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 성격이 만나서 부부가 되었을 때
남편과 나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표현하자면 남편은 ISTJ, 나는 INFP이다. 암에 걸리고 남편으로부터 간병을 받으면서 나는 내가 은글슬쩍 남편보다 우월하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것이 제대로 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암으로 인해 나의 진정한 파트너로서 남은 인생을 함께 하기를 바라는 남편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수술 후 2주간의 입원기간동안 휴가를 내고 묵묵히 병원에서 내가 회복하는 것을 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집안일과 회사일, 학부모 역할을 모두 차분히 소화해내며 나의 투병으로 인한 공백들을 성실하게 매꾸어 주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후 나는 한없이 겸손해졌다. 나라면 남편만큼 일관되고 성실하게 해내지 못했을 것이 뻔했다. 항상 덤덤하고 정서적으로 민감성이 낮은 남편이기에 가능한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로봇같이 안정적이고 일관되고 지속적인 서포트는 남편이기에 가능했다. 아프기전까지는 남편의 그런 정서적인 둔감함이 서운함이 되기도 하고 답답함이 되기도 했다. 그 이유로 많이 싸우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부부생활에서 가장 아쉽고 뼈아픈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암에 걸리고 투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반대로 남편의 그런 특성이 엄청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을 목격했다. 내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그런 것.
남편이 너무 고생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해하는 내게 남편이 웃으며 말한다.
“내가 아프면 당신도 이렇게 할 거 아니야? 당연한 거야.”
뜨끔. 나는 과연 남편만큼 해 낼 수 있을까?
감정기복이 있고 예민한 내 성격. 몸을 움직여 뭔가를 하려면 뜸 들이는데 더 오래 걸리는데. 요리도 잘 못하고. 운전 실력도 시원찮고. 체력도 저질. 예민해서 병실바닥에서 잘 수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온다.
암에 걸리고 나는 남편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부부라는 인연을 맺고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30년 정도를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나서는 그 갈등의 정도가 심해져서 이혼을 생각하기도 하고 서로에 대해 날선 말들과 비난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번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덜컥 암에 걸린 걸 알았을 때 제일 두려웠던 것 중에 하나는 버림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점이었다. 혹은 무시당하거나 귀찮은 존재,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조바심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자세로 내 병에 대해 인지하고 배우자로서 간병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수술할 때 병원에서 함께 지낸 시간들은 내가 미처 상상하고 기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지병이 있으시니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었고 간병인을 쓰자니 낯선 사람과의 서걱거림을 견디면서 난생 처음하는 6시간의 긴 수술과 그 이후의 회복기간을 버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내 두려움과 조바심을 구구절절 늘어놓기 전에 남편은 먼저 자신이 나서서 간병인이 되기를 자처했다. 회사의 배려와 제도,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분위기 등 여러 가지로 배려와 환경적인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회복하고 또 6개월에 걸친 항암치료의 뒤치다꺼리를 남편은 정말 군말없이 묵묵히 해주었다.
여자들의 취향이나 여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파악하고 맞춰주는 데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서 함께 대화하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남편이어서 아쉬움이 더 컸던 과거라면 아내가 암에 걸린 상황에서는 대화보다는 일단 몸을 써서 운전을 해서 병원을 함께 다녀오고 요리를 해서 영양이 부족하지 않게 보충해주고 집안일을 부지런히 해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게 시스템을 지탱해주는 것이 너무 절박했고 남편은 그 많은 것들을 묵묵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착착 해냈다. 그런 모습들이 공감적 대화는 잘 할 수 있지만 몸이 느리고 생각이 많아서 한번 움직이기는 힘든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놀라운 것이었다. 남편의 정서적인 무덤덤함도 이번에는 판이하게 다르게 작용했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그런 감수성없는 면이 답답하고 냉정하게만 느껴졌던 부분이 분명 있었는데 내가 암에 걸리고 보니 그런 남편의 무덤덤함이 오히려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처럼 감정적으로 동요가 심하고 업다운이 심한 기간에 남편도 함께 그랬다면 우리 부부는 그 시간을 어떻게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도 상당히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에 대한 강연에서 행복이란 인간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쾌의 경험에서 오는 것으로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서 강하게 체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편은 전부터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해왔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나는 너무 소박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행복에 대해 수년간 연구해온 분이 말씀을 하시니 과연 그런것이구나 싶으면서 남편이라는 사람이 새삼 달리 보였다. 나는 이런저런 이론이 궁금해서 머리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남편은 그냥 느껴지는대로 말하고 행동하는데 거기에 인류의 오래된 지혜의 정수가 새겨져있는 것 같달까? 강한 생명력으로 무슨 상황이든 덤덤하게 헤쳐나가고 또 순간을 즐긴다고 보인다. 이전에는 그렇게 단순하고 무식하게 보이던 사람이 이렇게 한 순간에 달리 보일 수가 있을까. 이게 다 암투병의 과정에서 서로를 깊이 겪어본 후 생긴 변화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