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독서가 혼자가 되기까지, 부모의 거리 연습

같이 읽던 시간을 내려놓았다.

by 벨라콩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 옆에서 어떤 모습으로 책을 읽어야 할까

아이의 독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두 가지 극단을 떠올린다.

하나는 끝까지 함께 읽어줘야 한다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는 혼자 읽게 두어야 한다는 조급 함이다.

하지만 실제 독서의 현장은
이 둘의 중간 어딘가에 더 가깝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독서 경험은
늘 ‘같이’와 ‘혼자’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같이 읽기는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때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은
이 시간을 ‘지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유아기에는

독후활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육아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를 보다 보면
책을 읽고 나서
무언가를 꼭 해야 할 것만 같아진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더 애쓰고, 더 준비하면
아이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거라 믿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모든 활동에
늘 흥미를 느끼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가 커갈수록
계속되는 질문과 설명은
내 의도와 다르게
아이에게 책을 ‘긴장해야 하는 시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주인공은 왜 그랬을까?”
“이 책 읽고 이거 해볼까?”

물론 질문이 나쁜 건 아니다.
독후활동이 필요 없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질문이 많아질수록
아이의 호흡은 점점 짧아진다.


내려놓지 못했던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책육아 방식은
아이의 나이가 변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무언가를 해야만
책 읽기가 완성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첫째가 조용히 말하듯 이야기했다.

"엄마, 이거 나 이제 혼자 봐볼게."


그렇게 아이는
그 책을 혼자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한 권을 말 그대로 ‘파고들듯’ 읽었다.

세세한 그림을 보고,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고,
충분히 자기만의 속도로 머문 뒤에야
그 책을 내려놓았다.


놀라웠던 건
2년, 3년이 지나도
책 표지만 보면
“그거잖아!” 하고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떠올린다는 사실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기억에 남는 건
내가 덧붙였던 설명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머물렀던 시간이었구나.


어른도 같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어른도 다르지 않다.
책을 읽고 나서
매번 감상문을 써야 한다면,
내 생각을 계속 설명해야 한다면
독서는 즐거움이 아니라 과제가 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나서
매번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일부러 시간을 남겨두었다.


같이 읽었다가,
혼자 읽게 두고,
다시 옆에 앉아 함께 읽는 시간을 반복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아이에게 한 권의 책은
‘엄마의 책’이 아니라
‘내 책’이 되어갔다.


같이 읽기에서 혼자 읽기로 넘어가는 순간

부모가 한 발 물러서도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분명하다.

아이가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 때,
질문보다 다시 보려는 행동이 많아질 때,
“나 혼자 볼게”라는 말이 나올 때.

그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아이에게 같이 읽기란

아이에게 같이 읽기란
설명받는 시간이 아니다.

평가받는 시간도 아니다.


부모가 옆에 있지만
속도를 재촉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시간.


그저
안전하다고 느끼는 시간이다.

그렇게 아이는 책 보다 먼저
‘이 시간’을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쌓이면
아이는 스스로
책 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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