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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ghtme Aug 15. 2022

어쨋거나 서울

서울 살이 여정과 질려서 떠난 서울에 다시 올라오게 된 이야기

 어릴적 서울은 선망의 도시였다. 언니들이 명동에 다녀왔다고 하면 서울은 어떤 모습인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고등학생 때는 구원처로 생각했다. 엄마의 간섭과 차별에 지치면 혼자 방으로 들어가 대학교에 입학하면 서울에 올라갈 수 있고, 혼자서 알차게 살 수 있다며 나를 위안하고 그 날만을 기다렸다.

 처음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시작할 때에는 서울에서 산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조금만 걸으면 한강에 갈 수 있고, 자전거를 타면 여의도 한강공원까지 금방이었고, 친구들도 많았다. 취업 준비를 본가에서 하고, 취직 후 첫 3개월은 인천에서 통근을 하다가 다시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직장과 집이 가까워져서 삶의 질이 올라가서 행복했다. 당시 살던 동네에 볼거리가 많아서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매일 돌아다녔고, 동네에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재밌었다. 그렇게 5년을 내리 서울에서 살았다.


 그런 내가 서울살이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365일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게 무척이나 답답했다. 그리고 좁은 골목들 사이에 위치한 보석같은 가게를 찾는 게 삶의 낙이었는데, 업무 시간 중 밖에서 빠르게 볼 일을 보고 와야하는 상황에 좁은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나타나고, 사람이 많아서 지나다니지 못하는 순간마다 짜증이 솟구쳤다. 정말 좋아하던 동네였는데, 매일 하루종일 그 동네에 있으려니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러던 와중에 살고 있던 집에서 이사를 가야할 사정이 생겼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요양을 위해 언니가 있는 영종도로 떠났다.

 내가 살던 영종도의 바닷가 근처 도시는 강남까지는 두시간, 홍대까지도 한시간 반이 걸리며 버스 배차 간격이 20분은 기본이었다. 그럼에도 영종도로 간 건, 바다가 보이는 분리형 신축 오피스텔의 월세가 40만원 밖에 하지 않았던 것도 영향을 주었으며, 당시 나는 도시 살이에 너무 지쳐있었고, 친구를 자주 만나거나 술자리를 빈번하게 갖지도 않아서 서울에 갈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 확고해서, 내 결정을 번복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영종도에 사는 동안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만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의 탁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스트레칭을 하고, 점심 식사 후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고, 저녁에는 바다가 보이는 펍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랑하는 조카가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이었다. 10개월 간 정말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평온한 날들만 있을줄 알았는데, 뜻밖의 고충이 생겼다. 부모님이 조카를 보러 자주 언니네 방문했는데, 언니네 올 때마다 나도 함께 보기를 원해서 내가 생각한 부모님과의 적정 거리보다 더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독립했지만 완전히 독립한 건 아닌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언니가 일을 시작하며 조카를 어린이 집에 맡기게 되었는데, 언니의 일이 늦게 끝나거나 조카가 아플 때 같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언니는 나를 제일 먼저 찾았다. 형부는 서울에서 일을 하고 수직적인 제조업 회사에 다녀서 일찍 또는 갑자기 퇴근해서 조카를 봐달라고 하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집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조카 하원이나 병원을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 조카를 너무 사랑하지만 근무 중에 나갔다오는 것도 눈치보이고, 그렇게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그만큼 야근을 해야하는 것에도 압박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내가 공동 양육자가 된 기분이었고 언니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가장 먼저 찾는다는 것이 부담되었다. 영종도는 정말 좋은 도시지만, 독립적인 내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으려면 다시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집을 계약을 할 때까지만 해도 서울 생활이 기대됐지만, 막상 이사를 하고 나니 나는 무엇을 위해 한 달에 83만원이라는 돈을 내면서까지 서울에 있어야하는지 허탈하기도 하고, 조카가 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점에 슬프기도 하다. 이전에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남자친구와 더 자주보는 것을 기대하며 올라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게 되며 외로운 감정을 느꼈던 게 떠올라서, 이번에도 줄줄이 잡아놓은 약속이 언젠가는 끊겨서 또 무료함을 느끼지 않을지 걱정도 된다. 그래도 난 어쨋거나 그렇게 질렸던 서울에 다시 왔다. 서울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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