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책육아를 내려놓기까지

나는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by 벨라콩

나는 내가 잘하고 있던 줄 알았다.
정말로, 책육아에 가장 열성적이던 시기가 몇 년 있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책육아 콘텐츠를 만들고
공동구매를 진행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잘해야 했다.


팔로워들에게
‘잘된 책육아’,
‘따라 하면 되는 책육아’를
보여줘야 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잘 따라와 주었다.


인터넷에 나오는 정직한 책육아,
육아 서적에 등장하는 정답 같은 방법들,
주제별 확장 독서와
놀이로 이어지는 독서 활동들.

그 모든 과정이
그때의 나에게는

참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개구리’라는 주제가 주어지면
겨울잠, 봄, 양서류, 생태까지 엮어
세 돌 아이에게
나름의 확장 독서를 해주었다.


주변 지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매번 커리큘럼을 짜서
아이에게 제공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모든 걸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섯, 여섯 살이 되자
뚜렷한 취향이 생겼다.

“이건 별로야.”
“이건 더 알고 싶어.”
“이것만 궁금해.”


내가 공들여 엮어 놓은 주제보다
아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지점에 오래 머물렀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 무렵
친정아버지의 죽음이 겹쳤다.
그리고 아주 불편한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나는 혹시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
책육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몇 달을 곱씹었다.
아니, 몇 개월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을
그 질문과 함께 지냈다.


그리고 결국
인정하게 되었다.

각 아이에게 맞는 독서 방법은
따로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팔 수 있는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쌓아 올린 모든 수익화를 포기한 채
공동구매를 그만두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던 자리에서
조용히 내려왔다.


아이의 독서는
정답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의 선택을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덜 보여주고,
더 지켜본다.


아이의 관심이
예상과 다를 때에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확장 독서 역시
가르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아이의 호기심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일이 되었다.


확장 독서는
아이를 앞서 끌고 가는 게 아니다.
아이 옆에서 조금 넓은 길을
조용히 열어두는 일이다.


나는 한때
정답처럼 보이는 책육아를
정말 열심히 했다.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육아 서적과 정직한 책육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아이와 나는 행복했고,
아이는 지금도
그때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시간들을
책만 보면 기억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기에
이 글을 쓴다.


아이의 독서는
부모가 얼마나 준비했느냐보다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
더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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