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 콜렉터, 또 한 명의 반골인을 마음에 들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시끄러운 노래에 손이 간다. 보통 힙합을 듣지만 새로운 게 듣고 싶거나 스트레스 정도가 심해졌다 싶으면 락음악을 듣는다. 좋아하는 락은 헤비메탈이다..ㅎ 목적 자체가 축 쳐진 나를 업시키고 분노를 대신해서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드럼과 일렉기타로 막힌 속을 뻥 뚫어줘야 한다. 그래서 드럼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동안은 AC/DC의 <Back in black>을 가장 좋아했는데 최근에 이 노래를 뛰어넘는 노래가 생겼다. 바로 간헐적 중독에 빠지게 되었다.
Nirvana(너바나)<Smells Like Teen Spirit>이 문제의 그 노래다. 1987년, 나와 똑같은 생년을 가진 이 밴드의 대표곡이다. 헤비메탈은 아니지만 도입부터 때려 부수는듯한 사운드로 단숨에 매료됐다. 너무 시원하다. 왜 이제야 이 명곡을 알게 됐는지 아쉽다. 노래 분위기 자체가 주는 청량함과 젊은 감성이 독보적이다. 특히 밴드의 프론트맨 커트 코베인이 인상적이다. 허스키하면서 찢어질 듯한 목소리는 반항적이면서 어둡고 시니컬한 느낌이 난다. 가사를 해석하지 않아도 전반적인 바이브가 사회에 호의적이지 않음을 노래 곳곳에서 주장 중이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이 시절 반항아들은 흑인은 힙합을, 백인은 락을 했구나 싶다.
Nirvana <Smells Like Teen Spirit>
With the light out, it's less dangerous
불이 꺼지면, 그나마 조금이나마 더 안전할 거야
Here we are now, entertain us
자 이제 우릴 재미있게 해 줘
I feel stupid and contagious
난 바보가 된 것 같아. 전염된 것 같아
Here we are now, entertain us
자, 이제 우릴 재미있게 해 줘
A mulatto, an albino, A mosquito, my libido
혼혈(백인과 흑인), 백색증, 모기, 내 성욕
I'm worse at what I do best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할 때 점점 잘 못해
and for this gift I feel blessed
이런 재능은 축복받은 느낌이야
Our little group has always been
and always will until the end
우리는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끝까지 그럴 거야
노래에는 젊고 어린 감성이 느껴진다. 실제로 이 곡이 수록된 앨범 'Nevermind'는 대학생을 타겟으로 대학교 개강일에 발매됐다고 한다. 이 노래에서 느껴지는 바이브는 모범생은 아니다. 불량 청(소)년들 몇 명이 어두운 창고나 빈집에 모여 성냥을 태우며 노가리를 까는 장면이 머리에 그려진다. 그들끼리 유치하게 아무 말 대잔치, 말장난을 벌이고 놀다가 불장난 좀 할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의 처지는 잘 알아서 가뭄에 콩 나듯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 성찰하는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는 그림이랄까. 그러면서 전반적으로는 시니컬함을 깔고 있다. 바쁘게 살고 있는 내가 이 감성에 끌린 이유는 이런 의미 없이 노가리 까는 시간을 누구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너바나의 3무-가식 없음, 허세 없음, 예의 없음,, :D
너바나는 가식 없고 허세가 없어 마음에 든다. 보컬 커트 코베인은 학창 시절, 친구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아싸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진짜 가식적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가식 없고 허세 없는 삶은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일치하기에 너바나의 음악에 단숨에 빠져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태도는 종종 예의 없음과 시크함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너바나는 한 인터뷰에서 가사나 음악을 해석해 달라는 질문에 답변하길 거부했다. 그냥 음악으로 모든 것을 다 말했다고 답할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예의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쿨하고 솔직해 보였다. 본인이 하고 싶지 않기에 하기 싫다고 답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존중한다. 가사는 듣는 사람이 각자 본인 입맛대로 해석하면 된다. 이런 태도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인지 음악도 느끼하지 않다. 중2병 느낌은 살짝 있어도 감정이 과하게 포장된 느낌은 없다. 내 취향이다.
