점에 도달한 후에는 더 이상 타인에게 날 입증하기 위해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 책 <렛츠 그루브> 중
인생 최악의 경험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지나고 나니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신감을 갖는 것이 일의 성공을 어떻게 이끄는지, 내용뿐 아니라 형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심장에 각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을 계기로 나 자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나의 삶에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