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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라 Sep 09. 2024

(1) 히라 보름살이(반달살이) 진주로 다녀온 이유

2024.08.12.


Part 1.


원주 이주 8개월 차, (열 두 시 넘었으니) 오늘부터 진주로 반달살이를 간다. 원반인(반 원주사람)이 말이야! 원주 적응이 다 된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길만한 순간이다. 그건 당연히 아니다. 나는 여전히 원반인이다. 당분간은. 원주에서 살며 여러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다 관계지역의 범위가 늘어났다. 그 과정에서 진주 사람도 새롭게 알게 되어 오랜만에 다시 진주에 갔다. 문득 ‘여기라면 반달살이도 괜찮겠는데? 원주처럼 진주도 천천히 봐야 그 아름다움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가게 된 숙소에서 핸드드립 커피와 삶은 달걀을 나눠 먹으며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 그 씨앗이었다. 적응 속도만큼 바쁘게 살아가던 와중, 지금이 아니라면 실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 일단 날짜를 정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더운 여름에 더 더운 남쪽 지역으로 여행과 일상 사이를 떠난다. 혼자 떠나는 게 아니라 든든한 원주 친구 성민과 함께! 마침 시기가 맞아떨어져 진주시에서 하는 체류형 여행 지원 사업 <2024년 경남에서 한 달 여행하기 - 여:기 쉼표 행:복 찾아 진주> 참가자로 선정되어 숙소비와 약간의 활동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다행스러우면서도 원주의 빈집이 조금 아깝기도 하다. (원주에서 반달살이 할 사람?)



프리워커가 되면서 노동의 가치를 정해진 기한 내에 보상받을 수 없는 경우가 늘어나 일을 하고도 언제 급여를 주는지는 알 수 없다. 빠른 곳은 하루면 받지만 그 외에는 그냥 주는 대로 받는다. 아무튼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은 아껴야 한다는 일념으로 옷장을 털어 마켓에 이틀 간 참여해 약간의 여행 자금을 마련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지킨 덕분에, 아끼던 옷을 알아봐 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유류비를 벌게 되었다(!) 집밥을 열심히 먹고 외식을 좀 줄이겠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자기 일 마냥 반찬을 나눠주었다. 냉장고 한 칸을 꽉 채우고 내일 더 받게 될 반찬을 생각하면 내가 원주에서 살고 있는 게 새삼 실감난다. 더 가까워지고 넓어졌다. 원주에 왔기 때문에 진주도 가는 것이다.



이번에 가면 진주는 네 번째다. 두 번째 남해/진주 여행, 세 번째 논개제 여행은 원주 (구) 미니특공대 (현) 마루팀과 함께 온 것으로 이번 반달살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진주를 처음 간 건 일 덕분이었다. 전 직장 재직 당시 진주교육대학교로 사례 발표 겸 특강 강사로 초청받아서 갔다. 내가 반대 입장이라도 그랬을 것 같긴 한데, 세 시간을 위해 그것도 토요일 오전 9시 30분 시작인 수업을 하러 금요일에 와준다고 하면 고마워서 또 그럴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그렇지...! 나를 초대한 담당 교수가 진주역에 데리러 와준데다 함께 맛있는 저녁 식사를 먹고 멋진 카페까지 방문했다. 그리고 다음 날 수업 후 유명하다는 진주 냉면을 먹고, 근무하던 기관이 휴일인데 따로 열어서 보여주고 나서야 나를 진주역으로 데려다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다. 잠깐이지만 진주와 진주 사람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약 2년 만에 다시 간 진주와 거기서 만난 진주 사람도 또 다른 방식으로 고마운 기억을 남겼다. 진주 사람이 원주를 좋아해서 여러 번 왔던 이유 중 하나를 ‘진주를 좋아해서’라고 했다. 진주를 무척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진주 정신‘이라는 단어를 종종 들었는데, 진주 사람이 생각하는 진주 정신은 뭘까? 무엇이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을 자랑스러워하게 할까? 궁금해졌다.



살면서 많은 곳을 떠나왔다. 머무를 곳이 없어 움직인 적도 있고, 돌아오고 싶어서 사라진 적도 있다. 나는 원주에서 더 잘 살고 싶어서, 지금 발 딛고 살아가는 원주를 더 들여다보고 싶어서 잠시 떠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른 눈과 마음과 발바닥으로.





