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없는 시모ㅣ뒷담화 하는 글
모든 며느리들이 곤욕스러운 일이 시월드로의 로그인 아니겠는가 ? 그렇다고 그곳에서 신혼집으로 돌아온들 로그아웃하기 전 경험한 대단한 여파와 상기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찾아뵜음에도 불구하고 행해지는 잦은 연락에 대적할 만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없는 것 같다.
나의 시부모님은 나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결혼 전부터 그 - 렇 - 게 - 나 불러댔다. 나를 이뻐라 하시는 것이니 고맙고 황송하지만, 너무 잦은 부름에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이다. 그곳에 가면 예비 시부모님 하시는 말씀에 집중해야 하며 우리 집과는 다른 낯선 환경과 그동안 접해보지 않았던 가정 문화에 한시도 멍을 때릴 수 없기에 그저 몇 시간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피로도는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딱히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만에(?) 보고 싶다고 하신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시부모님에게 오랜만 - 이라 함은 단 일주일만 지나도 너 - 무 - 나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 전 단톡 방이 생긴 뒤로 보고 싶다 - 언제들를래 ? 가 주된 시부 시모의 멘트였고, 그런 말을 듣고 찾아뵙지 아니하면 왠지 아니 될 것 같아 종종 예비 시가에 들렸다. 이제 가족이 될 사이니 자주 보면서 친해지자는 것이 시아버지의 생각이자 말씀이셨다. 자주 본다고 꼭 친해지는 것은 아니건만_ 매일 만나는 회사 사람들이 얼굴만 본다고 결코 친해지진 않는 것처럼. 그럼에도 시부모님은 친해지기 위한 노력의 그 첫 번째로 잦은 만남을 요구하셨다. 한 달에 많게는 두 번 혹은 한 번을 들르면서 빈손으로 가는 것도 어렵고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사다 날은 각종 케이크와 디저트 그리고 음료수도 꽤 된다. 결혼을 하고 나니 방문과 연락은 당연히 더 잦아졌다. 주말에 다녀오면 화요일이면 전화가 온다.
보고 싶은데 언제오니 ?
처음엔 내가 잘 못 들었나 했다. 주말 내내 얼굴 보고 정신 똑바로 챙기며 시부모님 대접해드렸더니 보고 싶다고 하신다. 뒤에 덧붙이시는 멘트는 "안 본 지 오래됐다. 너무 멀리 산다." 이다. 나의 시가은 자차로 30분 거리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시어머니 말씀 따라 너 - 무 멀리 살지도 않고, 본지 오 - 래 되지도 않았다. 대체 얼마나 가까이 살고 자주 봐야 할까? 가끔 내뱉는 말로 시모는 옆집 살아야 자주 들여다보고 뭘 해주신다 말한다. (설마 김치를 더 해주셔야 한다는 건가?) 옆집, 아니 같은 아파트 단지에라도 살았으면 저녁마다 봐야 했을까? 저녁마다 본다면 아침에도 보고 싶다 하지 않을까?
본지 오래됐다 - 너무 멀리 산다 - 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하시니 참다못한 나는 남편에게 시무룩하게 어머님은 대체 얼마나 자주 봐야 얼굴을 보고 산다고 느끼시는 건지, 같은 동네에 살면 얼마나 오라고 하실지 상상도 못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만약 그러했으면 우리 엄마는 저녁마다 신혼집으로 퇴근했을 거라는 것이다. 남편도 시가의 극성스러움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듯 본인만은 자신의 가족을 흉볼 수 있지만 남이 뭐라 하면 화나는 법! 그리하여 남편에게 그런 시가에 대한 불만을 모두 말할 수도 없다. 그저 남편이 나의 불편함을 알아주는 것 - 그것으로라도 결혼과 동시에 부여받은 직책이 며느리인 나는 위안받아야 할까 ?
