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드라마를 보고
넷플릭스에서 인기 드라마라고 해서 호기심을 갖고 보았다. ‘지옥’이라는 제목이 주는 강렬함도 한 몫했다. ‘죽음’과 ‘죽음이후의 세계’라는 주제가 암에 걸린 내게는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죽음예고를 받고 괴물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졌다. 교통사고나 암의 발병, 코로나 같은 전염병에 걸리는 것, 지진과 태풍 같은 자연재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자연현상들은 때로 당하는 인간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거기에다 그 현상에 대한 해석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과 필요를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만든 판에 휘둘려서 판단력을 잃고 휩쓸리는 대중들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암경험자로서 그 드라마에서 갑작스럽게 죄인임을 고지 받은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억울함, 수치심, 두려움 등이 절절하게 공감되었다. 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흘겨보고 소외시키고 조롱하고 협박하는 사람들. 생각보다 현실은 냉정하고 차가웠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종류의 눈빛과 제스추어들을 많이 경험하면서 나는 점점 위축되어 갔다.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 외출하는 것이 점점 꺼려졌다.
암환자를 위한 모자, 샴푸, 속옷 등 모든 제품에 거품이 끼어있는 듯 했고, 절박한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서 수익을 내려는 모습이 보였다. 요양병원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서비스들도 그 가치에 비해서는 비용이 너무 커보였다.
사람들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 샴푸와 모자를 구입하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2주정도 후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 즈음에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서 빠지는 머리카락으로 인한 충격과 번거로움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데 일반적인 미용실에 갔다가는 동물원의 원숭이마냥 다른 미용실 고객들의 궁금해하는 시선을 다 받아내야만 한다. 그게 꺼려져서 망설이던 차에 모자와 샴푸를 판매하는 가게에서 무료로 사전예약을 받아서 1명씩만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서비스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예약이 간편하여 예약을 하고 갔다. 암환자들만 방문하는 가게 안에 마련된 안전한 공간에서 내 머리카락을 존중하는 태도로 깎아주었다는 이유로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곳에서 판매하는 샴푸와 에센스, 모자 등을 십여만원의 비용을 들여서 구입했다. 알면서도 그냥 눈감아주는 것이다.
드라마<지옥>에서 사람들이 고지를 받아 죄인이 되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건데,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만든 프레임으로 이유를 만들어냄으로써 죄인이 되어 죽는 것조차 숨겨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보면서 그것이야말로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에 걸리는 것도 의료진에 의하면 마치 교통사고와 같이 어떤 원인을 특정할 수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생활습관이나 유전적인 요인 등이 연구로 조금씩 밝혀지고 있긴 하지만 나의 경우도 원인에 대해서 공식적인 의견을 들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암에 걸린 사람들을 드라마에서 죄인으로 고지 받은 사람들처럼 대할 때가 있다. 암에 걸릴만한 이유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암에 걸리는 것이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잘못인 것처럼. 항암치료로 외모가 너무 특별하게 변하니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길래야 숨길수도 없다보니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을 나는 회복의 과정에서 혹독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조금은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한 맷집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