대세가 되어버린 대안
(브런치 https://brunch.co.kr/@2b26ac5d6df7403/125 의 제목이 너무 적절해서 차용했습니다.)
동시대 최정상 락밴드 ‘건즈앤로지스’와의 갈등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너바나의 개성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 ‘건즈앤로지스’는 80년대 헤비메탈 장르 끝물에 등장해 마지막 전성기를 누린 그룹이다. 그룹의 프론트맨 액슬 로즈는 너바나가 쓰인 티셔츠나 모자를 착용할 정도로 너바나를 리스펙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너바나는 관심이 없던듯하다. 그러다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후 액슬 로즈가 사과도 할 겸 너바나를 자신의 공연 오프닝 밴드로 초대했으나 커트 코베인은 거절했다고 한다.
건즈앤로지스 음악을 들어보니 너바나가 왜 같이 엮이기 싫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음악이 좋기는 한데 올드했다. 부장님이 신입사원에게 같이 놀자고 하는 느낌 아니었을까.(나도 이제 신입사원보다 부장이 더 가까운 입장..ㅎㅎ) 심증을 물증으로 확인해 봤다. 찾아보니 너바나는 건즈앤로지스와 데뷔년도도 1~2년밖에 차이 나지 않고 프론트맨들끼리 5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음악에서 느껴지는 바이브는 10년 넘게 차이나는 느낌이다. 사실 액슬 로즈는 마초적인 음악을 했고 너바나는 동성애자나 여성 등 당시 소수자들을 옹호하는 음악을 했다고 한다. 너바나의 my way적이고 진보적인 태도, 그리고 그들이 당시 얼마나 새롭고 신선한 음악을 했는지 알 수 있던 에피소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너바나는 헤비메탈이 저물어가는 시대에 아예 새로운 음악을 가지고 나왔다. 혹자는 이때 락이라는 장르가 없어질 뻔했는데 너바나 덕분에 락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너바나는 70년대 펑크음악을 기반으로 그런지(grunge)락의 느낌을 가져가면서도 팝적인 느낌을 더해 약간의 대중성을 더했다. 이는 당시에 완전히 혁신적인 장르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들어도 엄청 올드한 느낌이 없다.
너바나의 음악은 기존의 락에 담길 수 없는 새로운 음악이었다. 이들의 음악은 얼터너티브 락으로 불렸다. 그래서 락이나 대중음악사를 언급할 때 너바나가 꼭 언급된다고 한다. 세계적 음악 잡지 롤링스톤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 순위 10위 안에 너바나의 두 번째 앨범 "Nevermind", 그리고 명곡 500곡(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 이 앨범의 타이틀곡 <Smells Like Teen Spirit>이 5위였다. 90년대 최고의 팝송 50 중에서는 1위였다.
* 얼터너티브 ; 대안적인, 대안의
음악 장르 앞에 수식어로 쓰이기도 하며, 기존 장르와 비슷한 것 같기는 한데 여러 부분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할 때에 붙는다. (나무위키)
우울한 어린 시절이 배어난 시니컬한 루저 감성
너바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프론트맨 커트 코베인이다. 너바나의 전반적인 음악과 이미지는 그로 인해 완성되었다. 너바나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외모와 다소 우울하고 시니컬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커트 코베인은 금발이면서 장발의 잘생긴 얼굴로 꽃미남에 가깝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잘생긴 줄 몰랐다고 한다.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자존감이 낮은 탓이었다. 그래서인지 반듯한 차림새보다는 떡져서 지저분한 헤어스타일에, 빈티지 옷을 입고 다녔다. 너무 말라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 빈티지 옷들을 여러 겹 겹쳐 입었다는데 그게 그렇게 간지 난다. 그런지(grunge)룩이라 불리며 자기만의 멋이 되었다.
