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브라운 Jun 07. 2017

상사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팀장의 생존전략 (2) - 사실대로 보고하되 용서를 구해라


Question


상무님께서 A사에 대한 기업실사를 지시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A사에 관심이 많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기업실사 결과 저희 회사와는 시너지가 낮고 오히려 합병에 따른 리스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하죠? 그대로 보고드리나요?




Answer


아, 이것 참 어려운 상황이네요. 지시하신 분이 기대하는 바와 다른 결과가 나온 경우인데요.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이러한 경우에 선택 가능한 옵션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 그중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51% 정답이냐? 이 세상에 100%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100% 정답이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또 오늘의 정답이 10년 후에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51%만 정답이기 때문에 여러분께서도 제 주장을 100%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0. 사전에 외부 컨설팅 회사에 의뢰함


상사의 기대와 많이 다를 것 같거나 타부서로부터 극심한 반발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외부 컨설팅사에 의뢰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조직 개편 등과 같이 정치적이고 민감한 이슈가 여기에 해당되죠. 하지만 외부 컨설팅은 비용도 만만치 않고 프로세스도 오래 걸려서 대안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보고하지 않음


경험담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A그룹 내에는 서로 경쟁하는 두 개의 유통회사가 있습니다. 하나는 회장님께서 직접 설립하신 회사이고, 다른 하나는 이후 외부에서 인수한 회사입니다. 편의상 전자를 '박힌 돌'의 약자인 B사, 후자를 '굴러온 돌'의 약자인 G사라고 하죠.


수년 전 A그룹 회장님의 지시로 B사와 G사간 '교통정리'를 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회장님 입장에서는 그룹 내 두 개의 회사가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건 왠지 비효율이라고 판단하셨던 겁니다. 성장 산업에서는 계열사간 경쟁을 시켜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게 맞지만, 성장이 둔화된 산업에서는 하나의 회사에 힘을 몰아주는 게 더 좋은 전략입니다.


문제는 한 달여간에 걸친 퀵 리서치 결과 G사(굴러온 돌) 중심으로 B사(박힌 돌)를 합병시키는 게 더 좋다는 가설이 도출되었다는 거죠. 외부에서 인수한 회사 중심으로 회장님께서 직접 설립하신 회사를 합병시킨다? 왠지 회장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면 매우 언짢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노여워하실 수도 있죠.


이를 사장님께 보고 드리니까 사장님은 바로 콜 하셨습니다. "보고하지 말자. 이거 보고하면 우리 찍힌다." 


결국 회장님께 보고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회장님께서 더 관심을 가지실만한 다른 보고 거리를 들고 갔죠. 용케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제우스의 한 수' 였죠.


상사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이처럼 아예 보고를 드리지 않는 게 가장 세이프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통하지는 않겠죠. 와이프가 "나 살찐 것 같애?"라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피한다면? 화제를 돌리려고 "이거 먹어봐. 맛있어"하면 오히려 더 혼날 수 있겠죠.



2. 결과를 상사가 원하는 바에 철저하게 맞춤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죠. 간단합니다.


(1) 지시받는다.

(2) 지시한 분이 원하는 답이 무엇이지 생각해본다. (그분의 지난 말씀을 되새겨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3) 그분이 원하는 답에 분석 결과를 철저하게 맞춘다.


논리적인 분석이든 숫자 모델링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냥 상사가 원하는 답을 생각하고 분석 결과를 여기에 맞추면 됩니다. 장단점이 있으면 장점은 강하게, 단점은 약하게 어필합니다. 수치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가설을 세웁니다. 가령 사업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려면 미래 성장률을 높게 잡거나 할인율을 낮게 잡거나 하는 방법을 쓰면 되죠. 이를 속된 말로 '데이터 마사지'. 조금 유식한 말로 '데이터 엔지니어링'이라고 하죠. 


'숫자 신봉자들' 많으시죠? "그래서 NPV(Net Present Value)가 도대체 얼마야?"라고 질문하시는 분들이요. 이러한 분들은 NPV가 높으면 '고(Go)'고 낮으면 '스돕(Stop)'하는 지극히 단순한 원칙 하에 판단을 하십니다. 그래서 맨날 숫자 모델링을 지시하시죠.


