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바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나는 원래 회사에선 엄청난 짜증쟁이였다. 업무 특성상 하루하루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여러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항상 예민했고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쳤을 때 짜증이 폭발하곤 했다. 그런 내가 요즘 짜증이 줄었다. 이전보다 일이 더 바쁨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를 기록해본다.
1. 일에 익숙해진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이었다.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 익숙지 않은 일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업무를 1년 정도 하고 나니 패턴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갑작스레 문제가 발생해도 덜 당황할 수 있다.
2. 책임을 넘긴다.
의사결정이 어려운 일은 윗사람에게 결정을 넘긴다. 잡일이 필요한 일은 아랫사람에게 넘긴다. 애매하게 내가 책임지고 뭔가 하려 들면 결국은 문제가 생긴다. 신기하게도 걷어내고 나면 진짜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였다. 일을 넘기는 게 책임감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책임감이 없는 건 그 일의 결과가 안 좋은 것 그뿐이다.
내가 아무리 낑낑대고 혼자 책임지려 해 봐야 상사가 모른다면 그 일은 산으로 간다.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것이 어려워서 내가 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국 중요한 일의 퀄리티가 현저히 낮아진다. 결국 일이 잘 되면 같이 잘 되더라. 일을 잘 넘기기 시작하니 짜증도 함께 줄었다.
3. 회사 밖에선 회사 걱정을 하지 않는다.
퇴근 후, 주말에는 최대한 회사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걱정해도 올 월요일은 오고, 문제는 언제나 터진다. 극단적으로 회사는 내가 없어도 어찌 되었든 돌아간다.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 아닌 이상 나의 결정으로 인해 회사가 망하진 않는다.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회사에 제공하고, 나는 월급과 소정의 복지를 받는다. 정해진 시간에는 당연히 나의 역할을 해야겠지만 굳이 회사 밖에서 회사 걱정을 해봐야 내 에너지 손해다.
퇴근 후와 휴일에 나의 가족에 더 집중하고,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회사는 그 시간에 생각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만약 생각이 나더라도 그냥 “나의 일터” 정도다. 오히려 그냥 “월급을 주는 고마운 곳” 정도지.
회사의 일이나, 회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으면서 회사 속에서의 나도 짜증이 줄었다. 회사 걱정을 많이 하면 회사일을 잘하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걱정을 안 하니 더 일이 빠르게 된다. 일을 잘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평가 자체에는 크게 연연해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짜증이 날 땐? 이어폰을 끼고 잠시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짜증은 내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물리쳐야 한다.
오늘도 짜증을 안 낸 회사생활에 뿌듯해하며 퇴근길에 마지막으로 회사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