커트 코베인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몽타주 오브 헥>은 크게 두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가족으로부터 사랑은커녕 보호받지 못하고 떠돌아다닌 그의 절망적인 어린 시절, 그리고 성공하고 나서 마약(헤로인)에 절어 산 이야기다. 그의 인생에서 음악을 제외하고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부분이기 때문일 테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상처로 점철된 그의 삶은 안타까웠다. 부모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코베인이 9살 때쯤 이혼을 했다. 70년대 초반 당시에는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이혼한 가정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코베인은 그 사실 자체에 상처를 크게 받았고 부끄러워했다.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함께 살았는데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시끄러운 성격이어서 엄마가 감당하기 어려웠나 보다. 힘에 부쳐 참다못해 엄마는 아빠에게 그를 맡겼다. 아빠는 커트와 재혼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지만 이후 재혼을 했다. 커트는 상처를 받았고 이후 새엄마와 이복동생과 살았다. 상처받은 커트는 얌전하게 지내지 못하고 동생들을 괴롭히다 쫓겨났다. 이모, 삼촌, 할머니 집을 전전하다가 결국 엄마집으로 다시 돌아왔단다. 돌아온 집에서 엄마도 그를 반기지 않았다고. 자신을 거부해서 쫓겨나 이 집 저 집 전전한 그 몸과 마음이 안쓰러웠다. 그는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정착하지 못한 떠돌이였다. 평생 우울증과 위통을 달고 살았다는 것이 이해됐다.
그의 상처는 그가 만들어낸 창작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가 그린 그림은 내장이 다 튀어나와 있다. 잔인하고 기괴하다. 그의 불안정하고 상처받은 정신세계가 표출된 듯하다. 이렇게 불안정한 정서를 가진 그인데 월드스타가 된 후 갑자기 얻은 유명세로 더 고통받는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언론의 공격에 커트코베인은 더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통과 정신적 고통을 잊기 위해 헤로인을 찾기 시작하고 그 고통이 더 심해지자 과다복용하게 됐다. 당연히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자살하게 된다. 1994년,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그렇게 너바나의 역사는 끝났다. 너바나의 역사는 첫 번째 앨범이 나오고 고작 5년 동안의 역사다.
이런 성장과정에서 그의 모든 태도와 감성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식 없음, 허세 없음, 예의 없음, 진보적 태도, 우울, 시니컬, 루저감성… 이런 락스타의 태도, 가치관, 삶은 전설로 남기에 충분한 드라마다. 특히 불안정한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는 죽음과 함께 잊히지 않는 신화가 되었다.
나를 대변하는 저항정신과 나다움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loved for who I am not.
내가 아닌 나로 사랑받을 바에야 나로 살면서 미움받겠다
커트코베인을 알게 되니 더더욱 너바나에 더 빠질 수밖에 없었다. 커트코베인의 가식 없고 솔직한 매력은 그의 말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내가 아닌 나로 사랑받을 바에 나로 살면서 미움받겠다니! 내가 좋아하는 힙합에서 중요한 가치인 Keep it real 과도 같은 맥락이었다. 가짜 겸손보다는 진짜 자랑을 높이 사는 태도다. 나 또한 늘 이런 삶을 꿈꾸고 지향한다.
너바나의 매력은 주류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비주류이면서 남들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갈길을 간다는 점이었다. 나다움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그리고 커트 코베인의 기행은 사회에 욱여넣어져 살고 있는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너바나의 팬들은 너바나의 이미지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저항하고 있지 않았을까. 나 또한 너바나, 커트 코베인을 좋아하면서 반골 정신을 위임하고 있는지 모른다. 너바나의 반항기 넘치는 음악과 태도를 추앙한다.
커트 코베인이 끌렸고, 그에 대해 알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전부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뿐인지 의문이었다. ^_ㅠ 그리고 왜 그들의 앞에는 얼터너티브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을까? 나는 반골 콜렉터인가? 신기하면서도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더 선호하는 나이기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취향이 여러모로 현재 나의 인생을 불행하게 한 원인이자 나답게 만드는 원동력이 됨 또한 잘 안다,,, 언젠가 빛을 발하리라 생각한다. 커트 코베인처럼 대안은 대세가 될 수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