저는 솔직히 숫자 잘 안 믿습니다. NPV요? 그거 맘만 먹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아니, '데이터 엔지니어링' 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논리적인 분석을 믿는 게 낫죠. 그건 논리적으로 따질 수라도 있죠. 하지만 숫자 모델링은 가설을 일일이 까 보기 전에는 그 결과물의 실체를 알 수 없죠.


숫자 모델링은 맘만 먹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상사가 원하는 답에 분석 결과를 맞추면  상사로부터 이쁨 받겠죠. "오부장은 내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담아온단 말이야"라는 칭찬도 듣구요. 상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이쁘겠어요? 자기 생각이랑 꼭 같은 결과물이 나왔는데. "음, 역시 내 판단이 맞는군"하면서 만족해하시겠죠.


한편 회사는? 집단지성이 발휘되지 않고 상사의 독단적 판단에 의해 모든 결정이 이뤄질 경우, 상사가 스티브 잡스가 아닌 이상 아무래도 잘 될 확률보다는 잘못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요?


실제로 재무적으로 매우 튼튼했던 회사가 최고경영자의 과욕에 의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한 순간에 망가진 경우는 여럿 있습니다. 집단지성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겠죠.



3. 결과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함


또 다른 사례 하나 말씀드리죠. D그룹에 근무할 당시 계열사 중의 하나인 K사(계열사의 약자)의 재무건전성을 분석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앞서 다른 부서 전무님께서는 K사의 재무건전성에 대해서 분석을 하신 뒤 "K사가 3개월 이내에 부도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매각해야 한다"라고 회장님께 보고를 드린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팀장님으로부터 전무님의 결론이 맞는지를 한번 점검해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분석해보니 'K사가 재무적으로 리스크는 있지만 부도날 위험은 적고 따라서 매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를 결론이 나왔습니다. 저는 이 결과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팀장님께 보고 드렸구요.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저희 팀장님께서 제 분석 결과를 회장님께 보고 드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타부서 전무님께서 '부도나니까 매각하자'라고 보고 드렸기 때문에 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를 보고 드리는 것이 저희 팀장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우셨던 거죠.


그런데 거기서 끝났으면 상관이 없는데 팀장님께서는 제게 "너의 분석과 전무님의 분석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서 분석하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며칠 간의 야근 끝에 두 분석의 차이점과 전무님 분석상의 문제점에 대해서 보고 드리자 이번에는 "너의 분석에도 결점이 있으면 곤란하다"며 "네 분석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또 며칠 간의 야근 끝에 이에 대해 보고 드리자, 이번에는 "분석을 하는 동안 분기가 바뀌었다"며 "최근 분기 수치로 업데이트하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네버 엔딩 스토리'가 된 거죠. 아마 팀장님께서는 보고가 부담스러우셔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저는 전무님 팀의 '공공의 적'이 됐습니다. 일개 팀원에 불과한 제가 전무님 분석 결과에 대해서 의문점을 제기하는 게 보수적인 대기업 문화에서는 좋게 보일 리 만무했죠. 결국 저는 일은 일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체력도 떨어지고, 회사에 정도 떨어지고. 맘고생 정말 많이 했습니다.

 

가끔 영화에도 이런 경우 나오지 않나요? 질문해서 사실대로 답했더니 "넌 실수했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라면서 죽이는 경우 종종 본 적 있지 않나요? 이처럼 사실 그대로 보고하면 저처럼 억울한 희생양이 될 수 있습니다.