어김없이 주말 방문을 요청하는 시모는 남편에게 전화하여 이번 주에 올 것이냐고 묻고있다. 나의 착한 남편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렇게 매주 방문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여기서 매주 방문이 잦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시월드의 사람 중에 오직 남편밖에 없다는 것이 옥에 티이다. 이번 주에 스케줄 좀 확인하고 가겠노라 대답하는 그에게 시모는 스피커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데시벨로 남편의 핸드폰을 넘어 쩌렁쩌렁한 목청을 자랑하며 며늘희에게 물어보고 결정하지 말고 그냥 네가 딱 정해서 가는 걸로 하라고 하신다.
나에게 시댁 방문은 힘겨운 과제와도 같다. 그 또한 그럴 것이 젊은 시절부터 집에서 나와 혼자 살았고, 나의 아빠 엄마는 나를 방목하듯 세상에 맡기셨기 때문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요. 전화를 하면 되례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으시는 분들이다. 퇴직 후 귀농하신 부모님을 결혼 전에는 명절에 두 번 정도 내려가 뵙는 것이 전부였으며 어쩌다 서울에 오실 일이 있더라도 알아서 일을 보신 뒤_ 이러하여 서울 왔다가 이제 내려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엄마 보러 언제 오니?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나는 시댁에서 주구장창 말하는 '보고 싶다' 는 이 말이 과연 진심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사랑해라는 말을 강요한다고 한다. 그 며느리 입장에서 정말 시모가 나를 사랑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며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자 오기를 부려가며 통화가 끝날 때마다 " 사랑해 ~ 너도 사랑하지? " 라고 되물을 때마다 기꺼이 대답해야만 자신이 너무 싫다는 것이다. 나의 시모는 나에게 " 저도 보고 싶어요 ~ 주말에 봬요. " 라는 대답을 강요하시는 것 같다. 만약 그놈의 사랑해 까지 강요하신다면 과연 나는 즉각적으로 " 사랑해요. 어머님 "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_
매주 방문하던 시댁에 진절머리가 났고, 결국 나는 남편에게 한 달만 우리 둘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선언했다. 남편은 편중된 시가의 연락과 방문 요청에 대해 자신의 부모님이 네가 좋아서 하시는 행동인데_ 그러 실 수도 있는 것이고, 네가 참을 수도 있는 것 - 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제길!!) 나의 단호한 선언에 내편이 되어 주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한 달만 !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모두가 예상했겠지만, 그 한 달만 프로젝트는 일주일도 못 가서 참변을 당했다.
주말에 방문하겠다는 말 없이 주중을 보냈고, 그 대답을 은근히 강요하던 유선상의 대화도 나름 잘 버텨냈다. 이전에 매주_ 그러니까 한 달 내내 주말마다 시가에 방문했기에 더 이상의 주 1회 방문이라는 습관적인 길들임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을 전화하며 듣고 싶은 대답을 듣지 못한 시어머니는 결국 포기하신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꿀 같은 주말의 시작이었다 ♪
서로의 일정도 있던 터라 바쁘지만 즐겁게 보내던 토요일을 지나 일요일 조금 늦은 아침. 아니나 다를까 그 무서운 전화가 걸려온다. 오후에 잠깐 들르시겠단다. 딱 한 달 - 시댁과 교류 없는 한 달만을 보내고 싶었다. 누군가 잦은 시댁 방문에 고민하는 이들에게 [ 처음부터 잘하지 마세요. 석 달에 한번 가다 가끔 두 번 가면 착한 며느리지만, 한 달에 한 번가다 어쩔 수 없이 한 번이라도 안 가면 나쁜 X 됩니다. ] 라는 글을 보고 내가 내린 나름의 묘책은 결혼 전부터 생각보다 자주 방문하였으니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점점 멀어지자는 것이었다. 그래, 이번 주에 방문하지 않으려 했던 나는 이미 그 대단한 시월드에서 무시무시한 나쁜 X이 되어 있던 것이다.
