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과 이직 사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근 3년 동안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면서 나의 삶에도 큰 변화가 여럿 있었다.
작년 햇살 따스한 4월의 25번째 날에 한강의 어느 둥둥섬에서 인생의 평생 동반자가 생겼다.
부모님 밑에서 나와 그토록 바라던 독립된 한 가정의 주체가 되었고, 2년 동안 그저 하루살이처럼 비행하고 쉬고 비행하는 삶의 연속이었다면, 그 삶에 큰 브레이크가 생겨 한 달, 두 달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도 '마법'처럼 주어졌다. (무급도 아닌 유급으로 기본급 받으며 쉬니 이건 가히 '마법'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또 다른 아주 큰 변화라면...
구름을 벗 삼아 하늘을 둥둥 떠다녔던 4년 동안의 나날들.. '비행을 하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늙어갈까'를 늘 생각하고 고민했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퇴사'와 '이직'이라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항상 고민하고 생각해왔던 바지만 사실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 이 문 앞에 서게 될지는 몰랐다. 이런 기회가 찾아올지는 전혀 몰랐다.
2월의 비행이 끝나가던 무렵, 심신이 매우 지쳐있던 나는 정신줄을 부여잡고 레쥬메를 고쳤다. 'SUBMIT'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3월의 휴직 기간. 때마침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정연님, 레쥬메 잘 봤습니다. 인터뷰 일정 조율하려고 연락드렸어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리고 두 번의 인터뷰를 통해,
이라는 문구가 담긴 오퍼 레터를 받아냈다. 낯설고도 참 신선했다. 첫 사회생활이 한국의 대기업이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영어로 fully 적힌 오퍼 레터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이 모든 과정이 새롭게만 느껴졌다. 예전부터 너무 가고 싶었던 기업이라 오퍼 레터를 받고 매우 기뻤지만 마음 한편이 복잡했다. 쉽게 오퍼 레터에 사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언제고 회사를 쉽게 박차고 나올 정도의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만이었다. 그럴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었나 보다.
‘첫’ 회사여서 그런 걸까. 첫 정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걸까..
생각보다 결정하기가, 퇴사를 선택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인생의 큰 결정을 앞두고 고민하는 게 당연한 과정이라지만, 어쩌면 너무 많은 시간을..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찾아보는데 다 써버렸다.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일까.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하나뿐인 딸의 갑작스러운 이직 통보와 선택에 불안감이 엄습해온 부모님은 "이직, 결사반대!"를 외치셨고, 그 가운데 사정없이 흔들리던 나는 내 마음을 정하고, 그들을 이해시키며 몇 날 며칠을 보냈다.
하지만 자식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걱정 마세요, 엄마 아빠! 내가 가서 잘할게! 난 더 행복할 거야 ㅎㅎ
내가 내린 결정에 적어도 후회는 안 할 자신으로 이직할게. 날 한 번만 믿어줘.)
아무런 계획 없이 회사를 무작정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고 싶은 곳, 그리고 가야 할 곳이 정해졌는데도 첫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하는 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자꾸만 고민하게 되고, 이게 맞는 선택일까 하는 끝없는 자기 의심... 어쩌면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을 ‘책임’ 져야 하기에 더 용기가 나지 않고 조바심이 나는 걸 수도 있겠지. 선택을 했다면 이제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고, 오롯이 내가 내린 결정의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은 어떠한 선택도 100%의 확신을 가지고 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의 확신을 가지고 선택한다면 그건 오히려 잘못된 거다. 결과가 100이 되도록 선택한 ‘후’에 나의 노력, 내 몫으로 온전히 채워 넣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더 ‘성장’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거다. 그리고 여러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새로운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저 승객이 아닌 여러 불특정 다수의 직장인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대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나의 모습과 세상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그야말로 ‘도전’이다. 다행인 건 세상은 넓고, 아직 시간은 많잖아. ㅎㅎ 한 번쯤 내 안의 울타리를 깨고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 전 회사의 달콤했던 복지와 익숙해서 척척 잘 해내던 나의 업무스킬, 행복했던 기억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한번 해보려 한다.
'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언젠가는 하려고 했던 것이고, 해야만 하는 것이었고,
또 이번 경험이 나라는 사람을 더욱 ‘성장’ 시키리라는 믿음은 굳건하니까.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람, 내면이 꽉 차고 생각이 깊은 사람.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다. 내 인생의 토지에 다양한 씨앗을 심으며 잘 가꾸어 나가보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너무나 기대되고 궁금하다.
4월의 복직과 이직 사이.. 나의 선택은 '이직'이었다.
나의 20대, 후회없이 비행하며 많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그렇게 난 성장했다.
이젠 승객으로 만날게 비행기야.. 고마웠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