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는다고 다 기억되진 않아요

일기

by 벨리따

바쁘게 살아갑니다. 많은 역할을 해내면서요. 목표를 알고 나아가고 있는 사람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내고 있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보낸 하루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하루를 돌아본다는 말은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이 사건으로 무엇을 배웠으며, 내 감정은 어떠했는지 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필요한 이유는, 이 과정으로 나를 좀 더 알 수 있거든요. 내가 했던 행동, 생각, 감정을 알아갈 수 있어요.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단편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어요. 나를 좀 더 알아가는 방법으로 일기 쓰기가 있습니다. 나에게 좀 더 집중하려면 제대로 쓰는 게 좋겠습니다. 일기는 쓰는 날로 끝나는 게 아니라 훗날 보면서 성장 과정을, 그때의 내 생각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는 게 좋을까요? 1년 뒤에 보더라도 기억이 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했던 세 가지 방법을 나눠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자세히 적기’입니다. 초등학교 때 배운 육하원칙이면 충분합니다. 육하원칙이지만 여기에 살만 좀 더 붙이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요 언제를 적을 때는 단순히 날짜, 시간만 적지 않습니다. 모든 일기에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때와 같이 어떤 일이 있을 때는 그날, 그 시간에 하게 된 이유까지도 적어요. 그러면 일기를 적는 날 이전의 상황까지도 떠오르더라고요. 어디서를 적을 때는 장소명만 적기보다는 그곳의 분위기, 갔을 때의 느낌, 기억나는 사람, 먹었던 음식, 읽었던 책 등을 적습니다. 무엇에 해당하는 내용을 적을 때는 느낌, 생각, 보고 배운 점 등을 함께 남겨둡니다. 누구에 대해 적을 때는 그날 그 사람의 특징을 적어줘요. 옷, 표정, 기억에 남는 말과 같은 것이요. 육하원칙이라고 해서 단순히 날짜, 장소, 있었던 일, 사람 이름 이런 것만 적으면 다음에 내용을 살펴봐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날 있었던 일도 기억나지 않을뿐더러,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파악하기가 어려워요. 자세하게 적어두면, 시간이 지나서 보더라도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쓴 일기 중 일부입니다.

시환이와 나와 같이 잤다. 내가 오늘은 일찍 자겠다고 하니 안방에 누워있던 시환이가 옷방으로 넘어왔다. 안방에는 침대가 두 개 있다. 라지 킹 침대 하나, 싱글 킹 침대 하나. 여기에 네 명이, 10살과 8살 아이들 둘까지 해서 같이 자려니 남편 불만이 생긴다. 나는 벽 옆에 있어서 괜찮은데, 또 나는 라지 킹사이즈에서 자니까 괜찮은데 남편은 싱글 킹에서 딸과 같이 잔다. 몸부림치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남편은 불만을 얘기하고, 나는 새벽에 편하게 알람을 듣기 위해서 내가 안방에서 빠져나왔다. 옷방에 매트 하나 깔고 자고 있다. 2인용 매트라서 혼자 자기에 충분하다. 오늘 밤은 시환이와 같이 잔다.


