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과 긍정 사이 그 어디쯤?
나는 대기업 5년 차 직장인이다. 몇 개월 전 ‘5년 차 대기업 직장인의 후회’라는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서 많은 분들이 봐주셨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이고, 워킹맘이면서 온라인 부업도 끄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그 몇 개월 전과 나의 생각과 태도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언제 또 암흑의 시기로 갈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밝은 시기가 오래가길 바라며 이 글을 기록해본다.
나는 직장인이 되는 순간부터 퇴사를 하고 싶었다. 25살 첫 회사에 입사해서 매일 저녁 자소서를 썼고 연차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이유는 단순했다. 대기업에 가고 싶었다. 1년 반 정도의 노력 끝에 결국은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내 마음속에 BEST 회사는 아니었지만, 누구나 알만하고 부모님이 자랑할 정도의 회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원하던 대기업에 입사해놓고 첫날부터 퇴사를 하고 싶었다.
언제든 퇴사를 꿈꾸는 이상한 직장인이다.
그러던 내가 요즘에는 정말 퇴사 욕구를 내려놨다.
‘퇴사’라는 것에 매몰되어 살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항상 나는 ‘도망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취준생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마음에 안 드는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대기업에 가고 싶어서 매일을 따로 살았다. 회사가 너무 싫어서 결혼으로 도망쳤고, 육아로 도망쳤다. 육아가 버거워서 다시 회사로 도망쳤다. 이제는 회사를 진짜로 벗어나고 싶어서 온라인 세상에서 나의 일을 시작했다.
문득 나는 왜 ‘도전’이라는 좋은 말을 놔두고 ‘도망’이라고 생각할까 의문이 들었다.
첫 회사를 다니며 나는 영업을 배웠다.(지금도 전화는 굉장히 잘함) 지금의 회사는 안정적인 월급과 복지를 주고, 나는 자기소개를 할 때 명함 하나로 쉽게 나를 설명할 수 있다. 결혼으로 시작된 나의 남편, 아이 그리고 새로운 가족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나는 그 전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느낀다. 복직을 한 후에는 또다시 경제적 안정을 느낄 수 있었고,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업무를 경험해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싫어서 온라인 세상으로 도망쳐 글을 쓰기 시작한 일은 이제 나의 또 다른 힐링이다.
도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사실 도전이었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내가 있었다.
반강제로 보내는 회사에서의 시간도 사실 배울점이 꽤 많고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다.
그토록 혐오하던 사내 정치조차도, 답답한 업무 프로세스 조차도, 이해가 안 가던 선배들의 꼰대 짓도 다 배울 점이 있었다. (거의 대부분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반면교사로서의 배움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나가 보내는 하루 8시간의 시간을 내 스스로조차도 부정적으로 보낼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짜증 나는 일들은 그냥 쳐내면 되고, 어려운 일은 도움을 구하면 된다. 프로세스가 없는 일은 내 마음대로 프로세스를 만들면 되었다. 이상한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거였고.
회사 속의 시간을 ‘배움의 시간’으로 생각하니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내가 하게 될 사업을 먼저 이렇게 큰 기업으로 일궈낸 회사의 프로세스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것.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본다는 것. 회사는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그냥 나만 변했다.
내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을 쳐내고 나니 커피를 홀짝이며 남 이야기와 카드값 이야기로 신세한탄을 하는 시간이 줄었다. 자연스레 누군가에게 퉁명스러운 말투를 건네는 것도 줄었다. 일에 감정을 쳐내고 해결책을 궁리하는 것에 더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 속에는 체념도 있었고, 실질적인 이유들도 많았다. 어차피 회사는 내가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월급은 준다. 대출을 받을 때도 대기업 직장인이라는 스펙은 참 활용하기 좋다. 등등….
체념과 긍정 사이 그 어디쯤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나는 지금의 회사원 시절이 가장 지낼만하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삶을 갉아먹지 않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