남편에게 한 달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내 맘속에서는 1주일이었다. 단 한주의 주말만이라도 시댁과의 교류 없이 둘만의 신혼을 즐기는 것 ! 그러고 나서 2주 만에 시댁에 방문하더라도 딱 한 번의 아름다운 주말을 ! 마음의 여유를 ! 한가로이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시모는 두서없이 전화를 했고 대뜸 우리의 신혼집으로 오시겠다고 한다. 날 위해 뭘 준비하셨단다. 남편의 휴대폰으로 넘쳐흐르는 시어머니의 우렁찬 목소리를 일부러 들리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그는 내 눈치를 보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전화의 내용을 말하지 못하고 안절부절이다.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겠는가. 그렇게 눈치만 보고 있다고 시모가 안 쳐들어오겠는가. 무슨 일인지(알고 있지만) 말을 걸으니 잠깐만 있다 가실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결국 시부모님은 신혼집에 쳐 들어오셨다. 곰탕을 끊이셨다고 가지고 오셨는데 그 곰탕 담은 그릇 뚜껑이 깨져있다. 버릴 용기에 담아온 곰탕이 그리 보기 싫터이다. 시모는 김치를 싸줄 때도 언제나 흠집 있거나 버릴만한 통에 담아주신다. 나의 엄마가 김치를 싸준 뒤 김치통을 늘 가져오라고 하는데 반에 시모는 그 통 너희 써라 - 이시다. 근데 쓸만한 통이라기보다는 버려야 하는 통에 담아오시니 내용물을 처리하고도 남은 플라스틱 분리수거는 나의 몫이다. 나는 포기했다. 이왕 오신 거 저녁 드시고 가시라고 말씀드리니 좋아하신다. 시부모님들만 목표 설정 완료하시고 나는 그저 답답함만 가득 담은 주말이었다. 물론 그 뒤에 한 달만 프로젝트는 다시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남편 또한 어영부영 내가 원하던 그 프로젝트를 없애버렸다.
결혼 전부터 잦은 방문을 요구하셨던 시월드가 처음부터 미웠던 건 아니다. 딸 하나 없이 아들만 둘인 집안에 내가 활력이 된다 하시고 이래서 딸이 있어야 하나 보다 - 하시며 하나부터 열까지 내 칭찬 뿐이셨다. 시부모님들께 미움받는 것도 아니고 예쁨을 받으니 다행이며 행복했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과 다른 성향들을 겪으며 이것이 맞는 것일까 -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모님의 특별한 날이 되야만 비로소 식사대접을 하곤 한다. 그마저도 거부하실 때가 많다. 아빠 엄마는 늘 나를 어린 딸로 대해주시며 회사를 다니더라도 그리고 결혼한 지금도 용돈을 주신다. 내가 주고 당신들이 다시 받더라도 바쁜데 얼굴 보여주어 고맙다며 용돈을 꼭 챙겨주시며 늘 본인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사주시며 자식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시려 노력하신다. 그러면서 언제나 나에게도 너 또한 도와달라 - 손 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가리키셨다. 한데 시댁은 달랐다. 결혼 전 처음 방문했을 때도 식사를 하고 난 뒤 그 결제를 위해 두 아들이 상의하고 있었다. 내가 내야 하나? 할 정도로 음식값을 지불해야만 하는 시간은 길어져만 갔다. 그다음에도 보고 싶다는 부름에 방문했던 시가에서의 식사 결제는 늘 그 당시 남자친구의 몫이었다. 남편의 동생 없이 식사를 하더라도 네 명의 사람이 먹은 값은 나름의 두둑한 지출을 요구하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시부모 되실 분들에게 "잘 먹었습니다" 를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남자친구는 가족모임이라고 하여 아버지가 부르면 달려가 결제를 하고 와야 하는 나름의 지갑 역할이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남편과 내가 대단한 고액 연봉자도 아니므로 그렇게 매주 외식비용을 사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부모님 형제들과 함께하는 휴가비용이나 숙박비용 그리고 식사비용을 그렇게 뜯기고 오는 남자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하라고 부르시는 시아버님은 더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결혼 전이야 그렇다 한들 결혼 후에는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당시 남자친구에게 선포했다.
