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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주행, 그 황천길에 대하여..

자동차 운전면허 취득 대여정(4)

by 삼십대 제철 일기

2종 보통 장내기능을 3트만에 성공하니 도파민이 확 솟구쳤다. 그날 하루만큼은 장원 급제라도 한 것처럼 어깨에 힘을 빡 주고 으스대며 다녔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어찌나 자랑을 했는지 모른다. 남편과 눈만 마주쳐도


"나 면허 있는 사람이야!"

(영화 <타짜> 속 김혜수 배우의 유명한 대사.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버전. 큭.)


한참 즐거워하고 나니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불안함. 이제 남은 건 도로주행인데,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을까? 이미 장내기능에서 쓴 맛을 본 터라 도로주행도 헤매는 게 아닐까 불안해졌다.


결국 그날 바로 '주행연습' 스티커를 샀다. 학과시험(필기시험)과 장내 기능시험을 모두 합격하면 '연습면허증'이 나온다. 내가 다니는 학원에선 경찰청에서 부여한 연습면허번호를 알려주었는데, 학원이나 상황에 따라서 응시원서에 붙이는 연습면허증을 주기도 한다.


연습면허증이 나왔다고 무턱대고 도로에 나가면 안 된다. 반드시 주의할 사항은 다음 세 가지다.

1) 차량 앞 유리 우측, 차량 뒷유리 중앙 상단에 '주행 연습' 문구를 붙여야 한다.
2) 조수석에는 운전 경력이 2년 이상인 사람이 동승해야 한다.
3) 연습면허는 유효기간 1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다. 도로주행 시험에 합격하면 연습면허의 효력을 잃는다.

인터넷에서 주행연습 스티커를 검색하면 규격에 맞는 제품들이 많다. 2장 세트를 사서 차량 앞, 뒤에 붙였다. 운전 경력이 10년도 넘은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처음으로 도로에 나갔다.

(나는 이렇게 생긴 걸로 샀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말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

지하주차장에서 천천히 차를 빼고 도로로 나서는 순간, 얼마나 짜릿하던지! 이제야 진정한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스스로 차를 몰고 있다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맨 처음 한 건 집 앞 카페 가기였다. 차 타고 5분 거리였는데, 보행자 도로가 아닌 차도로 가려니까 처음 가보는 길처럼 헷갈렸다. 남편이 옆에서 알려주는 대로만 가면 되는 데다, 차가 없는 시간이라 큰 어려움 없이 다녀왔다.


그다음엔 시골길을 달리고, 이어 차량 통행이 적은 차도를 달리면서 핸들감과 브레이크감을 익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꽤 즐거웠다. 운전을 하는 게 떨리고 어려웠지만, 나도 남들처럼 차를 몬다는 게 신이 나고 슬슬 자신감도 붙었다.


그리고 학원에 가서 주행 연습을 받으러 갔는데……. 막상 학원 차로 정해진 코스를 도니까 정신이 없었다. 내가 다닌 학원은 주행 시험 코스가 총 4개 있었는데, 그 코스를 다 외워놓고 시험날은 랜덤으로 배정된 코스로 시험을 봐야 했다.


학원에서 약식으로 만든 지도를 보여줬는데, 길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좌우를 살피라고 할 때도 정확히 어느 도로를 살펴야 하는지 헷갈렸고, 핸들을 가볍게 쥐라고 했지만 너무 긴장돼서 좀처럼 힘이 빠지지 않았다.


어쩐지 하면 할수록 더 긴장이 되고 겁이 났다. 도로에 차가 많으면 멘붕이 와서 해야 할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물론 지금도..) 바로


차선 변경!


개인적으로 연습할 때도, 학원에서 강습을 받을 때도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어려운 줄 몰랐다. 나는 초보도 아닌 '무면허 운전자'(대신 연습면허를 지닌 합법적인 무면허 운전자)였기 때문에 조수석에 앉은 이들은 항상 내게,


"지금 들어가, 지금!"


하면서 정확한 타이밍을 알려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차선을 옮기고 난 뒤엔 칭찬까지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즐거웠던 것이다.. 막상 스스로 끼어들 타이밍을 판단해서 차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는 순간이 오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결국 첫 번째 주행 교육을 마치고 '특훈'에 들어갔다. 남편과 주말마다 주행 연습을 했다. 하필이면 차가 많을 때 도로를 탔더니, 차선 변경에 계속 실패했고 나중엔 겁이 나서 한쪽 다리가 덜덜 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이 급해져서 충분한 거리를 두지 않은 채로 차선을 변경했다. 해당 차선에는 대형 화물 트럭이 오고 있었다.

(출처=한국도로교통공단 유튜브 채널)


빵 빵 빵-!


화물 트럭의 클랙션을 그렇게 가까이서 들은 건 처음이었다. 클랙션이 내 안에서 울리는 것처럼 온몸이 요동을 쳤다. 한 번 죽을 뻔하고 나니 혼이 빠져서 실수를 연발했다. 그 뒤로도 아찔한 순간이 이어졌고, 양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질 정도로 긴장을 했다.


남편과 나는 만신창이가 돼서 집에 돌아왔다. 처음엔 '잘했어, 잘했어'를 연발하며 기를 세워주던 남편도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 미안해서 계속해서 사과를 했다. 나의 주행은 그야말로 '황천길 주행'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동안 휴식을 가진 뒤에야 남편이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조목조목 짚어줬다. 급한 차선 변경, 주변 상황 미파악, 나들목 진입 지연 등등. 지나치게 긴장을 하고 심적 여유가 없으니 주행 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아직 학원에서 두 번째 주행 강습이 남아 있으니, 그때 바짝 배워서 익혀보기로 했다. 남편이 말했다.


"그래도 오늘 잘했어. 황천길 갈 뻔했는데 살아남았잖아."


무시무시한 위로의 말을 들으며, 두 번째 주행 강습을 들었다. 강습이 끝나면 바로 주행 시험을 보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3시간 강습을 다 듣고서 시험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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