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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기

[D-122] 사람은 미워하지 않기로했다.

제가 용서해드릴게요!

by 망샘


아래는 예전에 한창 화로 가득차있던 시절 저장만하고 발행하지 않은 글이다. 글로 남기기 껄끄러운 부분까지 포함한 모습때문에(이게 훨씬 더 많다) 미워하던 사람에 대해 쓰다보니 새삼 너무나 사소하더라. 그랬던 때가 있었구나 싶기도하고,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구나 싶다.





Scene1.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쩝쩝대면서 먹는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싫다.


-사실 나도 자리에서 뭔가를 많이 먹는다. '내가 먹는 건 괜찮지만 넌 안돼' 이 논리는 내가 혐오하던 논리인데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네.. 역시 사람이란...




Scene2. 같이 한식을 먹을손치면 국자가 있는데도 본인 침이 묻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는데, 밥맛이 똑 떨어진다. 외국인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며 '더블 딥'을 외국인들이 극혐한다는 것도 알면서 그러니까 더 싫다.


-사실 우리 아빠도 그렇다. 아저씨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하는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 나만 손해다.





Scene3. 회사 돈은 어떻게든 뜯어내려고 하며 자기 돈은 절대 안 쓰려고 한다. 남들 인센티브받을 때는 어떻게든 접대받으려고 갖은 수를 쓰면서 자기가 인센티브받으면 꿀먹은 벙어리.


-나도 어떻게든 회사 돈으로 교육받으려고 하고, 야근식대만 해도 꽉꽉 채워 쓰려고 하지않나?

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야. 나도 인센티브받으면 그간 밥 얻어먹은 사람들에게 밥을 살거냐?





퇴사하기로 한 마당에 혹자는 다 뒤집어엎고 부조리함을 내부고발하고 나가라는데 대다수는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좋게 나가야한다고 충고했다.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같은 업계는 좁으니 내가 새로 시작할 때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퇴사 계획도 다 알려진 마당에 정의감에 불타 그간의 부조리함까지 알리고 나갈까 싶기도 했지만 희한하게도 퇴사 소동을 겪으며 미워하는 마음도 많이 가라앉고있다.


퇴사 의사를 밝힌 다음 날 퇴근 준비를 하는데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혹시 회사를 나가기로 한 결정에 자신을 비롯해 팀원들과 힘든 점이 있었냐고.


'너도 크게 한 몫했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사회생활 6년차답게 잘 받아넘겼다.


절대 아니죠. 다들 너무 좋아서 결정을 내리는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본인이 듣고 싶은 말을 들은 그는 한결 마음이 편해보였다. 그리고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와 상황이 부럽다'는 말을 남긴 채 퇴근했다. 저 분도 그냥 자기 일을 하는데 그게 좀 주위 사람들에게 얄밉고 거슬릴 뿐이었구나. 여기아니면 갈 곳없는 불쌍한 중년이구나.


마지막에 사람은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제가 용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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