이 외에도 한 번은 시아버님께서 소형가전을 구입해야 한다고 하시며 큰아들이자 나의 남자친구에게 현금을 요청하시고 둘째 아들의 카드로 결제하신 다음 첫째 아들이 준 현금을 자신의 용돈으로 쓰시는 걸 알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자주 있는 일이므로 '말해도 돌려받지 못할 돈'이라고 하였다. 나는 조치를 취해야겠다 생각되어 결혼 후에는 이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남자친구는 혹시 모르는 일이지만 아빠가 너에게 돈을 달라고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기가 찼다.
사실 내가 잦은 방문 요구를 받아들이기 싫은 이유가 바로 돈 때문인 것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가방문을 그리 자주 하는데 밥까지 우리 쪽에서 지출하고 있으니 이 어찌 속 터질 일이 아닌가? 내 남편이 세상 성공한 부자 중에 부자였다면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시부모님께서 마련하셨을 터이니 그 또한 보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생활비와 대출금 내기 바쁜 우리 부부에게 매주 주말 외식비용으로 네 명 혹은 다섯 명의 식사비는 우리의 처지에 맞지 않았다.
나는 대책을 세워야 했다. 변함없이 시아버지는 카톡 메시지로 며느리 보고 싶다는 메시지가 왔기에 이번 주 시간 괜찮으시냐 여쭈며 주말에 갈게요 ~ 라고 대답했다. 아버님은 얼싸 좋아하시며 어서 오라 대답하신다. 답문으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여우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 들었다. 웃으며 할 말을 하는 여자가 옳다 생각되었다. 그렇다 ! 나는 사달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해버린 것이다. 시아버지의 대답은 "그래, 우리 며늘희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였다. 사주신다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 주 주말에는 놀랍게도 아버님이 저녁식사를 결제하셨다. 처음이었다. 남편은 너무나 놀라 어안이 다 벙벙해 보였다. 이런 적이 없었다는 말도 했다. 자신의 카드를 손에 들고 당황하며 서 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시아버님에게 쪼르르 달려가 팔짱을 끼며 아버님께서 사주셔서 그런지 너 ~ 무 맛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딸 하나 없는 시부는 나의 여우 같은 눈웃음에 껌뻑 죽으신듯하다. 나의 할 말 하는 여우스러움은 다행스럽게도 성공적이었다. 그 뒤로도 시아버지의 지갑은 더욱 자주 열렸고, 외식비가 부담스러우실 때면 시어머니에게 이번엔 당신이 쏘라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아무래도 아버님 어머님은 생활비 따로, 본인들의 자금 주머니는 따로 두고 살아가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렇게 우리에게 얻어 잡수시던 것은_
친정에 가면 아빠는 식사비를 늘 남편에게 쥐어주고 계산하고 오라고 하신다. 아니라며_ 모든 가족모임의 식사를 결제해오던 남편이 적응하지 못하고 본인이 사겠노라 말하는 남편에게 나는 매번 " 아니야, 아빠가 사주고 싶으시데 ~ 어른 앞에서 누가 결제를 한다는 거야 ~ " 라며 한결같이 세뇌를 시킨 것도 한몫한 것 같다. 처가에 가면 식사비도 장인이 내주시고 돌아올 때는 기름 값하라며 용돈을 주는 장모의 행동에 그동안 접해보지 않은 문화를 자신의 부모에게 전달한 남편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말 저녁 비용을 나름 대처하면 뭐하나.
오늘도 시부모님은 그 렇 게 나 - 못 본 지 오래됐다고 말씀하신다.
덧붙여 내가 돈을 쓰신 시아버지에게만 애교를 부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부모님 팔짱을 번갈아 끼며 나름 살가운 며느리 역할을 해왔었다. 하시는 말씀마다 방긋방긋 웃으며 리액션도 곧잘 해왔다. 잦은 방문 요청과 함께 더해진 식사가 언제나 시가의 집안이 아닌, 나가서 사 먹는 외식이었던 나의 시월드 문화에 대해 나는 대적할 만한 크나큰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남편은 절대 하지 못하는 할 말은 하는 여우 역할로 나는 이 위기를 헤쳐나가고자 한 것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