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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r 04. 2022

준비? 다 잘하게 되어있어!

노산, 초산 임신과 출산이야기


!! 알려드립니다 !!


 첫 글을 발행했을 때 계획한대로라면, 이 글은 다음 주 월요일에 올라오는 것이 맞지만... 그리고 아직 임신기를 적어내고 있으니 스포일러가 될까싶어 서운합니다만... 돌아오는 일요일은 아가의 출산 예정일입니다. 어제 검진때만 해도 아기 크기도 제 건강에도 크게 문제가 없으니 자연 진통이 오기를 기다려보자고 했습니다만, 오늘 오전 미드와이프가 예정일에 유도분만을 시행하기로 했다며 전화로 알려왔습니다. 유도분만을 하게 되면 최소 입원기간이 4~5일은 될 것 같아 다음편을 미리 업로드합니다. 

 이 이후는, 어차피 호주 퀸즐랜드의 작은 도시에는 산후조리원도 없어서 퇴원 후 집으로 올 예정이고, 가지고 있는 몇 편의 세이브가 있으니 출산 후에 육아를 하며 계획대로 매주 업로드되는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산도 육아도 이번생에는 처음이라 확언하기 어려운 점 이해부탁드리면서... 유도분만이 제왕절개로 넘어가지 않도록 한 번씩만 빌어주세요. 제발.


 건강하게 출산하고 올게요. (--)(__)--꾸벅, 요즘 사람들은 알려나?





 마음을 편하게 갖고 기다려보자. 

'세상에!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게 다들 마음대로 되는 모양이지??'



 먼저 호주의 출산 시스템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보통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이 의심되는 경우, GP--General practitioner, 일반의.--를 만나 피검사를 위한 레퍼럴을 받게 된다. 이 레퍼럴은 임신 시 16주경 정도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HGH(인간성장호르몬) 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요청하는 것이 목적이며, 별도의 기관에서 행한다. 수일 후 다시 GP를 만나 피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확인되면, 각 주수에 맞는 검사들을 시행하게 된다. 이 검사들도 매번 GP의 레퍼럴을 받아 영상의학전문센터나 임상병리센터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는 다시 GP에게 돌아가 자세히 듣는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이후 20주 전후로 일반의는 환자의 의사를 반영하여 출산병원으로 전원을 시킨다. 이후부터는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출산병원의 전문의가 진단하며, 출산에 이르기까지 관리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위의 과정을 글로 배웠다. 7월 9일 격리 호텔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2주간 답답했던 사지와 마음을 풀기위해 브리즈번 시티 여기저기를 돌아다닌게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시드니에서 너무 무리를 했던 건 아닐까? 우리 상황에 출산을 결정한 것이 사실은 스트레스였던 걸까? MACKAY로 돌아온 다음 날 GP를 보려고 예약을 했지만, 아침부터 하혈이 시작되어 응급실로 향했다.


 호주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의 응급실은--사고등으로 피를 철철 흘리며 들어온게 아니라면-- 접수를 하고 분류 간호사(Triyage Nurse)의 응급여부 판단하에 '응급'한 순서대로 검사 및 진료를 받는다. 나와 남편은 조금 조급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판단으로는 응급이 아니었던 탓에 두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수간호사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검사가 끝난 뒤 수간호사는 불안해하고 있는 나에게 다정한 말투로 '감염이나 이상 소견은 없다. 착상된 아기집이 보이고 난황이 확인되었다. 임신초기의 출혈은 흔한 증상이다. 혹시 문제가 있어서 잘못되더라도 이시기의 유산은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마음을 편히 가져라.'라고 했다. 최대한 마음을 편히 가져보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른바 망나니 비슷하게 보냈던 내 이십대가 스쳐지나갔다. 격리 호텔에서 마지막으로 마신 소주가 떠올랐다. 역시 안주는 보쌈이라며 좋아했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술도 담배도 더 빨리 끊고 건강하게 살았을텐데. 나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내 과거를 발목잡아 비난하는 꼴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지켜봐야했다. 이때가 임신 6주정도 지났을 때였다.


 이후로도 8주차, 9주차, 출혈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했고, 응급실을 몇 번 들락거리고 몇 번의 초음파를 더 봤지만 의사나 간호사나 매번 같은 말이 돌아왔다.

 [태아 상태는 나쁜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혹시라도 잘 못 된다면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음을 편히 가져라.]

