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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샘 Oct 16. 2021

수박이의 견생역전. 7개월 유기견 쉼터 봉사

내 생애 가장 오래한 봉사활동

퇴사를 하고 세계를 여행하며 그토록 찾아 헤맨 꿈을 드디어 찾았다. 사모예드를 키우는 프리랜서가 되는 것. 가난한 프리랜서 말고 좋아하는 일 여럿으로 월급 이상을 버는 엔(N)잡러로 살고 싶다.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p222



회사를 나온 3년 동안 우리 부부가 정립한 장래희망이다.


우리 부부의 하얗고 큰 개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책의 저자 소개에도 ‘하얗고 큰 개를 키우는 돈 많은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힐 정도였다.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동네 단골 카페 사장님의 반려견인 목동이 덕분에 사모예드에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여행 중에는 시카고에서 열흘간 사모예드 조조를 돌보기도 했다.


시카고에서 돌봤던 사모예드 조조


가끔 봐야 귀여운 건 애나 개나 마찬가지. 스물네 시간을 붙어있으니 공기 중에 털이 풀풀 날아다녔다. 잠시 외출을 다녀온 사이 시끄럽게 짖어 이웃집의 민원을 받기도 했다. 밤새 화장실을 참았을 개들을 위해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마다하고 산책을 나섰다. 생명체와 함께 하는 인생은 상상 이상의 책임감을 요함을 열흘간의 펫 시팅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고생은 미화되기 마련. 여전히 우리는 사모예드를 사랑한다. 제주에 내려와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있지만 내 집이 아니라 당장 키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연하게 매주 봉사 활동을 하는 유기견 쉼터의 하얗고 큰 개를 맡게 됐다.


수박이의 새로운 취미 땅굴파기. 굴 안에 들어가는걸 좋아하는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누렁이가 돼고 있다.



진도 믹스(잡종) 수박이를 임시 보호한 지 두 달째.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여름, 쉼터의 몇몇 견사가 비에 침수가 됐다. 진흙탕에서 생활하는 개들이 집에 돌아와서도 눈에 아른거렸다. 흔쾌히 마당에서 임시 보호하는 걸 허락받아 수박이는 우리와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함께 보내고 있다. 그사이 태풍과 가을장마가 지나갔다. 비가 세차게 올 때마다 수박이라도 데려와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두 살이 채 안 된 수박이가 있던 곳은 제주 대흘의 어느 쉼터. 그곳에서 3월 말부터 매주 한두 번씩 정기적으로 가는 ‘한라봉 쉼터’로 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우리 집으로 왔다. 그사이 살도 좀 붙었고 여전히 해맑은 텐션을 보여준다. “앉아”, “손”, “기다려”도 알려줬더니 곧잘 따라 해 우리에게 추가 간식을 따내기도 한다.



예전 수박이 vs. 산책 후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살인미소를 날리는 수박이


쉼터에서 볼 때는 몰랐던 사실들에 마음이 찡해지기도 한다. 배변 교육도 안 받았는데 산책할 때만 화장실을 가는 기특한 개는 고양이만큼 그루밍을 많이 한다. 또한 비에 온 날엔 물웅덩이를 피해 다닐 만큼 물을 싫어한다. 이런 수박이가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견사 안에서 대소변과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비가 올 때마다 진흙탕이 되는 곳에서 생활해왔단 사실에 짠하다.


제주에 내려와 유기견 쉼터에서 봉사를 한지 7개월이 지났다. 내 인생 가장 길게 한 봉사활동이다. 


개도 좋아하지만 요가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어 시작한 봉사 덕분에 무지했던 세계를 많이 알게 됐다. 동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주는 선생님을 주축으로 한 봉사는 요일별로 팀이 꾸려질 정도로 봉사자가 많아졌다. 그만큼 쉼터는 전폭적인 후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 좋은 사료를 주고 덥지 않게 그늘막을 만들어준다. 이곳에 있는 수십 마리의 개들은 유기견 중에서도 상류층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 목줄 산책을 잘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개들은 수박이처럼 가정 임보를 가거나, 펫 스쿨에 가기도 한다.


운동장 산책 후 견사로 들어가기 싫어 도망다니는 개들을 안아서 집으로 모신다. 


그럼에도 봉사자들이 오면 운동장에서 길어야 고작 20분 뛰어놀거나 산책을 한다. 나머지 시간엔 견사 안에서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낸다. 마당에서 다른 개들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해 보이는 수박이를 보다가 금요일마다 쉼터에 가면 이곳에 있는 개들이 안쓰럽다. 하루 세 번 산책을 나가도 늘 나가고 싶고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수박이를 보면 쉼터에 아직 남아있는 다른 개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20분의 자유시간은 턱없이 짧은 게 아닐까.



하루 세번 수박이를 산책시키며 몰랐던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봉사활동을 하는 날 만이라도 빼먹지 않으려 한다. 당장 몸이 피곤하고 날씨도 덥고 힘들지만 이 시간만을 발로 꼽아 기다릴 개들을 보면 나의 이기심은 잠시 덮어두게 된다. 옷은 금방 더러워지고 다녀오면 아무것도 못할 만큼 피로하지만 이 시간을 나 역시 기다린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다는 봉사 활동의 경구는 새기며 결혼기념일에도 빼먹지 않고 봉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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