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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Jan 14. 2019

[퇴사하고 세계여행] 흐림필터를 낀 홍콩이라도

(D+40, 홍콩) 어서와, 홍콩은 처음이지


2018. 12.10 퇴사하고 세계여행 Day 41.




[그녀의 시선] 흐림 필터를 낀 홍콩이라도

세번째 오는 홍콩은 그저 편하고 좋았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대강 맛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있는 도시, 한 걸음을 내딜 때마다 ‘정말 좋다’고 내뱉었다. 지난 여행 때 충전해둔 옥토퍼스카드도 잔액이 많이 남아 아깝다며 떠나왔는데 덕분에 다시 돌아와서는 잘 쓰고 다녔다. 여행경력이 늘어날수록 갔던 곳에 또 가는 게 더 좋아진다. 익숙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새로운 자극은 오래 가지 않기에 이런 익숙한 편안함에서 오는 감정이 좋다.

흐려도 그저 좋은 홍콩의 첫 날은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능력있는 오빠 지인들 덕에 좋은 곳들만 다니며 불태웠다. 한국에서 여행온 오빠친구커플까지 만날 수 있어 꾀죄죄한 몰골로 sevva에서 크리스마스트리와 홍콩야경을 보며 칵테일도 마실 수 있었다. 능력있는 동년배 친구들이 커리어를 쌓을 동안 우리가 놀며 여행을 하는게 아직까지는 후회되지 않는다. 단, 어떻게 더 이 여행을 생산적으로 보낼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의 시선] 어서와, 홍콩은 처음이지

퇴사하기 전 세계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홍콩에 있던 친구들이 홍콩도 오냐고 많이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홍콩은 배냥여행자에게는 너무 비싸서 못갈거 같다고 했다. 홍콩을 방문한다면 우리의 여행 일정이 한 달은 줄어들 테니까.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며,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어디서 보내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 시기에 우리가 여행할 동남아 국가들은 대부분 불교국가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홍콩을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새미 폰을 바꿔야 하는데 홍콩이 다른 국가에 비해 조금 쌌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iPhone을 명분으로 홍콩행 비행기를 끊었다.

어쩌다 보니 일을 시작한 후 출장으로 홍콩을 종종 방문했다. 너그러운(?) 회사의 숙소 Budget 덕에 늘 좋은 호텔에만 머물고, 출장가서 만나는 거래처 분들이 맛있고 분위기 있는 곳만 데려가 주셨다. 몇 번 방문하다 보니, 홍콩은 11월에서 2월사이에만 방문해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도 세웠다.

올해도 그렇게 홍콩에 왔다. 크리스마스 때가 다 되어 온 홍콩은 거리마다, 쇼핑몰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되어 있었다. 여행으로서 홍콩은 처음인데, 와이프한테 꼰대처럼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저 호텔에서 머물고 저기서 미팅하고 그랬었어"를 100만번 반복했다. 나도 어느새 그렇게 아재가 되어있었다.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친구들을 만났다. 홍콩에서 만나니 더 반갑고 고마운 인연들. 꼭 맛있는 걸 사줘서 고맙다는 건 아니지만, 능력자 친구들 덕분에 배낭여행자로서 부리지 못할 사치를 마음껏 부릴 수 있었다. 미슐랭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와인도 먹고(게다가 고급진 티라미수까지), 상하이 음식점에서 배터질때까지 딤섬도 먹고(친구가 너무 많이 시켜서 5접시 정도는 손도 못댔다), 우리의 복장이 너무 쭈굴쭈굴해서 입장하지 못할 것 같았던 Sevva에서 시원한 맥주에 칵테일까지.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좋았던 건, 능력있는 친구들의 다양한 산업, 투자,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국의 핫한 15초 영상 플랫폼인 Tictok 상장이야기, 컨텐츠 산업으로 여전히 돈이 몰리고 있는 투자 트렌드, 내가 사자마자 급격히 늘어난 대차잔고와 공매도 때문에 걱정이었던 대조양의 외국인 매도 이유(결론은 괜찮다였다. 조선 산업 가즈앗!), Youtube 채널에 Interview 또는 Commentary 영상을 올리면 좋을 것 같다는 Feedback, 주식과 Crypto는 손대는게 아니라는 현직 골드만삭스 Trader의 눈물섞인 조언, 2019년 부동산 시장 전망, 개업 1년만에 Michelin Guide에 오른 식당스토리, 나는 절대 하지 못할 마카오 230미터에서 끝내 뛰지 못하고 50만원의 비용도 돌려받지 못했다는 웃픈 이야기, 뛰어내리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 돈을 내어준 멋진 형님까지.

여행자로 방문한 나의 첫 홍콩. 바쁜 시간 쪼개어 내준 친구들, 나의 "내가 왕년에" 시리즈를 끊임없이 받아준 와이프,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홍콩까지. 홍콩 오길 잘했다. 시골중에 시골인 태국 Pai에 있다가 문명의 끝판왕인 홍콩에 오니, 문명이 좋긴 좋구나. 와이프도 문명 문명을 외치는 것 보면 우리의 2월의 인도가 쉽지는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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