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 방법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를 읽고

by Lightme

발달 트라우마란 어릴 적 적절한 정서적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생기는 트라우마를 뜻한다. 나는 발달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엄마의 감정이 현재 우리의 정서에 영향을 줄 정도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예전의 경험도 발달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두 명의 언니와 나는 10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난다. 부모님은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었기 때문에 나를 지우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태어난 후에는 사소한 것에도 남동생과 차별받으며, 언니들과 비교당하며 자랐다. 우리 가족은 나만 없으면 행복할 것 같았고,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느껴졌다. 또 엄마는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의 정서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를 비웃고 놀리고 본인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대했다.



20대 초반부터 내가 정서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고, 작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으며 내면을 다지는 공부를 시작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고민을 하고, 그런 감정과 고민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본인을 깨우친다고 해서 걱정과 불안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더불어, 나에게 적합한 책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나처럼 성장 과정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책을 추천한다. 발달 트라우마가 현재 본인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살필 수 있다.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내 생각 회로는 많이 달라져서 이전과 비슷한 일을 겪어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다. 물론 안정적인 방향으로. 하지만 행동은 쉽게 고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성은 순간적인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래된 뇌(어릴 때의 경험을 기억하는 뇌)가 통제하기 때문에,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 행동도 의지와는 다르게 반복한다고 얘기한다. 어린 뇌(최근 경험을 기억하는 뇌)가 행동을 통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관찰자로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흔히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것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동일한 사건도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계속 신경을 쓰고 있지만 지키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정리하며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1. 할 말은 하기

계속 되뇌지만 가장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둔감하지 못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쉽게 잊지 못하는데, 당시에 직접 말을 했으면 아직도 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어떤 커플이 내 옆에 서 있었고, 내 앞에 자리가 났는데 남자가 나를 밀치고 본인 여자친구를 앉혔다. 그리고 또 내 앞에 자리가 났는데 그 남자가 또 나를 밀치고 본인이 앉았다. 그때는 어안이 벙벙해서 복수랍시고 실수인 척 남자 발을 밟고 계속 째려봤는데, 그냥 당당하게 말을 하는 게 훨씬 속이 시원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사건이 계속 생각나는 것으로 봐서, 고민하느라 타이밍을 놓쳤더라도 그때 말을 해야 했다.

한번은 회사 점심시간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갔는데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우리를 파고들어 새치기한 적이 있다. 그때는 뒤에서 다 들리게 “저 사람들 뭐야 우리가 먼저 왔는데”라고 말했는데, 이런 행동을 제일 지양해야 한다. 그 사람들에게 직접 말했으면 죄송합니다 하고 비켜줬을 텐데,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치사한 대처였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우리 엄마는 가족들이 집에 있는데 거실에서 친구, 친척들과 통화하며 큰 소리로 우리 험담을 했다. 나에게 직접 얘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었고,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통화가 끝나면 화를 냈지만, 엄마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뒤에서 큰 소리로 말한 것은 과거 엄마의 행동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



2.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시간 갖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성이 행동을 제어하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나는 작은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화를 낸 다음 자책하며 괴로운 적이 많았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간이 꼭 필요하다. 남들은 화낼 만했다고 나를 이해해주는데도, 정작 나 자신은 고통받는다. 죄책감은 발달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많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때에도 부모님이 괜히 나를 낳아서 노년에 쉬지도 못하고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는 죄책감에 울다 잠든 적이 많았다.

상황을 멀리서 바라보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행동한다면 죄책감에 힘겨운 날들이 줄어들 것이다.



3. 남에게도 관대한 마음 갖기

나는 나에게는 관대하지만, 남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어렸을 때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경계해야 했기 때문에, 지금도 쉽게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예민하다. 내 안전구역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누가 조금이라도 침범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난다. 고속버스에서 옆자리 남자와 계속 팔이 닿을 때, 카페 옆자리 사람이 계속 다리를 흔들 때, 집중하고 있는데 계속 말을 걸 때 등 사소한 것에도 쉽게 교감 신경이 활성화된다. 민감한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겠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는 심호흡을 깊게 해서 심장 박동을 느리게 하고 그럴 수도 있다는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보고,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면 직접 말하거나 자리를 피해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다.



어떤 것을 뇌에 새기면 뇌의 신경들 사이에 단단하고 견고한 신경 연결망이 새로 형성된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방식을 갑자기 바꾸기는 어렵다. 마음을 굳게 가다듬었지만, 쉽게 바로 잡지 못해서 자기 전에 스스로 질책도 많이 한다. 그날그날 다짐을 지킨 상황, 못 지킨 상황을 기록하고 의식적으로 개선해보고자 한다. 조금씩 바꿔가며 습관을 들여서 새로운 신경 연결망이 활성화되기를. 일주일 전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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