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에 대한 욕구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

by 전민재

인터넷의 유방암 커뮤니티에서 왜 유방암에 걸렸는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글을 보았다. 가끔 그런 주제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있는 걸 보면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왜이 병에 걸렸는지 대해서 속으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처음에 유방암 진단을 받기 전후로 계속 그 부분을 생각했던 거 같다.


‘왜 하필 이 시점에 나에게 이 병이 왔을까?‘


이번에 글을 올린 사람은 통제욕구를 이유로 생각해 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본인이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고 완벽하고자 하며 주변 사람에 대해서 자신이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는데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암으로 왔다고 말해야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그 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답 글을 읽다 보니 생각보다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렇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육아와 가사를 모두 했던 그 시기. 괴롭고 힘들었던 것은 타인에게 가사 일이나 육아를 맡기는 것이 편안하지가 않고 너무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고민하고 처리하고 하는 것이 익숙해서일까? 나는 남에게 그 세가지중 어떤 것도 제대로 맡기지를 못했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종국에는 제 3의 타인에게 맡기고도 효율적으로 조율해나가지를 못했다. 온전히 내가, 내 마음대로 내식대로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고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결국 어느 순간에는 나가 떨어지는 듯한 선택으로 타인에게 맡기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못하니 또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양육과 가사를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에서도 대충 넘어가는 것 없이 하나를 하더라도 잘 하고 싶고 완벽하게 하고 싶고 실수 하고 싶지 않고 이런 것들 때문에 쉽게 일을 벌리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고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그런 상황들이 자주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눈치보고 자기 표현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곪아 들어갔다.


돌이켜보면 2011년부터 시작된 직장생활과 육아, 가사노동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힘들었던 그 시기.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최정점에 이르렀던 2014년. 그때가 암의 발병에 있어 유의미한 시작 지점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통제에 대한 욕구.


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 자연스럽게 아이와 남편에 대한 요구나 간섭이 줄어들게 되었다. 특히.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아이의 학습을 스스로 하도록 습관을 키우는 방식으로 내가 계속 집에서 영어와 수학을 지도해 왔는데 그 부분을 완전히 내려놓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니 아이 학원비라도 아껴보자는 심산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못해준 3년간의 시간에 대한 죄책감과 보상으로 최대한 함께 있어 주고 싶었고 아이도 그걸 원했다. 어차피 아이가 문제집을 풀고 채점은 내가 하는 식으로 진행을 해 왔지만 매일 채점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피드백하고 모르는 문제들을 같이 풀고 시키는 과정에서 서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채점을 하지 않고 그냥 풀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식으로 진행했다가 또 욕심이 생겨 체점을 하고 분량을 늘리고 심화문제를 풀고 하는 식으로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학원에 보내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학원에서 하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선생님 말 만나서 배운다는 것이 아주 운이 좋은 경우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쉽게 어딘가로 아이를 보내지 못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유방암에 걸리고 병원 치료를 받아 수술과 그 항암치료, 방사선치료까지 하는 마당에 아이는 엄마가 아파서 슬프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자유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기존처럼 내가 간섭하고 체크하지 않게 되자 스스로 할 만큼 학습하고 나머지 자유시간은 만끽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자유시간도 많이 늘어났다. 대신에 내가 직접 체크하고 관리 할 때보다 학습량은 줄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길게 봤을 때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나의 관계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도 어차피 많은 시간을 멍 때리며 보내야하기에 병의 고통이 아닌 다른 것에 주의를 주며 슬기롭게 의지해서 이 난관을 이겨 나가야 하기에 Tv 예능을 보면서 흘려보내는 시간들을 가져야 하기에 그 시간들을 아이와 함께 편안하게 보내고 있다 보니 서로 부딪힐 일이 없다. 예능프로를 보면서 웃고 스트레스를 풀라는 조언을 딸아이가 해 준 걸 보면 나보다는 이쪽으로는 우리 딸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진지하기만 한 엄마의 삶이 자기보기엔 재미없고 지루해 보이는지 내게 매번 그런 충고를 한다.


막상 아프고 보니 성적이나 공부보다는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그리고 가족들 간의 관계나 그런 것들이 편안하게 흘러가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질이 중요하다.


딸아이는 오늘 줌으로 온라인 졸업식을 하고 있다. 가족들이 뒤에서 참관해도 된다고 담임선생님이 얘기를 해 주셨지만 딸아이는 원치 않았다. 졸업장을 받으러도 혼자 다녀오겠다고 한다. 같이 가서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원치 않았다. 복합하고 번잡스럽고 그런 것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도 수술 후 회복 중에 굳이 거기까지 따라가야 사진 찍어 주기엔 체력이나 감지 못해 떡진 머리카락상태나 여러 면에서 조금 무리가 있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암치료를 받고 하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더 편안한 과정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시기였디면 외출하거나 외부활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은데 지금은 대부분의 것들이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가 있게 되어서 그게 도움이 되었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재택근무를 할 수가 있는 상황이 되어서 내가 수술을 받고 집에 돌아와서 회복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남편과 함께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쨌거나 유방암은 나의 통제 욕구를 어쩔 수 없이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랬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게 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고 그리고 그 다음은 딸아이, 그리고 그 다음은 남편인 것 같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


유방암은 내게 불확실성에 대해 견딜수 있는 기회를 강제로 만들어 주었다. 따로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고 있지 못하던 내게 암이라는 역경을 통해 불확실성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게 했다. 그걸 한 번 겪어낸 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불확실성을 대면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스스로가 조금은 더 단단해졌다고 느낀다.


이 흐름을 지속적으로 가져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전보다 더 유연하고 화목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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