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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Apr 20. 2020

남의집살이-11

달팽이집 벗어던진 이십구(달팽이)

디데이.


나는 링 위를 올라가는 선수마냥 전투 태세였다. 시합날까지 개체량을 맞추고, 신체 능력을 끌어 올리고, 각종 기술을 연마하는 것처럼. 나는 이사를 도와줄 인원수를 맞추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 더는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상해서 그에 따른 대책을 준비했다. 


차곡차곡 준비하는 과정에 정신이 맑아지면서 ‘이사만 하면 다 끝이다’ 하는 생각에 흥분하기도 했지만, 사실 자주 울었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버겁고 혼란스럽고 지쳤다. 


이삿날까지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전세금을 못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와중에도 수상한 편지를 보낸 같은 층 어느 남자를 피해 몸 성히 그 집을 나와야 한다는 건, 그야말로 미션이었다. 이사는 그 자체로도 피로다. 짐을 싸고 옮기고 집을 알아보고 집을 나오고. 근데 나는 거기에 생명의 위협에다 (하나 받고 둘이요) 내 돈을 지돈이라 우기는 도둑놈까지 만나지 않았는가.

하지만 ‘미션 파서블’ 

불가능은 없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난 할 수 있다. 아 캔 두 잇. 파이팅.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문구를 속으로 읊조리며 마음을 굳게 먹으려 애썼다.


게다가 날 도와주러 오는 많은 이들, 그 고마운 마음들까지 나는 안고 가야 하지 않나.


그렇게 디데이를 마주했다.


계획대로 Y가 퇴근 시간에 스타렉스를 렌트해 나와 C를 태웠고 그 다음 나와 O, L을 태웠다. 나는 비장했지만 나머지 지인들은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꽤 신나 있었다. 나의 지인 중에는 서로 아는 이들도 있었고 모르는 이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또래라서 금방 잘 어우러졌다. 그 분위기에 나 또한 긴장감이 스르르 풀렸다. 의지할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안정이었으며 행운으로 느껴졌다. 


K는 퇴근이 조금 늦어져 끝나자마자 본인의 스쿠터를 타고 따로 출발하겠노라 했다. 나를 포함해 인원은 총 5명.


이 정도면 어벤져스이다!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집 앞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움직이기 시작하니 이전에 계획했던대로 층마다 누군가가 상주하는 식의 역할 분담이 똑 떨어지진 않았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짐을 옮기는데 집중했다.


나는 내리자마자 임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치는 자신의 부인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와서는 멀뚱히 서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소풍은 끝. 그들을 보자마자 몸에 돌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 치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계약할 때 봤던 임대인이 중간에 바뀐 탓으로)


이사는 왜 가요?


임대인의 부인이 물었다. 미주알 고주알 대화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었기에 난 딱히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임대인이 아내에게 버럭 화를 내며 ‘쓸데없는거 묻지마!’라고 했다. 그 치가 아내에게 하는 언행들을 보아하니 어떤 류의 사람인지 대충 파악이 됐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대했지만, 사이다는 없었다. 오히려 별 탈 없이 끝내야 한다는 생각, 지인들이 있는데서 큰 소리가 오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한 시라도 빨리 이 집같지도 않은 의미없는 공간을 떠나고 싶은 조바심에 나는 서둘러버렸다. 


임대인은 전세보증금 5천만원을 수표로 건넸다. 


영수증 가져오라는거 가져왔죠?
무슨 영수증을 말씀하시는건지 모르겠던데요.
아이 참 무슨 영수증은. 종이랑 펜 가꼬와요.
그냥 아무 종이나 되나요?
돈 받았다는 영수증을 남기는거라니까. 그냥 얼마 받았다 손으로 적으라고!


아.. 나의 고구마는 왜 끝나지 않는 것인가.


♣ 이십구달팽이의 한마디. 수표로 받을 땐 은행 업무시간을 기억해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세보증금을 수표로 받아야 한다면 은행 업무시간 내에 받는게 깔끔하다. 수표는 타행 거래 또는 액수에 따라 거래 제한이 있다. 예를 들어 금요일 낮에 A은행에서 발행한 수표를 A은행으로 입금하면 현금화(송금 거래 등)하기 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금요일 낮에 A은행에서 발행한 수표를 B은행 계좌에 입금하면 월요일 낮 12시 20분 이후부터 현금화할 수 있다. ATM기를 통해 입금해야 한다면 해당 지점의 ATM기에서 수표를 받는지, 얼마까지 받는지 등도 확인해야 한다. 
만약 임대인으로부터 은행 업무시간 외 시간에 보증금을 수표로 받았는데, ATM기로 입금할 수 있는 한도를 넘었거나 수표를 받는 기기가 없다면 은행 문이 열 때까지 수표를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잘 보관하면 상관 없지만 수천만원씩 하는 수표를 소지하고 있기는 굉장히 신경쓰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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