LA 컨피덴셜에서 케빈 스페이시는 사실대로 얘기했다가 죽임을 당한다. [사진 출처: 영화 'LA Confidential']



4. 있는 그대로 보고하되 용서를 구함


사례를 하나 더 말씀드리죠. 약간 복잡한 상황인데요. 사장님이 회장님에게 B사를 인수하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회장님은 사장님에게 다른 임원의 '세컨드 오피니언'(second opinion)을 구하라고 지시하셨구요. 그래서 사장님은 가장 믿을 만한 심복인 전무님을 회장님께 추천드렸습니다. 회장님은 전무님에게 B사의 인수건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하셨고, 전무님은 가장 '에이스'인 팀장에게 이 임무를 맡겼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 사장님이 B사 인수 제안 (2) 회장님이 사장님에게 "다른 의견 구해봐라" (3) 사장님이 회장님에게 전무님 추천 (4) 회장님이 전무님에게 검토 지시 (5) 전무님이 팀장에게 검토 지시


그런데 에이스 팀장의 검토 결과 B사는 인수 대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무님께서는 이 결과를 받고 고민을 많이 하셨겠죠. B사 인수에 대해서 부정적 의견을 내놓을 경우 사장님 뜻을 거스르는 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긍정적 의견을 내놓을 경우 회장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게 될 것이고. 아마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전무님께서는 먼저 회장님을 찾아가 팀의 분석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드렸습니다. B사는 인수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다구요. 그 보고가 끝나자마자 바로 사장님을 찾아뵙고 회장님 보고 결과를 말씀드린 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마 전무님은 사장님께 한 말씀 들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회장님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었고 사장님의 섭섭함도 풀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결론


이상으로 상사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 선택 가능한 몇 가지 옵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0. 사전에 외부 컨설팅 회사에 의뢰함

1.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보고하지 않음

2. 결과를 상사가 원하는 바에 철저하게 맞춤

3. 결과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함

4. 있는 그대로 보고하되 용서를 구함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상사의 기대와 많이 다른 결과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0. 사전에 외부 컨설팅사에 의뢰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외부 컨설팅에 의뢰하는 게 불가능할 경우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1.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보고하지 않는 것도 세이프한 방법입니다만, '그럴듯한' 핑계를 찾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만약 이것도 쉽지 않다면?


2. 결과를 상사가 원하는 바에 철저하게 맞추는 방법이나 3. 결과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방법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2번의 경우 심하게 표현하면 허위보고이고, 3번의 경우는 보고자가 회사를 위해 '살신성인' 당할 수 있죠. 둘 다 현명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4. 있는 그대로 보고하되 용서를 구하는 방법만 남게 되네요.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보고자와 상사간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할 만큼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보고자가 상사를 뒤통수치고 그 사실을 고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겠죠.


있는 그대로 보고하되 용서를 구하려면
보고자와 상사간 신뢰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어쨌든 간단치 않은 문제임은 분명하네요. 각 상황에 맞게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상사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 보고는 FM대로 하되 바로 용서를 구하는 게 좋습니다. 단, 보고자와 상사간 신뢰가 형성돼 있어야죠. [사진 출처: tvN 드라마 '미생']


저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몇 가지 원칙은 꼭 지켜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거짓말하지 말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뒤통수치지 말자'입니다. 그 외에도 몇 개 더 있지만 이번 상황과 관련된 제 직장 신조는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이 두 원칙을 100% 지키지는 못했지만, 이를 지키려고 100% 노력해온 것은 분명합니다.


...


그런데 저는 이 원칙을 지키려고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남들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제가 여러 번 당했습니다.


...


거짓말로 속아도 봤고, 뒤통수도 여러 번 맞았습니다.


다 같이 지켜야 하는데... 나 혼자 지키면 소용없는데...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상사의 기대와 많이 다른 결과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사전에 외부 컨설팅사에 의뢰하는 게 좋다. 이것이 어려우면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보고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둘 다 어려우면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고하되 용서를 구해라. 결과를 상사가 원하는 바에 철저하게 맞추거나, 아무런 대책 없이 가감 없이 그대로 보고하는 것은 비추.

3. 하지만 이 모든 게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각 상황에 맞게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서 현명하게 대처해라.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팀장의 생존전략 시리즈

(1) 카리스마가 부족해도 괜찮다... 오히려 좋을 때도 많다

(2) 상사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사실대로 보고하되 용서를 구해라

(3) 직원들간 경쟁과 갈등을 조장하는 회사 - 경쟁 승리와 갈등 극복의 핵심은 '사내 정치'

매거진의 이전글 항상 불만스러운 '완벽주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