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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은자 Sep 27. 2020

명절날 친정에 갈 수 없는 딸 같은 며느리 [06화]

어머니는 친정에 가라는 말을 먼저 안 꺼내신다.



언제부터였을까? 명절날 시어머니는 친정에 다녀오라는 말씀을 안 하신다. 어머니에게 이해되지 않는 두 가지 중에 하나다. 명절 당일 머니는 딸들에게 전화해서 빨리 오라 재촉하신다. 시누이 둘 다 어른을 모시고 살지 않지만 장남 며느리에  홀시어머니가 계신다. 시누이들은 오후 5시쯤 집에 온다. 딸이 친정에 오면 며느리도 친정에 보내줘야 하는데 ,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친정에 가라는 말을 먼저 안 꺼내신다. 사람을 좋아해 함께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가족이 모이면 큰아들 부부가 당연히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10년 전쯤 일이다. 남편이 명절 전부터 어머니에게 몇 차례 다짐하고 친정에서 자고 오기로 했다. 명절 연휴기간이 길었던 것 같다. 내가 친정에 굳이 가려는 이유는 일을 안 하고 친정에서 쉴 수 있다는 생각보다 어머니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기도 하다.


명절날 친정에 와 있는데 만들어진 음식을 가지고 한 끼 식사를 차리시며 어머니가 몇 차례 전화해서 물어보신다. 언니가 친정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게 전화하지 말라고 수화기를 통해 시누이 말소리가 들린다. 친정에서 잠을 잔 다음날 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 영화가 생각보다 길었다. 집에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에 불편해 보인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한다. 그때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남편에게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 집에 오지 않고 뭐 하고 있느냐!!! "  수화기 너머로 화가  어머니의 날카롭고 큰 목소리가  들린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반발심이 생기며 화가 났다. 허락받고 온 친정에 어머니가 조금 기다려 줄 수는  없을까? 친정엄마는" 네 집에 손님이 와 계시는데 , 주인이 없으니 어머니가 화를 내시는 것은 당연하다! " 하시며 짐 챙겨 빨리 가보라고 야단을 치신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은 이미 전화 내용을 알고 있어 어색해했다. 시누 남편들이 점심을 먹지 않고 간다 하니 어머니 마음이 급해져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한다. 명절 연휴기간이 길어 돌판에 삼겹을 구워 먹는 메뉴를 정해 놨었다. 시누 남편들에게 점심은 꼭 먹고 가시라고 강한 어조로 부탁하고 앞치마 끈을 단단하게 동여 메고 상차림을 준비했다. 명절날 시누이들이 저녁상을 차리며 그릇을 깨고, 갈비를 졸이면서 태우고 , 준비한 음식은 상에 내놓지도 않고 , 우왕좌왕 두서없는 상차림에 큰며느리인 내가 없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난 상황이 되었단다. 시누이는 어머니가 나를 많이 의지해서  가 없으니 어머니가 기운이 없어 보인다며 , 미안한 마음에 나를 위로하려 애를 쓴다. 시댁 식구들이 인정 많고 착한 사람들 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어머니도 사리분별이 뚜렷하고 , 이해심 많고 , 정이 많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매일 얼굴 보며 함께 있으니 일 년에 두 번 명절날 친정에 갈 수 있게 양보할 수 없을까? 어머니의 사람 좋아하는 욕심은 가족이 모두 모여야 하고 특히 큰아들의 부재는 어머니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래도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나도 친정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 하는 딸이다.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어머니에게 나는 딸이 아닌 딸 같은 며느리이다.


나의 잘못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정을 티 나게 자주 가지도 않고, 결혼 초기에 한 번은 얼굴을 붉히더라도 명절날 친정에 갈 수 있게 해 달라 말씀을 드려야 했는데... 우리 집에서 친정까지는 승용차로 20분 거리다. 시간이 자유로운 직업인 내가 친정에 자주 간다고 어머니는 생각하시는 걸까?  그날 이후 시댁 식구들은 명절날 만나는 것으로 친정식구들은 명절 전날 만나 저녁을 먹는 것으로 정했다


명절이 4박 5일이면 멀리사는 시누이는 연휴 마지막 날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집으로 출발한다. 이미 만들어진 반찬이 있다 하지만 하루 세끼 식사를 모두 챙겨야 한다. 물론 시누이가 잘 도와준다. 내 시간을 갖지 못하고 식구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가족들이 떠나면 생각보다 집안은 정리할 것이 많다. 명절 음식 준비부터 6일 동안 부엌에 있다 일터로 나가면 그날은 멍 때리는 날이 된다. 스트레스가 가득이다. 몸은 뻐근해서 도저히 일머리가 회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다.


어머니와 살면서 친정에 무얼 가져다준다는 얘기를 안 하고 살아왔다. 한 번은 친정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우리 큰딸은 음식 장만한 얘기만 한다며, 맛 좀 볼 수 있게 조금만 가져와 보라고 말씀하셨다. 엄마 성품으로 몇 번은 생각하고 하신 말씀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남편은 본인이 살림하면서 어머니한테 허락받고 가져다주냐고? 내가 바보 같단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친정 엄마 생각이 왜 안 나겠는가? 자존심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구차하게 시어머니에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거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한 번은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실 때 친정엄마를 챙겨주셨다. 친청엄마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어머니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후로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면 친정엄마를 먼저 챙기신다. 어머니와 살다 보니 어머니 스케줄을  따라 김치를 담고 여러 집으로 나누고, 나를 만나 온 것이 아닌데, 손님이 오면 합석해 우리 집을 나설 때까지 함께해야 하는 시간들. 이제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 나를 충전시키는 시간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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