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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은자 Feb 08. 2021

시어머니와 목욕을 같이 갈 수는 있다? [08화]

늦었지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토닥토닥~ 쓰담쓰담~잘했어!
                    





그게 뭐라고... 한 번만 하면, 다음에는 더 쉽게 할 수 있어~ 나 자신이 대견하다. 위대한 일을 했느냐? 아니요. 나 자신의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시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속으로 중얼중얼, 흥분하여 남편까지 힘들게 하지 않으려 다짐한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면 할 말 다하고 사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의외로 시어머니와 관계에서 말을 못 하고 끙끙대는 허당이다.




'그냥 한 번만, 이번만 하면 되지 , 많이 힘들지도 않은 일인데.. 티 내지 고 아무 일도 아닌 척하면 되잖아? '시어머니와 20년을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어른하고 같이 살며 겪어야 하는 아주 소소한 불편한 일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내가 어머니와 관계된 일로 화를 내면 남편은 별일이 아닌 것 같은데 화를  낸다고 한다. 이미 화가 났을 때는 지금의 상황으로만 화가 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 쌓여 있던 감정까지 포함되어 더 화가 나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살면서 내 생각과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때, 안 하고 싶어요!  다음에 할게요! 싫어요!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20년을 어머니와 살면서 어른에게 맞추어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때그때 의사 표현을 하지 않고 살아왔던 일들이 습관처럼 되어 왔다. 어머니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여동생에게라도 얘기하며 풀어야만 한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 성격이 문제인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시어머니와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다 보니 어머니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유난히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행복을 느낀다. 나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좋아한다. 성향이 완전히 다른 데서 오는 불편함을 그동안 내가 참는 걸로 지내왔다.




어머니가 오른쪽 다리 골절과 왼쪽 다리 재봉합수술로 일주일을 입원했다. 통원해서 실밥을 빼고 하루가 지나 목욕을 모시고 가기로 했다. 사우나에 전화해서 세신이 있는지 , 사람들이 많은지 물어보고 시간을 정했다. 어머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터라 세신을 해드리려 생각했다. 어머니는 세신을 받고 목욕탕에서 나올 때 입버릇처럼 정말 행복하다고 하신다.  그래서 어머니 다리가 불편하니 부축도 해드릴 겸 함께 목욕을 가기로 했다.






갑자기 벨 소리가 난다. 시이모님이 오셔서 점심을 대접했다. 어머니가 식사 후 식탁에 다리를 올리고 상처 부분에 여러 번 밴드를 붙인다. 이모님이 밴드를 여러 겹 붙이는 이유를  물으니 목욕 갈 거라 말씀하신다. 이모님이 목욕을 같이 가자고 한다.  이모님이 내게 목욕을 가냐고 여쭈어보신다. 순간 말을 얼버무렸다. 이모님은 집 앞으로 데리러 오라고 하시며 가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모님이 가시니 안 가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나를 한참 쳐다보며 망설이다 다른 말을 안 하고 바로 수긍하신다.




몇 달 전에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을 가려는 데 갑자기 어디로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를 잘 챙기는 친구분에게 목욕을 같이 가자고 하신다.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되었지만 용기 내어 남편에게 목욕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이 나를 대변하듯 어머니에게 왜 전화했냐고 화를 냈다. 어머니는 큰소리로 같이 가면 왜 안되냐고 말씀하신다. 그날 우리는 목욕을 가지 않았다.




내가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하시는 어머니는 나와 상관없이 일을 추진하신다. 나는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고 속에서는 뭔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해가 가지 않을 거다. 그냥 함께 가면 되고 어머니에게 잘하는 분으로 나도 인정을 하고 있는 터라 당연하게 함께 가자고 할 줄 알았을 거다.






결혼 전 아버지 사업 실패로 힘들었을 때  일주일 동안 시골학교에 있다 집에 오면 유일하게 내게 투자하는 것이 목욕 가는 일이었다. 목욕이 내게는 휴식 개념이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를 동행하는 것은 신경이 쓰여서 솔직히 편하지 않다.  시어머니와 같이 사니 목욕을 갈 수는 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과 동행하는 목욕은 하고 싶지 않다.




늦었지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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