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이야기
바로 수술하셔야 해요.
가볍게 '감기'로 갔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검사를 몇 가지 한 후,
큰 병원으로 가라며 서류를 챙겨주었다.
큰 병원에서도 같은 소견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급했다.
잘 될거라고 되뇌이는 나의 귀 사이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머니, 바로 수술하셔야 해요."
그렇게 병원을 정하고
가장 빠른 날짜로 수술을 잡았다.
인생 최악의 일을 겪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아직 최악은 끝나지 않았었나보다.
사실, 투자를 하면서
강철 마인드를 장착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몸이 힘들어도 정해진 임장을 했고,
왜 이렇게 힘들게 해야하나 싶은
'자기 연민' 따위는 개나 줘버린 상태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강해졌고,
'투자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어지간한 일로는 타격감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잘못되면
(당연하게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수술 동의서는 정말 최악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들을
떠올리도록 생겨먹었다.
수술이 잘못되어 사망하는 경우,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를 포함하여
하반신 마비, 뇌에 생길 수 있는 문제들,
기타 잘잘한(것처럼 느껴지는) 부작용들.
수많은 끔찍한 글자들을 읽어 내려간 후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겠다고 (내가 어떻게..?)
동의 사인을 마쳤다.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로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봐야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수술이 어딘가 잘못될 경우에 대해서.
월급으로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가 생기거나,
직장을 그만 두고 직접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도.
잔인하지만 이런 생각의 흐름도
투자를 하면서 배운 것들이었다.
막연하게 '잘 되겠지'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실체를 직접 생각하고 알아보는 것 말이다.
처음에는 가늠이 안 되던
'수술비'에 대한 생각을 할 때부터,
다른 안 좋은 경우들을 떠올렸을 때,
묘하게 든든함을 주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투자를 배워두었다는 것.
또한 직장에만 목숨걸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배웠다는 것.
그게 참 다행이었다.
나와 가족을 지켜주는 방법이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했지만,
이런식으로 찾아올 지는 몰랐다.
그래도,
아이가 죽지만 않으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장에 출근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 들어가게 되더라도.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활활 타오르게 한다.
안티프래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다행히
아이의 수술은 잘 끝났고,
아주 건강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악의 순간들을 통해
나는 조금 더 성숙한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당신의 삶에 절망이나 고난이
절대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당신을 사정없이 갉아먹는
벌레 역할을 할 것이다.
반면에 재난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겸허하게 일상을 살아가면
삶의 다양한 변화에
걱정하지 않게 된다.
나는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면서 인생을 배웠다,
데이비드 시버
그리고 오늘 하루도
어떤 변화든 유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며 겸허하게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사실은,
이런 '마인드의 변화'가
나에게는 진짜 '인생 역전'이다.
No limits, Boldly go.
글쓰는 투자자 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