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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Oct 09. 2017

매체에 대한 몇 가지 환상

빈 마음으로 갈 길 가기

매체의 민낯


언론홍보분야에 몸 담아본 나로서는 매체가 가진 민낯을 들여다볼 때 씁쓸한 느낌이 든다. 적지 않은 매체들이 정보 제공자로부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조작이 가해진 정보를 쉽게 받아들인 뒤 엄정한 필터링 없이 대중 앞에 내놓는다. 그 결과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짧은 시간 안에 세상으로부터 주목받도록 만들기도 하고, 잠깐의 거품 끝에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없어지면 그것들이 스러지도록 내버려둔다.


내가 만나본 한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의뢰인의 요청사항이나 그곳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편의성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실험하고 싶은 독특한 디자인에만 관심이 있고, 이를 실현하여 평소 가깝게 지내는 언론 몇 곳의 주목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의뢰인의 집을 자신의 실험 장소로 사용하기를 원하며, 인테리어 디자인 완성 후 1년간은 그가 요청할 때는 언제든 의뢰인들이 집을 비워 언론매체 취재에 협조하도록 강하게 요구한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사용감으로 인해 집이 홍보용으로 가치가 떨어졌다고 보아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그가 과연 의뢰인과 의뢰인의 집에 대해 진정한 책임감과 보람을 갖고 일하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지만, 그는 여전히 ‘괄목할만한 디자이너’로 언론에 종종 등장한다.  


나의 지인과 그 친구는 한 사람에게 속아 그녀들의 빛나는 재능을 수년간 무상으로 착취당해왔다. 그 사람은 인테리어 소품을 다루는 공정무역을 하는 사업가로 어느 날 신문에 훌륭한 일을 하는 좋은 사람으로 조명되어 나왔다. 기사를 읽어보면 그 사장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매체는 사실을 바탕으로 정보를 전달하지만, 매체가 던져주는 정보를 100% 진실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매체는 마치 정치인처럼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에 대해 환상을 갖고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빈 마음 되는 방법


언론홍보분야에서 일한 나야 매체를 시니컬하게 바라보지만, 일반인들은 고난 끝에(?) 완성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매체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종종 갖는다. 그래서 지역 맘카페나 인테리어 디자인을 주제로 하는 온라인 카페에 집 사진을 공개하면서 낯 모르는 이들의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조금 더 과감하게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TV와 잡지와 같은 매체에 출연을 하고 싶다는 요청을 적극적으로 넣기도 한다.


이때 나는 매체를 통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의 완성점을 ‘내가 하고 싶은 자랑 했다’는 가벼운 자기만족에 두기를 권한다. 매체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품었다가 실망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악플들을 읽고 상처를 받는 것은 고생 끝에 얻은 뿌듯함을 절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깃털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자랑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깃털 같이 가볍게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 갈 길-그것이 일상생활이든, 인테리어 디자인 관련 소소한 창업이든-을 갈 수 있게 된다.


가벼움을 즐기는 태도, 그 빈 마음이 당신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 가벼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칭찬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라.


낯 모르는 타인들이 달아주는 칭찬 세례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짧은 단어 몇 개로 이루어진 칭찬들이 쌓여있다고 해서 ‘내가 정말 대단한 인테리어 디자인 소질을 가진 건가 봐’라는 착각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온라인 세계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그저 자신의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생각을 무심코 표현하고 지나갔을 뿐이다. 당신이나 당신의 집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가벼운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가벼움은 흔한 속성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가볍게 던진 것을 무겁게 받지 말자. 칭찬에 감사하되 가벼움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2. 주고 잊어버릴만한 것만 기대 없이 주어라.


칭찬 댓글을 단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다. 처음 마주친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바로 물어보기는 멋쩍으니 상대에게 미리 칭찬 한 마디 깔아주는 예의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때 당신은 애써 얻은 정보를 낯선 이가 요청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유하는 것이 내키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의 이러한 심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에 집 자랑을 할 때는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요청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자연스러운 현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자랑을 한 당신이 짊어져야 할 숙제이다.


나의 답은 ‘하고 싶은 데까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만’하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평소에도 오지랖이 넓은 편이어서 자신이 아는 정보를 사방팔방 공유하는 성격이라면 그렇게 하고, 그렇지 못한 성격이라면 주었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아할 수준의 정보만 제공하면 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상대방으로부터 ‘고맙다’라는 인사를 받을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당신이 몇 달간 수고를 들여 얻은 정보라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수집한 뒤에는 인사 한 마디 없이 냉정하게 떠나는 것이 온라인 세계의 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냥 ‘베풀고 마는 것’에서 멈추어야 하며, 감사 인사 안 들어도 괜찮을 수준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만 주는 것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좋다.


3. 능동적으로 준비한다.


