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과 내려놓음
암에 걸렸다는 말을 꺼내고 난 뒤의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듣자마자 오열하는 친구도 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묻고 또 묻는 지인도 있었다. 걱정하는 말투지만 묘하게 기뻐하는 티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최대한 뭔가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었다. 드물게는 내가 먼저 아는 척 인사를 건냈을 때 손사레를 치며 뒷걸음질치는 사람도 만나보았다.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얼떨떨하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나는 타인의 불행한 사건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보통 암에 걸렸다고 하면 그 과정을 대충 지나온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절망감이나 좌절, 무기력함에 비해서 과하게 안됐다는 연민을 느끼면서 충격을 받고 위로를 건넨다. 물론 나도 처음에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그리고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을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느라 고생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8개월 남짓한 시간을 보내고 보니 그냥 이 병도 내게는 익숙해졌는지 암에 걸리고 나서 그렇게 나쁜 일만 내게 일어난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암에 걸리고 나서 나는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삶의 한 영역의 문을 열고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두려워서 꽁꽁 걸어 잠그고 열지 않던 문을 누군가가 밖에서 확 열어젖힌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러다가 암걸린다.’ ‘암적인 존재’ 등 암에 대해서 결코 겪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절망이나 암흑으로 비유하는 걸 즐겨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나는 한결 일상을 느리게 보내는 것, 매일 하루 세끼 밥먹고 똥싸고 잠자고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아무일 없이 빈둥대며 하루를 지내는 것,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와 함께 웃고 시간을 보내는 것, 소설책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 등등 이전에는 마음 편히 그 행위에 집중하지 못하고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던 행위들에 대해서 조금 더 마음이 편하게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
생에 대한 집착, 효율성에 대한 집착, 완벽함에 대한 집착 등등 많은 것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 기분이다.
그러다보니 한결 가볍다. 언제든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져온 전환이다. 내가 집착하고 애써서 얻는 것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자각. 태어나면서부터 필연적으로 인간이 짊어지게 되는 죽음이라는 끝을 마주하기 싫어서 외면하고 모른척할수록 어쩌면 그 반대로 생에서의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 휩싸이게 되는 것도 같다.
아이의 성적과 건강에 대한 집착에서 좀 벗어나 거리를 두게 되었다. 마침 중학생이 되어 청소년기에 접어든 적절한 시기에 내게 암이라는 병이 찾아와 엄마가 덜 필요하게 된 상황이 참 감사한 일이다. 수학학원에 가는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아이는 한 번 경험해보더니 이 좋은 걸 왜 이제 알았냐는 반응을 보이며 즐겁게 학원에 다녔다. 덕분에 나와 남편은 매주 3번 4시간정도의 여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시간동안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하고 필요한 일처리도 하면서 숨쉴 구멍이 생겼다.
암에 걸리고 나서 아무튼 나는 그 전에는 내 몸에 있는 줄도 몰랐던 어떤 근육을 쓰게 된 느낌이다. 또 내 주변에 있던 약간은 흐릿했던 사람을 포함한 많은 것들이 좀 더 선명한 어떤 모습으로 내게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천천히 더 알아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