사진과 함께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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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오래 집을 비우기 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엄청나게 깔끔한 편은 아니지만, 곰팡이와 초파리의 습격을 받지않으려면 부지런히 정리하고 떠나야했다. 폭탄 맞은 책상은 잠시 외면하고 나머지 청소와 빨래만 마무리했다. 미리 했어야했는데 주말 내내 마켓에 참여해서 잠잘 시간도 부족했다. 월요일 아침에 몰아서 하느라 혼났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출발��



여기서 잠깐! 히라의 운전 역사를 되돌아보자. 나는 3월에 면허를 땄고 5월 말부터 본격적인 운전을 시작했다. 그간 원주를 벗어난 건 바로 옆 횡성 한 번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시내 운전만 했다. 캠프 출장 다녀온 일주일 빼고는 거의 매일 했고, 진주 반달살이를 결심한 후 고속도로 운전 연습 겸 강릉까지 딱 한 번 왕복으로 다녀왔다. 이정도 장거리는 처음이다! 중간에 차가 많아져서 조금(?) 놀라고 팔이 아프도록 긴장했으나 무사히 잘 도착했다. 노력하는 인간 히라는 앞으로 놀놀님의 특별 연수를 받고, 진주 운전까지 적응하고나서 꾸준히 운전왕으로 성장하리라 확신한다(ㅋㅋㅋ)



처음 내비게이션 소요시간은 3시간 50분이 찍혔고, 휴게소 두 번 들른 것 말고는 총 4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알고보니 내비게이션 어플 안내로 꽤 돌아온 길이었다는 사실!� 진주 지인이 읊어주는 도시를 거치지 않고 전북까지 돌아 돌아 도착한 것이었다. 어쩐지! 다음에는 주어진 길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조금은 생각해봐도 좋겠다.



그냥 오면 정이 없으니 작은 선물로 숙소 사장님과 놀놀에게 선물할 치악산 복숭아를 두 박스 챙겨왔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지 물었더니 ‘복숭아에 대한 깍듯한 마음을 늘 가지고 살지요!’라는 놀놀의 대답에 기쁜 마음으로 가져왔다.



조심조심 골목으로 들어가 숙소 앞에 열심히 주차 중인데 숙소 사장님 등장! 논개제 이후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갑다. 휴게소에서 간식처럼 간단히 먹고 오느라 배가 고프던 찰나,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해주셨다. 그것도 무려 직접 만드신 백숙을. 첫 날인데 벌써 감동을 몇 번 한 것인가! 지난 번에도 직접 내린 드립커피와 삶은 계란을 나눠주는 바람에 그걸 먹고 다시 진주에 오게 되었는데(?!) 오늘도 이렇게 귀한 마음을 받았다.



냉장고 한 켠도 내어주셔서 원주 벗들이 나눠준 반찬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 중 백숙과 어울릴 것 같은 반찬을 함께 꺼냈다. 어제 생일이었던 성민님의 여름 미역국, 오이미역냉국을 곁들였다. 내가 만든 겉절이와 친구가 만든 오이 피클, 사장님의 갓절임까지 완벽한 첫 날 저녁이다. 한 그릇 가득 먹고나니 정신이 좀 든다. 디저트로 진주의 백도와 원주의 황도 향긋 아삭 먹고나서 방에 잠시 들어왔다.



우리 둘은 1동과 2동 한참 떨어진 곳에 숙소를 배정받았다. 독립적인 공간을 원했을뿐인데 이렇게 멀찍이 두다니 전화로 이야기 나눌 판이다. (ㅋㅋㅋ) 이 숙소는 근처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묵는다고 들었다. 이번에도 공연 기간이 겹쳐 우리를 포함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머무르게 되었다. 평일에는 여유로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다. 미리 예약해두길 잘했다.



성민님의 방은 아늑하고 책상이 있는 대신 거실의 화장실을 쓰고, 거실과 부엌을 바로 내려갈 수 있다. 내 방은 2인이 쓸 수 있는 방이라 개인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는 대신 바깥을 통해 거실과 부엌을 가야한다. 다른 점이 있는 방을 모두 경험하는게 좋으니 일주일 단위로 방을 바꾸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성민님이 하모인형을 사고 싶다고 해서 잠깐 외출했다. 그러던 사이 놀놀님과 연락이 돼서 깜짝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반겨주는 사이 그런 사이. 따뜻한 포옹으로 우리의 만남을 실감했다. 참 기쁘다. 다시 와서 기쁘고, 그게 진주라서 또 좋다. 놀놀님만 잠시 보러 가려고 왔더니 지난 번 그림책 모임에서 잠깐 만난 분이 우리와 또래라며 소개해주실 겸, 진주의 여러 장소를 알려주려 먼 길 와주셨다. 그 분은 진주의 혁신도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진주와 원주 혁신도시를 비교해봐도 좋겠는걸. 덕분에 구체적인 계획 없이 온 우리에게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성민님과 내가 정한 유일한 규칙은 ’다음 날 일정을 전날 함께 정하자‘였다. 우리는 내일의 일정을 정하고 각자 방으로 향했다.




사진과 함께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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