 마음은 쉽게 편해지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일을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만에 하나 발생할 수도 있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자신이, 그런 이유로 나 자신을 저주하지 않을 자신이 전혀 없었다. 최대한 차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그림을 그리고, 뜨개질을 했다.

 더 이상 출혈 때문에 병원에 드나들지 않아도 되고 이제 다시 보통의 산모들과 같은 수순을 밟을 수 있도록 일반의에게 전원시켜주겠다고 공립병원의 전문의가 말할 때까지, 그리고 드디어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기까지 오천년 같은 한달 반이 지나갔다.


9주 경, 출혈 양상이 달라져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불안했지만 괜찮다는 듯 잘 놀고 있던 아가. 설마 나중에 초상권 운운하며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겠지요.


 나는 기형아 선별검사 따위도, 하모니 테스트인가 하는 99 쩜 몇 퍼센트의 확률로 네댓 가지 유전질환의 유무를 확인해주는 검사도 사실 별로 받고 싶지도 않았다. 아홉달을 꼬박 정성스레 키워서 내 눈앞에 아이가 있기만 한다면, 감수할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병원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동안 나는 온갖 초음파 용어를 섭렵하게 되었다고 자부했고, 의사 진단 없이도 문제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스스로 기특해했다.

 그리고 14주가 되던 , 다시 출혈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응급실이었다. 선별 간호사는 나에게 패드를 쥐어주며 한시간 뒤에도 이 패드가 푹 젖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고는 나를 대기실에 그대로 두었다. 이전 출혈 때 읽었던 온갖 블로그 맘까페 글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심호흡을 하며 진정해 보려 할 때마다 겁이났다. 자꾸만 더 최악의 상상이 떠올랐다.

 “어차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면 차라리 집에가서 편하게 누워있는게 낫겠어. 여기 다 아픈 사람들 틈에 불편하게 있는 게 더 싫어.”

 하고 애원하는 나를 남편은 한번 더 사립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사보험이 없는 우리는 $250의 엔트리 피를 내야하고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아마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라며 웃었다. 간호사가 가져다준 휠체어를 타고 초음파실에서 아가의 심장이 잘 뛰는 걸 내 눈으로 보고 돌아온 참이었기 때문에.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절박유산.

 단어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아마도 임신 초기의 산모라면 공감이 가능할 것이다. 굳이 풀어 말하자면, '유산기가 있다.', '임신이 유산으로 이어질 확률이 있다.'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초음파 결과를 가지고 온 의사는, '태반이 떨어지고 있다. 태아의 심장은 아직 잘 뛰고 있지만, 이러한 경우 20% 정도 생존한다. 태반이 스스로 자궁에서 떨어지는 걸 막을 도리는 없다. 최대한 안정하고 일주일 뒤에 경과를 봐야 한다.'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다음 검사를 받기로 한 열흘 뒤까지 남편은 나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냈고, 나는 먹거나 싸는 일 외에는 침대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평생을 크게 변비로 고생한 일은 없었지만 큰일을 볼 수가 없었다. 힘을 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마음 편하게 갖고 책을 보라는 둥, 스트레스가 더 안 좋다는 둥, 그래도 나중에 애가 나오면 지금이 그리워 질 거라는 둥 도움도 되지 않고 성질만 긁는 문자는 죄다 지우고 차단했다. 어떤 순간에는, '에라이 잘못되면 이번주말에 술약속이나 잡지뭐' 하는 마음가짐이면 되려나 싶기도 했다. 이내 곧 그만둔다. 매번 더 나쁜 생각이 들때마다 나는 상상력이 뛰어난 내가 밉고 싫었다. 그러면서 매번 아가에게 사과를 하고 엉엉울었다. 이러다가는 내가 죽겠다 싶을 때쯤 열흘이 지나갔다. 


 '잘했어요. 정말 다행히 태반이 다시 자리를 잡았어요. 일상으로 돌아가도 좋아요. 가서 남편이랑 사랑도 나누세요. 자자 병원은 위험하니까 어서 집으로 가세요.' 



 

 39주인 지금까지도 나는 아기가 조금만 덜 놀면 일시적인 불안감에 등골이 오싹해지고는 한다. 여전히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해소되지 않았고, 그래도 다들 지금이 행복한거라며 잠이나 실컷 자두라고 말한다.  

 

 불안을 지나 온 사람으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다. 내가 전하는 위로는 운 좋은 투덜이의 하소연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음을 잘 알기에. 다만, 우리가 겪는 모든 과정이 아기를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엄마로 성장시키려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얄팍한 생각을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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