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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민재 Jan 03. 2018

내 안의 분노와 접촉하라


솟구치는 분노. 그게 터져나올까봐 힘을 다해 막고 있는 나.

     

당시의 내 심정은 내 인생 자체를 물러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말 누군가를 붙들고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이 다 물러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누구든 걸리는 사람만 있으면 엉겨 붙어서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 머릿속은 나 자신과 가족들, 모두가 다 마음에 안 들고 엉망진창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남편도 아이도 나 자신도 다 들어맞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비롯한 모두에게 실망스럽고 화가 났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 모든 것에서 발을 빼고 싶었다.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마치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동네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들어온 어느 날, 사소한 것에 마음이 걸려 넘어져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스케치북을 펴고 그림을 그렸다.

오일 파스텔로 꾹꾹 눌러서 한참을 스케치북에 쏟아 붇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휘감고 있는 무기력감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안의 분노를 접촉하고 나니 비로소 내 삶에 대한 두려움과 무기력감이 살짝 걷히면서 날 것의 내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이러다가 내가 미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도 자취를 감추었다.

     

내가 알아차린 내 마음속의 분노는 내가 내 삶에 대한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겠다는 선언과 같은 역할을 했다.

     

돌이켜보면 내 마음속에 억제하고 있던 분노를 알아차리고 표현해보는 것이 내 삶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었던 순간이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처음 미술치료를 접했던 20대 후반의 나, 그 때의 나는 감정을 묻는 질문에 생각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치료사가 다시 재차 질문하여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한다고 해야 하나?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자꾸 표현을 하라고 하니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잘 모르겠다’는 말로 끝내곤 했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 특단의 조치가 취해졌다. 치료실의 불을 끄고 어두운 상태에서 촛불만 켜놓은 채 종이 뭉치를 구겨서 던져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다가 화가 나는 대상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해보게 했는데 나는 대상을 찾질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크게 화가 난 대상이 없는 것 같았다. 딱히 할 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럴 용기가 없었던 것도 같다. 그러자 바로 눈앞에 있는 치료사에 대한 불만과 화를 이야기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막상 하고자 마음먹으니 눈물, 콧물이 함께 나오면서 일순간에 감정이 터져 나왔다. 내 앞의 대상이 그 감정을 받아줄거라는 믿음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는 치료실에서 한결 편안함을 느꼈다. 견고한 보호막을 한꺼풀 벗은 것 같았다.

     

그 후로도 한 번씩 상징적으로 내 안의 분노를 표현해보기도 하고 그로 인한 변화를 약간씩 감지하면서 내 논문의 주제를 '분노를 억제하는 성인여성들의 집단미술치료 체험연구'로 잡고 연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내 내면의 소리를 알아차리고 목소리를 찾아 흔들리는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아나가는 데 분노라는 감정은 그 중심에서 적절히 제 역할을 해주었다. 그 시작이 분노의 억압과 억제였다면 그 마지막엔 분노에 대한 관심으로 그 이면의 욕구와 감정을 알아차리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성공코치인 젠 신체로는 <성실함의 배신>(원제: You are a Badass) 인간이 타고난 공격적인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은 우리 모두 대단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행성에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세상을 향해 괴성을 질러댈 정도였으니 말이다. 태어나는 순간에 ‘나는 세상이 무서워 살아갈 자신이 없다’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걸 까먹을 정도로 움츠리는 아이는 없다. 세상을 향한 우렁찬 포효, 그게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 <성실함의 배신> 중에서 -

     

분노는 인간이 타고난 공격성에 바탕을 둔 감정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바램이 꺾일 때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를 무작정 억압하거나 억제하기보다는 접촉하여 그 이면에 있는 내 바램과 욕구에 귀기울일 때 우리는 남은  생을 이어나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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