자랑의 판이 커져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주제로 한 잡지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면 이러한 매체들은 SNS와 달리 한 번 콘텐츠가 유통되면 집주인의 수정이나 삭제가 불가하다는 특징을 갖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올바른 정보가 유통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설명할 수 있는 집주인이 미리 집의 주요 특징을 글로 정리해두고, 사진이나 영상에 담길 장면은 어느 포인트에서 촬영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구상해두면 좋다.



집(피사체)의 장점을 보는 눈은 촬영 담당자보다 집주인이 낫다. 그러니 그 전문가 앞이라고 기죽지 말 것.


참고로 기자, 방송작가, 촬영 담당자들은 능동적으로 탐구할 여유가 충분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시간적&경제적 제한이 있기에 정보 제공자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며, 인테리어 디자인 공사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해 아는 데에 한계가 존재한다. 이때 집주인이 능동적인 정보 제공자가 되면 쌍방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집주인이 촬영 담당자에게 자신이 미리 찍어둔 집 사진을 제공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피사체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찍은 사진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찍은 사진은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아마추어라도 집주인이 찍은 사진이 의외로 좋은 감성을 발산할 수 있다. 작은 팁을 준다면, 사진에 원색이 포인트로 들어가면 사진의 느낌이 잘 살아난다. (Pinterest에 올려져 있는 인테리어 디자인 사진들을 관찰해보면 원색을 적절히 사용한 것을 알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자나 PD에게 사전에 게재될 혹은 방영될 최종본을 집주인도 점검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이들은 집주인이 준 정보와는 다른 엉뚱한 설명을 싣기도 한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4. 악플은 무시해라.


SNS 이웃들은 악플을 상대적으로 덜 달지만, 잡지와 TV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매체에 노출이 될 때에는 별별 사람들로부터 악플을 받을 수 있다. 처음으로 악플을 받아보면 화도 나고 당황스럽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렇다.


악플러들은 두 부류다. 대다수의 악플러들은 상대방을 기분 나쁜 말로 자극해 상대방을 자신과 같이 불행한 상태로 만들고 싶은 이들이다. 이런 부류들은 상대방의 성과나 성장에 관심이 없다. 다른 부류의 악플러들은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하기에 누구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 매우 배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지 않고, 제대로 날 아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를 신경 쓰는 것, 그것이 요령이다.” - 미국의 만화가 마이클 브라이언 벤디스(Brian Michael Bendis)


어느 부류이건 간에 나는 반응하지 않고 무시해버리기를 권한다. 반응을 보이는 순간 이들에게 또 다른 먹잇감을 던져준 격이 된다. 칭찬을 깃털같이 가볍게 받아들이듯, 악플도 가볍게 받아들이고 바로 잊어버려라. 이들과의 논쟁은 소모적인 것으로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악플러를 차단하거나 댓글란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도 좋은 무시 방법이다.     



무위의 가치


사람들이 매체를 활용해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명예와 평판을 빠른 속도로 얻는 것’인 듯하다. ‘인테리어 디자인 감각이 정말 뛰어나네요.’, ‘인테리어 디자이너 하셔도 되겠어요.’,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OOO이시군요.’와 같은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의 좋은 평가를 바탕으로 나의 가치가 한 단계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칭찬으로 올라갈 가치라면 누군가의 힐난으로 가치가 내려갈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과 같다.


누군가의 평가에 좌우됨 없이 자신의 집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만으로 집주인의 행복은 충분한 것 아닐까.


노자의 일화다. 어느 날 노자에게 사성기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사성기는 노자가 성인이라는 말을 듣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는데 막상 노자의 모습을 보니 품위도 고귀함도 어짊도 없어 보여 그는 노자를 본 첫날 노자에게 비난하는 말을 던지고 간다. 노자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성기가 다음날 다시 찾아와 "어제는 선생님을 공격했는데 오늘은 마음이 달라졌으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마음을 내비쳤다. 이에 노자는 "어제 당신이 나를 소라고 불렀다면 나는 소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를 말이라고 불렀다면 나는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진실로 그런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명칭을 붙여주는데 받지 않는다면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나의 행동은 언제나 같은 행위입니다. 나는 어떤 행위를 위해 행동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나 자신의 가치의 결정을 타인의 평가에 맡겨두면 매체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단시간에 스타로 떠오른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속에서는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며 늘 불안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다면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느리더라도 빈 마음으로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 행복의 길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명예와 평판을 얻기 위한 홍보는 분명 득이 되고 필요가 되는 면이 있지만,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 있어서도 알맹이 없이 홍보만을 통해 얻은 명예와 평판은 ‘독이 든 성배’를 집은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오늘로서 브런치 연재를 마칩니다. 별 것 없는 에세이식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울러 사진 등을 기꺼이 제공해주고 평소에도 인테리어 디자인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상대가 되어주는 네덜란드에 사는 제 친구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네덜란드에 사는 그녀의 집 리모델링 이야기(현재 진행 중)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참고로 친구가 네덜란드 생활이 오래되어 한국말로 글을 쓰는 것이 다소 서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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