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 온 손님은 대접을 잘해야 한다.
정성을 다해서 맛있는 음식과 혹시 불편한 부분이 없는지 살펴줘야 한다.
자식을 손님만큼 대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보통 아이들이 하지 않는 것을 모두 경험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엄마에게 절망과 좌절, 삶의 의미를 없게 만들었을 때, 답답해서 찾아갔던 철학관 선생님이 해준 말씀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태어나기만을 간절히 원해서 낳았던 아들이고 , 아들의 존재 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 엄마가 기대를 많이 하면서 아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엄마 욕심이었는데···
아들이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삶이라는 것이 녹녹지 않아서 살다 보면 힘들고 지칠 때가 분명히 있을 텐데 , 그럴 때마다 가족들의 소망으로 귀하게 태어났고 지금도 가족들이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아기를 갖기 위한 노력
엄마가 31살에 결혼했으니 그 시절에는 완전 노처녀였다. 6남매의 큰딸과 4남매의 장남이 만났으니 양가에서는 아이 소식을 많이 기다렸다.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는데, 6개월이 지나도 임신이 안되면 병원 진단은 불임이라고 한다. 원인을 모르니 임신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단계별로 모두 하기로 했다.
수개월 동안 기초 체온을 재서 병원에 가져가고, 아이를 낳는 고통 이상으로 생리통으로 아파도 태어날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진통제를 먹지 않으며 견디고 , 나팔관에 공기를 주입했는데 너무 아파서 병원에서 집으로 기어 오다시피 하고 , 유명한 한의원을 찾아가 진맥을 하고, 임신을 위해 한약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하는 복강경 수술을 남겨두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며느리 임신 소식을 물어보는 것이 싫어서 할머니는 계 모임에 가지 않으셨다.
91년 그 시절에는 거리를 다녀도 임신한 사람이 많고 특히 목욕탕에 가면 불룩하게 나온 배를 쭈~~ 욱 내밀면서 허리를 받치고 있는 임산부들이 많았다. 엄마는 부러운 마음에 한참을 보곤 했었다. 1년이 지나도 임신이 안되어 우리는 입양을 하자고 심각하게 얘기를 나눴던 적도 있다.
92년 여름 큰고모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조심스럽게 전해 주었다.
엄마가 시샘이 났는지 갑자기 냄새가 역겹고 속이 불편해서 알아보니 임신이 되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외할머니는 매일매일 엄마가 임신되기를 기도 하셔서 기도응답으로 임신이 되었다고 좋아하셨다. 근무하는 학교 교장선생님은 엄마가 임신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시며 병원 진료로 매번 조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 주시고 꼭 아들을 낳을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물론 온 집안 식구들이 축하를 해 주셨단다.
아들이 태어난 날
출산을 한 달 남겨두고 감기에 걸렸는데 약을 먹을 수 없었다. 만삭이 된 배로 기침을 자주 하게 되니 방광을 압박해서 소변이 나오고 옆구리가 결려서 걷기도 힘들었다. 외가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데, 저녁때쯤 시작한 기침이 자정이 되어도 멈추질 않아 생전 처음으로 응급실을 갔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들이 태어난 그 날, 엄마는 고운 옥색 임부복에 화장을 하고 출근을 했다. 1~2교시 수업이 끝나갈 무렵 무지근하게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자꾸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수업이 없는 3교시 휴게실에서 선배 선생님께 여쭤보니 이슬이 보이느냐?~하늘이 까맣게 보이느냐? 아니라고 하니 아직 멀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게 잘도 참고 있었다
출산 예정일은 1주일 정도 남아 있어 오전 수업이라도 마치고 갈 예정이었다. 4교시 무거운 다리로 3층까지 올라가 수업을 하는데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3번 정도를 한 것 같다. 얼마나 표시가 안 나게 통증을 잘 참았는지, 점심시간에 동료 교사들이 식사를 하자고 했을 때 밥은 못 먹겠다고, 남편에게 통화를 부탁드렸다.
학교에서 집까지 택시로 30분 동안 진통이 시작되고 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병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 아빠가 와서 광주에 있는 병원까지 50분 동안 승용차 안에서 진통을 심하게 했다.
그때 하늘이 까맣게 보이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소변이 금방 나올 것 같아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진료실까지 걸어갔다. 경황이 없어 휠체어나 바뀌 달린 침대를 타고 갈 생각은 전혀 못했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 말씀이 초산 맞나요?
12cm가 열리면 출산을 하는데 이미 9cm 이상이 열려 있어요. 입구에 아이 머리가 보여요!
안 아프세요?
아들이 세상에 조금 일찍 나와서 ,
만약에 학교에서 아이를 출산했으면···
만약에 집에 도착해 혼자 아이를 낳았다면···
만약에 승용차 안에서 아이를 분만했다면···
아들이 시간을 딱 맞춰 태어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들이 엄마 체면을 살려줬어요 ~ㅎ
아들아~고마워!
화장한 얼굴로 분만실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를 낳고 걸어 나오니 분만실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방금 아이 낳으러 들어간 사람 맞느냐고 물어봤다. 33살 초산의 자연분만.
아들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축복이었다!
아들이 태어나 처음 집에 오는 날
할머니는 양쪽 대문을 활짝 열어
우리 집 장손이 들어온다고 환영하셨다!
할머니가 장손을 사랑스럽게 보고 계시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