평소에는 혼자 따로 자는데 아이와 같이 잤다는 내용입니다. 이다음 내용에 아이와 함께 나눈 대화가 있어요. 나눈 대화에서 제 생각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만 적으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이유로 대화 나누기 전에 아이가 같이 자게 된 이유, 혼자 자기 전에 가족이 한 방에서 자면서 불편했던 이야기, 자는 방의 모습을 적었어요. 훗날 보더라도 이때 상황이 장면처럼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육하원칙에 살을 조금만 더 붙여서 쓰는 연습을 합니다. 나중에 읽어보면 달라지는 게 있어요. 일기 쓸 때 깨달은 점과 읽는 시점에 느낀 점이 달라지거든요. 이것도 배움이고 성장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감정 빼고 있었던 일 적기’입니다. 자세히 적는데, 내 감정 위주로 적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기억하지 못해요. 자세히 적되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등을 적어야 합니다. 제가 쓴 일기를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보장이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정리하다가 남편의 옛 애인과 나눴던 편지나 남편이 숨겨 놓은 비상금을 발견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적지 않아요. 누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읽었을 때 생각이 날 정도로만 적습니다. 쓸 당시에는 기억날 거라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쓴 제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17년도에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남편도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과연 이 사람과 계속 살아야 하나'를요. 제가 이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요, 복수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려면 오늘 이 일을, 감정을 기억하고 싶었죠.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쓰지는 않았고요,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결국 난 이 인간을 넘어설 거야!’라는 마음이 드는 날에 적었습니다. 혹시나 볼까 싶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적지 않았습니다. 저희 둘만의 문제보다는 아이들을 포함해 둘 이외의 사람들이 늘 중간에 껴 있었습니다. 그 다툼은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되었고요. 타인이 있으니 더 두리뭉실하게 썼습니다. 감정을 적었어요. 그때는 이렇게만 적어도 기억난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래서 짜증 난다는 내용과 다짐이 글의 대부분이었습니다. 21년도에 일기를 펼쳤습니다. 이때 있었던 일을 적고 싶어서요. 제가 적었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글쓰기를 배우면서 쓰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는 최대한 자제하려고 합니다. 기쁘다 대신에 서로 눈이 마주치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두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고 씁니다. 이 글을 읽으면 제가 좋은 일, 기쁜 일이 있었네 하며 생각도 나고 입꼬리도 올라가더라고요. 감정은 느끼지 못 하지만 있었던 일을 적으면 기억이 났습니다.

감정 단어를 적지 말고 그 행동과 표정을 남기는 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적으려고 하면 일기 쓰는 걸 힘들어할 수도 있어요. 이런 이유로 행복하다, 슬프다고 적더라도 있었던 일과 이유를 상세하게 적어주면 좋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육하원칙에 따라서요.


셋째, '하나만 쓰기'입니다. 일기 쓰기를 습관으로 할 때에는 하나만 적는 걸 추천합니다. 위에서 자세하게 적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있었던 일 모두를 이렇게 적으면 손도 아프고 글이 길어집니다. 이 방법으로는 일기 쓰기를 내 루틴으로 만드는 게 어렵습니다. 기억에 남는 한 가지, 오늘 중요하게 있었던 일, 반대로 지극히 평범하게 보낸 하루처럼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쓰는 겁니다. 있었던 일을 적는 건 그나마 쉽습니다. 내가 겪은 일이니까요. 반면, 그 사건에 대한 내 생각이나 느낌을 적는 건 바로 툭 튀어나오지 않아요. 생각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하나에서 두 개로, 하나씩 더 늘려가도 좋습니다.

바둑에서는 복기까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승부가 났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다시 처음부터 놓으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요. 우리 인생도 이 시간,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때까지 살아온 일을, 큰 사건을 다시 되돌아보기보다는 오늘 보낸 하루에 더 집중하면서요. 왜냐하면 우리는 큰 사건보다는 자잘한 일들이 더 많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어요. 오늘 하루를 보더라도 배울 점이 있고, 의미 있는 날입니다. 오늘이라는 점이 모여야 인생이라는 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 삐뚤삐뚤해도 상관없지만요 좀 더 올바르게, 더 나은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으로 일기를 썼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서 세 가지 노력하면서 쓰면 좋겠습니다. 대충 적지 말고 자세히 적기, 감정 단어를 적기보다는 있었던 일을 쓰기, 초반에는 한 가지 일에 대해서 파고들어 가며 쓰기입니다.

오늘 하루를 붙잡지 않는 사람은 내일도 흘려보내고, 타인의 말에 중심을 잡게 되고,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루를 쌓아가고, 나를 알아가고, 행복을 알아갑니다. 이 글이, 여러분의 오늘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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