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게 역경을 넘기기 위해 필요한 필살기
수술이 끝나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차갑다 못해 온 몸이 덜덜 떨리는 회복실에 누워 있었다. 배와 가슴의 일부를 도려내고 연결하는 큰 수술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내 몸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갑자기 그런 질문이 떠오르면서 나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도무지 이 상태로는 이전과 같은 몸 상태로 회복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이대로. 망가진 채로 평생을 살아야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다. 그냥 암을 제거하는 수술만 하고 말걸 괜히 배까지 건드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몸과 그 몸이 가진 회복력을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리고 그런 후회와 불안이 일어날 거라고는 이전에 예상을 못 했기 때문에 더더욱 불안해졌다.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자꾸 현실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이 확정되고 수술과 치료를 하기로 결정한 후로는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의 회복에 대해서 초점을 두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자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후회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그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막상 수술을 하고 회복실에 누워 있다 보니 그 모든 것들이 현실 감각이 없던 것에 의한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와 가슴에 일부를 수술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어떤 감각인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상태에서 갖고 있었던 대책없는 긍정적인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을 현실로 겪고 나니 그 이전에는 느끼지 못 했던 두려움과 후회, 불안이 한꺼번에 몰려 왔던 것이다. 그렇게 회복실에서 2시간의 외롭고 두렵고 후회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병실로 내려왔을 때도 여전히 나는 혼란스럽고 두렵기만 했다.
무통주사를 연결해 줘서 배와 가슴에 통증이 심해지면 무통 버튼을 언제든지 누르면 된다고 간호사가 알려 줬다. 그래서 통증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에 혈액 순환을 위해서 혈전 방지를 위해서 다리에 끼워준 기계의 굉음이 굉장히 거슬리고 피곤했다. 온몸을 옴짝달싹 못한 채로 이틀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낯설고 익숙해지기 힘든 일이었다.
‘이대로 못 일어나는 건 아닐까?’
그리고 38.7 도에서 떨어지지 않는 열이 또 하나의 두려움으로 작용했다. 전신마취를 한 상태에서 6시간을 수술했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폐가 쪼그라들어 있었고, 그 쪼그라든 폐의 꽈리들을 크게 다시 펼쳐주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폐에 문제가 생겨서 열이 자꾸 오른다고 했다. 그래서 간호사가 준 숨을 들이마시는 기구를 이용해서 1시간에 열 번씩 숨을 폐속 가득히 들이마셨다가 불어내는 운동을 하긴 했지만 열은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삼일 째 반복하다보니 점점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한참 열이 오르다 보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수술을 마친 직후보다 하루 이틀 지나서 더 기력이 떨어진 거 같은 느낌이 들자 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정말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속으로 자꾸 그런 생각들이 맴돌 때 나는 숨기지 않고 간호사나 남편에게 자꾸 질문을 했다.
“이대로 회복하지 못 하지는 않겠죠?“
“제가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간호사는 따뜻한 미소를 띄우며 용기를 주는 말을 했다.
“그럼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낫지 않으세요?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아질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회복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혹시라도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자꾸 불안하고 이런저런 걱정들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던 차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 즈음에는 내가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든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가의 전화를 받는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를 맡기고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가 4일쯤 되던 날, 열이 37도 아래로 떨어지고, 혼자서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전에 내가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정신력이라는 것이 완전히 다 사라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많이 아프지.’ 하며 내 힘듦을 잘 공감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암제거와 복부 재건수술을 한꺼번에 한 것에 대해 후회가 된다는 말을 하자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 봐. 나중에 따로 수술을 한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일 수 있고, 그리고 지금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힘든 수술을 한꺼번에 다 한 게 어쩜 다행일 수도 있어. 제일 젊을 때 한번에 해결했잖아!”
우습게도 그 친구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기분이 한결 나아 졌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완전 미복원상태로 평생을 지낼게 아니라면 언젠가는 복원을 위한 수술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텐데 그런 번거로움이 내게는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한꺼번에 진행해서 지금 조금 더 힘들긴 하지만 나중에 다시 이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미 복원으로 인해 받을 스트레스와 상실감들을 미리 한꺼번에 수술로 해결함으로써 정신건강면에서도 내 나름대로 나를 보호하는 결정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의 힘겨움과 아픔 때문에 내가 나를 위해서, 나의 미래를 위해서 했던 결정에 대해서 너무 후회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번 정리를 하고 나자 배와 가슴에 통증이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뒤부터 나는 서서히 회복해 가기 시작했다. 속도는 하루하루 조금씩 더 빨라지는 것도 같았다. 앉을 수 있게 되자 설 수 있게 되고 혼자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고, 병실 앞 복도까지 나갈 수 있게 되고. 병실 앞 복도를 지나 휴게실까지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고 병동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되고 병동 전체를 여러 바퀴 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서 움직이는 것에 (보조기구를 활용 하긴 했지만) 익숙해질 때쯤 나는 퇴원을 했다. 그리고 퇴원해서 며칠이 지난 지금 나는 나의 결정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한꺼번에 복원 수술까지 하게 된 것이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무사히 회복이 된다면 크게 다른 어려움은 없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생각의 전환이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한순간에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고 그 선택으로 인해 그이후의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