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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품위있는 그녀 Jun 04. 2024

가까운 사람에겐 왜 더 조심하지 않는 걸까?

상대가 내 모든 걸 다 받아줄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나는 타인의 신경을 많이 쓴다.

동시에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종합하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당사자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

그리고 항상 후회한다.

다음번엔 꼭 말해야지! 하며 지난 일을 곱씹기도 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 시어머니는 본인의 집에서 사랑스러운 손자를 봐주신다.

덕분에 남편과 나는 토요일 아침마다 같이 아파트 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한다.

우리 부부가 같이 하는 몇 안 되는 활동 중 하나이기 때문에

토요일 아침운동은 꼭 가려고 노력한다.

평일엔 각자 운동을 하고

토요일은 내가 부족한 부분을 나보다 경력이 많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운동한다.

지난 토요일은 어깨부위 운동을 하기로 했다.(이렇게 정해 놓는 건 같은 부위를 이틀연속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덤벨프레스(어깨전면, 측면) - 사레레(어깨측면) - 덤벨프런트레이즈(어깨전면)를 순서대로 마치고

마지막으로 어깨 후면 운동을 하기 위해 해당 기구로 갔다.

앉아서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나이 든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나 이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2세트 남았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멍~해졌다.

분명 기구는 비어 있었다.

운동 중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본인 차례라며 우기는 게 황당했다.

동시에 양보해 주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

왜냐면 이 노인과 한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내가 스쿼트 기구에서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다가와

본인이 먼저 이 기구를 써도 되냐고 물었고,  나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흔쾌히 양보했다.

4-5세트 하고 양보해 줄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 운동이 끝날 때까지 그 기구로 운동을 했고,

결국 그날 스쿼트로 중량을 들지 못했다.

이런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노인의 말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난.

이 상황을 곁눈질로 힐끗힐끗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언성을 높이기도 싫고, 남들한테 주목을 받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목구멍에서 나오는 "양보하기 싫은데요?"라는 말을 억지로 꾸역꾸역 삼켰다.

그리고 "네. 마저 하세요." 말하고 자리를 비켜줬다.


마음에서 우러나지도 않는 말과 양보를 하니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그 노인의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 어쩜 또 그럴 수 있어? 기구에 이름이라도 써놨나?!

-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닌 거야!!

- 다음번에 그러면 진짜 말할 거야!!!!!!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도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남편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까의 일을 계속 이야기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를 데리러 시댁에 간 남편이 사라진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마음속으로 아까의 일을 곱씹었다.


다행히 오래 담아두지 않는 성격 덕분에(종일 이렇게 화를 냈으면 많이 아팠을 것이다...)

커피 한잔을 내려 소파에 앉아 멍 때리다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러다 문득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남편의 표정이 떠올랐다.


타고난 성격인 건지

자라난 환경 때문인 건지

어릴 때부터 나는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썼다.

많.이.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여자애들이 흔히 하는 친한 친구끼리의 험담도 하지 않았다.

불만은 마음속에 꼭꼭 담아 두었다.

내가 무슨 성직자라도 된 것 마냥 정말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수다 떠는 걸 좋아했지만

안 좋은 이야기는 들어주는 편이었던 것 같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공감하진 못할 때도 있었다.

계속에서 친구 험담을 하는 그 아이를 보며

어떨 때는 '얘는 잘 놀면서 왜 내 앞에서만 그 애 욕을 하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나와 달리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도 크게 받지 않고, 

내 이야기를 뭐든 잘 들어주었다.

마음속에 꼭꼭 담아두었던, 

하지만 쉽게 할 수 없었던 말들이 남편 앞에선 술술 나왔다.

처음엔 들어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그러다 점점 '이런 얘기를 남편 아니면 누구한테 말해?'라는 이유를 대며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필터링 없이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조언도, 비난도 않고 묵묵히 들어줬다.


그런데...

문득

이 사람은 무슨 죄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내 입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얘기들을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에겐 관대하고

정작 내가 가장 배려하고 신경 써야 하는 

배우자에게 예의 없게 행동하고 있다는 건 왜 몰랐을까?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학창 시절 친구의 험담을 들어주던 내 표정도

아까 남편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때의 나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된 것이다.라는 말에 100%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루에 한 번

안 좋은 얘기가 나오려고 할 때

알약을 억지로 삼키듯 다시 내 속으로 집어넣으려 한다.



                                                                                이미지출처 :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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