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있는 사람

잃는 만큼 얻게 된 것들

by 전민재

전에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많아서 뭐가 뭔지 헷갈리고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이 사람한테 잘 하면 저 사람이 서운해 할 것 같고 그래서 어찌할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엔 그냥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표현을 못하고 시기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꽤 있었다.


그런데 내 몸이 크게 아프고 나니 그런 것들이 다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됐든 실제적으로 나한테 잘하고 도움을 주고자 챙겨주는 사람한테 나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받고 보니 그 마음씀씀이와 제스추어가 주는 관심과 위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잘 하고 싶고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한테 확실히 잘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실속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


암에 걸리기 전에는 희뿌연 안개 속에 있던 관계들이 더 선명해지고 확실해졌다.


갑작스럽게 유방암 3기로 진단받고 허탈해하고 있을 때 내게 용기를 주었던 문구가 있다.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라는 책의 구절이다.


“많은 것들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 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주거나 아니면 받거나 하면서 그 행위 속에서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과정자체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백날 고민해봐야 답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은 형식으로 표현되어야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사랑하는 마음은 상대방에게 시간과 돈을 쓰고 노력을 해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쳤다.


내가 여러 번 주었으나 답없는 사람은 거기까지다. 미련을 갖지 말자. 철학자 니체는 ‘본인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려하지 않으면서 사회나 다른 사람이 주는 이점은 누리려는 사람’을 ‘기생충’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돌이켜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실속 없는 관계들 속에서 허우적거렸나 싶다. 또한 니체가 말한 사랑하는 자이기보다는 기생충이 되고자 했던 순간들도 떠올라 씁쓸하다.


암에 걸리고 나서 얻은 것 중에 하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인식과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보다는 진화된 감도로 이 사람이 진짜 나를 인간적으로 대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앞으로의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적절히 이별을 해야할지에 대해서까지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내 내면의 과정이 흐릿하게 마음깊은 곳에서 진행이 되고 있음을 경험하면서 참 낯설지만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던 사람 혹은 내 앞에 있는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어떤 매달림 같은 것의 끈이 약간은 느슨해지면서 ‘어, 그래. 네가 나하고 맞는 사람인지, 내가 너하고 앞으로 함께 관계를 맺어갈 시간이 의미가 있을지 나도 한 번 지켜보고 판단해보겠어.’하는 배짱이 생겼다고 느낀다. ‘나같은 사람을 선택하고 시간을 내어주는 당신’에 대한 배려로 내 기분이나 느낌 등은 조금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습관적인 패턴을 이제는 좀 바꿔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기엔 내게 남아있는 시간이 너무 불확실하고 또 짧게 느껴진다. 내게 남은 시간을 좀 더 농밀하게 나로 살아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기꺼이 책임을 질 줄 알고. 나의 기쁜일에 함께 기뻐해주고 슬픈일에는 함께 슬퍼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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